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이라는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그 골자는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단계에 맞춰 북한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제안을 하겠다”라는 것이었다. 특히, 눈여겨볼 대목은 “북한이 진정성을 가지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부터 경제지원 조치를 적극 강구하며, 필요시 대북제재의 부분적 면제도 추진하겠다”라는 내용이다. 윤 정부의 ‘담대한 구상’은 역대 보수 정권에서 취했던 대북정책들보다 적극적이다. 북한의 추가 핵실험을 방지하고,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한다.
북한이 저렇듯 거친 반응을 보인 저의를 살펴보자. 한마디로 말하면, 윤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기대수준에 못 미친다는 뜻이다. 북한은 2017년 11월에 핵 무력 완성을 선언했기 때문에, 핵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동시에 미․북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 남북한 간의 입장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윤 정부의 제안 중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이란 전제를 놓고도 남북한 간에 견해차가 있다. 북한은 ‘선 비핵화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윤 정부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정확히 확인할 방법을 찾는데 고심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속았기 때문이다. 문 정부는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의지가 있는 것”처럼 트럼프 정부에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두 차례의 미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아무런 성과 없이 실패로 끝났다. 문 정부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잘못 판단한 처지가 되었다.
지난해 말까지 문 정부는 북한과 함께 UN의 대북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을 맞교환하려고 시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북한은 한미연합훈련 및 전략무기투입 영구 중단, UN의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한 바 있다. 현재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코로나 19 사태 장기화로 경제 상황이 악화하여 UN의 대북제재 해제가 절실하다. 그런데도 북한이 윤 정부의 제안을 거절한 것은 더 큰 보상을 받기 위한 노림수이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UN의 대북제재 완화 문제를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UN의 대북제재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 (2005년), 2.13 합의 (2007년) 등을 거침없이 차버리는 무책임한 행태를 보여왔고, 미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도 내부적으로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지속하였다. 올해 3월에는 핵․ICBM 모라토리엄까지 파기했다. 북한은 ‘협상에 합의한 이후에도 언제든지 번복할 수 있다’라는 리스크를 갖고 있다.
신냉전 시대로 불리는 현 국제정세 속에서 UN의 대북제재가 한번 허물어진다면, 다시 제재국면으로 되돌아가기 어렵다. 그 이유는 현재 국제상황이 북한의 6차 핵실험(2017년 9월) 이후 대북제재 결의안(2375호)을 채택했던 당시 분위기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미국․서방국가들과 첨예하게 대결하고 있으며, 글로벌공급망 재편․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이 바이든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러시아, 중국, 북한의 결속이 강화되어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체제와 대립 구도를 보인다. 만일 북한이 심각한 무력도발을 감행할 경우, 중국․러시아가 UN 안보리에서 대북제재에 찬성할 가능성은 지극히 회의적이다.
화웨이의 5G 정보통신 장비 사용 문제를 놓고 트럼프 정부와 중국은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자기편에 줄 서기를 요청하였다. 최근 바이든 정부도 미․중 간의 기술패권경쟁에서 중국을 압도하기 위해 글로벌공급망 재편 작업을 통해 동맹국들과 연대감을 강화하고 있다. 윤 정부도 출범 이후 한․미 기술동맹을 강화하면서 미국의 가치외교에 적극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점이 중국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에 우리 손을 들어줄 까닭이 없다. 오히려 북한의 추가 도발을 묵인할 소지가 있다. 당분간 한반도는 신냉전 구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을 활용하여 남북관계 긴장 수위를 끌어올릴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를 겨냥하여 7차 핵실험 등 다양한 형태의 무력도발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통미봉남’이다. 남북관계 개선이 아니라, 미국과 직접 협상하는 것이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를 압박하여 협상테이블에서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그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윤 정부가 취해야 할 현명한 판단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남북한 간 협상이 원만히 진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력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남북한 간에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야 한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을 위한 당국 차원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비핵화 협상은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북한 정권의 운명이 걸린 핵무기를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리비아 카다피 정권과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비핵화 문제는 차근차근히 접근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문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휘말려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윤 정부는 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둘째, 문 정부에서 초래되었던 한미동맹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고, 강력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추가 핵실험 등 도발에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특히 한미연합훈련이 지난 정부에서 비정상적으로 운용되었는데, 이제는 정상적으로 복원시켜야 한다.
셋째, 북한의 도발 행위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현재 가동 중인 UN의 대북제재를 확실하게 활용해야 한다.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제재 네트워크에 빈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넷째, 북한이 비대칭 무기인 핵을 보유한 만큼, 대응 수단이 마땅치 않다. 바이든 정부와 협의하여 북한의 핵 도발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억지 수단을 확보해야만 한다. 한편 자주국방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전략무기 개발이 시급한 만큼, 국방예산을 대폭 증가시켜야 한다.
다섯째, 북한의 취약점이 인권문제인 만큼,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문제를 확실하게 제기해야 한다. 탈북민들은 소중한 존재이다.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회 과장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