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가계통신비와 대출금리 인하

2022-07-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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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정명섭 기자]

2017년, 문재인 정권 초기에 가계통신비 인하가 ‘뜨거운 감자’였다. 대선 후보 당시 통신비 인하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후 선택약정 요금할인율 인상(20→25%), 보편요금제(월 2만원대에 데이터 1GB를 제공하는 저가요금제) 도입, 공공 와이파이 확대, 취약계층 통신비 감면 등을 추진했다.
 
이동통신 3사는 거세게 반대했다. 수천억원대의 이익 감소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선택약정 요금할인율 강제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행정소송까지 검토했다. 문재인 정부의 가계통신비 인하 논란은 통신 서비스가 공공재인지, 정부가 민간 기업인 이동통신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정책을 펴도 되는지 등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정부의 개입 근거는 한결같았다. 이동통신 3사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권리를 부여받아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어, 그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권 초기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통신업이 아닌 금융업에서다. 윤 대통령과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이 금리 인상기에 ‘이자 장사’로 지나친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은행권에선 사실상 대출 금리를 내리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였고, 일부 은행은 대출 금리 상단을 낮추거나 우대 금리 혜택을 확대했다.
 
정부의 개입 근거는 가계통신비 인하 때와 같다. 은행은 경쟁자가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규제산업으로, 이로 인해 독과점적 이익을 올릴 수 있으니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의무가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이복현 원장은 “헌법과 은행법 관련 규정에 따르면 은행의 공공적 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주요 은행 또한 엄연한 사기업이다. 민간 주주들이 지분을 보유한 금융지주가 은행의 모회사다. 금리를 높이지 말라는 건, 일반 기업에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올리지 말라는 의미와 같다. 더군다나 대출 금리는 코픽스(COFIX), 금융채, CD금리 등에 연동되는 대출 기준금리와 신용, 유동성 리스크, 업무 원가 등을 고려한 가산금리의 합으로 결정된다. 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대내외적 리스크 등 금융시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에 좌우된다. 정부의 말 한마디로 결정되기에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고, 개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앞서 가계통신비 인하로 국민의 통신 복지는 더 나아졌을까. 문재인 정부는 연간 2조2000억원 규모의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정작 통신비가 낮아졌다고 정부에 고마워한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정 제품과 서비스 가격은 사람마다 받아들여지는 수준이 다른 매우 주관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격을 낮추더라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대출 금리 또한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다고 해도 임시방편에 그칠 공산이 크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은행들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손실을 만회할 것이 분명하다. 오히려 위험을 회피하는 과정에서 저신용자 등의 금융 취약계층이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으로 내몰리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대출 금리는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금리 인하 경쟁을 유도하거나, 담합 같은 경쟁제한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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