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법조계에 따르면 급발진 추정사고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자동차 브랜드는 BMW, 테슬라, 제네시스 등이다. 형사재판의 경우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운전자의 유무죄를 가린다. 하지만 민사재판은 자동차 제조사에 결함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재판이 오래 걸리는 데다가 상당한 비용이 소요된다.
지난 2020년 BMW 급발진 인정 사례 국내 첫 등장
법원으로 간 사건 중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지난 2020년 11월 처음 등장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BMW 차량을 운전하다 차량 결함으로 의심되는 사고로 목숨을 잃은 A씨 부부 유가족 2인이 BMW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 법원이 1심을 뒤집고 유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차량 결함을 피해자가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에 결함이 없음을 제조사가 입증하지 않으니 피해자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입증책임이 피해자에서 제조사에게로 전환된 것이다.
BMW 급발진 추정사고로 사망한 부부의 사위이자 법률대리인인 이인걸 변호사는 "피해자는 한 달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가속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오인해서 300m 이상을 쭉 달리는 경우는 없다"며 "운전자가 과실이 없었다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서 여러 인자들을 적극적으로 피력해 입증책임을 전환시켰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결함 여부, 소비자 아닌 제조사가 입증해야"
BMW뿐만 아니라 테슬라, 제네시스 등 자동차 브랜드들도 현재 재판 중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 테슬라 전기차에 불이 나 당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친구인 대형 로펌 변호사가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대리기사가 첫 재판에서 ‘급발진’을 이유로 혐의를 부인했다. 또 2020년 10월 서울 관악구에서 제네시스 G80 급발진 추정사고가 발생해 운전자가 크게 다쳤는데, 해당 사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현재 1심 변론기일이 열리고 있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급발진 현상으로 신고된 건수는 196건이다. 같은 기간 소방청 산하 각 지역 소방본부에서 급발진 추정, 의심으로 인한 교통사고로 신고돼 구조 및 구급 출동한 건수는 791건이었다. 그러나 제조사와 경찰청 등이 인정한 급발진 결함 건수는 0건이다.
전문가들은 재판에서 입증책임 전환이 보다 더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재판에서 입증책임이 전환되는 게 상당히 어렵다. 법적 체계 자체가 소비자한테 불리하게 돼 있어 법적 근거 조항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며 "자동차에 대한 결함을 소비자한테 모두 전가하지 말고 자동차 제작사가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병일 자동차 명장도 "자동차 브랜드들은 '운전자가 브레이크를 밟았네'로 빠져나간다"며 "브레이크를 밟아도 급발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소비자가 급발진을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동차를 만들 때 연료 분사량, 브레이크 밟은 비율, 점화 시기 등 데이터가 반영되는 장치가 반드시 들어가야 급발진 소송에서 정확한 근거들을 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