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등 금융권과 핀테크사들이 금융소비자의 통신요금·공과금 납부 내역이나 온라인 쇼핑 내역과 같은 ‘비금융 데이터’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개인 재정 상황이나 상환 의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데이터라는 점 때문이다.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결합해 대출 문턱을 낮춰주거나 사실상 신용카드 역할을 하는 후불결제 기능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금융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019년부터 통신사 거래정보를 활용한 ‘비상금대출’을 운영하고 있다. 최대 300만원이 대출한도인 이 상품은 직장이나 소득 같은 전통적인 신용평가 방식에서 벗어나 이동통신 3사에서 제공하는 휴대전화 기기 정보, 요금납부 내역, 소액결제 내역 등을 바탕으로 한 ‘통신사 신용등급’을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핀테크업체인 핀크도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안 신용평가 모델 ‘T스코어’를 구축하고 있다. T스코어는 핀크가 하나은행과 함께 출시한 생활비대출 금리와 한도를 산정하는 기초 자료로 쓰이는 통신 점수로, 통신비를 연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납부하거나 오랜 기간 동안 통신사에 가입할수록 평가 산정에 유리하다. 핀크는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차주별 맞춤형 대출을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대출 비교 서비스'도 운영 중이다.
그런가 하면 쇼핑을 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내역 등도 금융 거래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현재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는 교보문고가 보유한 고객 도서 구매 이력 등을 바탕으로 대안 신용평가 모델 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배달앱 '땡겨요'를 운영 중인 신한은행은 지난해부터 배달라이더 전용 소액 신용대출 상품인 ‘쏠편한 생각대로 라이더 대출’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배달대행업체에서 얻은 배달 데이터, 배달 수행 정보 등을 신용평가에 반영했다.
카드사들도 이에 뒤질세라 신 파일러를 위한 새로운 신용평가모형 수립과 BNPL 서비스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카드가 국내 카드사 최초로 BNPL 서비스를 개시한 것이 대표적이다. KB국민카드도 연내에 BNPL 서비스를 출시한다는 계획이며, 신한카드 역시 사회 초년생 등 금융소외계층을 위한 빅데이터 활용을 골자로 한 대안신용평가모형 개발에 착수해 후불결제 등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비금융 데이터를 주축으로 한 신규 신용평가 모형이 고도화하면서 금융소비자 신용점수 상승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케이뱅크가 지난 1분기 가명 처리된 통신·쇼핑 정보를 금융 정보와 결합하는 등 고객군별 특성을 반영한 특화 CSS를 새로 구축해 대출 상품에 적용한 결과 이용자 5명 중 1명꼴인 21%의 신용점수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과거보다 정교한 신용평가가 가능해지면서 차주 신용점수가 평균 32점 올랐다"며 "가장 많이 오른 고객은 신용점수만 207점 오르며 고신용자가 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