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이 우리 남자(남편)를 잡아갔어요. 작은아들 낳은 다음 날 아침에 나갔습니다. 아침밥 먹고 삼베옷을 입고 나서길래 못 가게 말리니까 ‘한 달 있다가 온다’고 했어요. 하지만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72년 전 기억이지만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타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상처는 치료받지 못한 상태로 점점 세상에서 잊히고 있다. 최순호 작가가 펜과 카메라를 든 이유다.
가재는 전북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노치(蘆峙)마을의 순우리말이다. 갈대 고개가 세월이 흐르면서 가재라는 예쁜 이름이 됐다.
지리산 정령치를 따라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이 마을에 1950년 11월 20일 새벽 국군 제11사단 전차부대가 들이닥쳤다.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비무장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남원시 주천면 고기리 고촌, 내기마을, 덕치리 회덕, 노치마을, 운봉면 주촌마을 5개 마을 민간인들을 노치마을로 토끼몰이하듯 몰아쳤다.
저자 최순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72년이 지났지만 변변한 자료집 하나 없이 침묵의 세월을 살아왔다. 죄가 있어 죽은 것이 아니라 죽었으니 빨갱이고 죄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라며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지만 빨갱이 낙인이 침묵을 강요했다. 가재에서 일어났던 기억하기 싫은 상처를 해체하고 새살을 돋아나게 하기 위한 작은 날갯짓이 <가재 상흔>이다”라고 책을 소개했다.
1991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로 입사해 25년간 현장을 누빈 그는 고향에 돌아와 지리산자락에서 양봉을 하면서 홀어머니와 함께 했다.
고향에는 중요한 사건이 숨어 있었다. 덕치리 노치마을 일대에서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한 위령비를 건립하기 위한 회의가 지난해 11월 12일 면사무소에서 열렸다.
최 작가는 “회의에 참석해보니 72년이 지난 민간인 희생자 사건에 관한 자료집도 없고 왜 희생을 당했는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무고하게 죽어간 조상에 대한 미안함과 염치없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라며 “위령비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자료집을 한 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덜컥 시작했다”라고 회상했다.
70여년 전의 일을 책으로 쓰는 작업은 절대 쉽지 않았다. 희생사건의 배경을 찾아가면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남원의 좌우익의 계보를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한국전쟁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더 멀리 날아가서 1920년대 전후인 일제강점기부터 계보를 찾아내려 왔다.
당시 기록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았다.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 춘천 한림대, 국회도서관, 용산 국방부 군사편찬실 같은 곳을 헤매고 다녔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료와 씨름하면서 반년을 보냈다.
책은 ‘1945년 미군정 최초의 민간인 희생 남원사건’, ‘좌우충돌이 빚은 양남식 테러’, ‘1948년 고기리 고촌마을 민간인 희생사건’, ‘고촌마을 민간인 희생 사건 증언’, ‘빨치산’, ‘한국전쟁 발발과 남원’, ‘한국전쟁 당시 남원에 대한 경찰 기록’, ‘1950년 제11사단 노치마을 민간인 희생사건’, ‘노치마을 민간인 희생 사건 증언’ 등을 담고 있다.
과거 신문기사, 주한미군사령부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매주 작성한 주한미군주간정보요약 보고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간한 ‘남원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진실규명결정서 등 방대한 자료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작가는 이제는 백발노인이 된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를 직접 인터뷰해 책에 실었다. 글만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사진과 오치근 화가의 재현 그림은 인터뷰를 더욱 풍성하게 했다.
최 작가는 “내기마을에 살던 정종원 씨가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에서 진술한 내용이 <가재 상흔>에서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너무...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너무 억울하게 당해서 내가 죽기 전에는 한이 맺혀서, 개가 짖으니 개까지 총을 쏴서 죽이고...내가 생각할 적에는 해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목적이 있으니까 와서 사람을 죽였을 것이 아녀. 불태우고...그랬으니 해명만 해줘도 좋겠어. 불쌍한 양민들만 그래 버렸으니...다시는 그런 짓을 안 했으면 좋겠어.”
최 작가는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며 그들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생각했다.
그는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을 하루아침에 40명 넘게 죽였는데 7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먼저 군경이 비무장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살해한 것에 대해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최 작가는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고 피해자 유족들에게 공식적,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보상해야 한다”라며 “다음으로 국민 화합을 위한 기념일을 제정해 희생자들을 위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군 작전 자료에 대한 완전공개가 절실하다”라고 짚었다.
<가재 상흔>은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 위한 작은 위로의 시작이다. 최 작가는 “책으로 출판되었으니 이를 토대로 생생한 육성을 담은 영상기록물을 만들고 싶다. 투자 유치도 하고 유능한 감독, 기획자들을 모아 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정도의 영상미를 갖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며 “<가재 상흔>이 기폭제가 되어 지리산 골짜기마다 덥혀진 이야기들이 물꼬가 트여 풍성하게 기록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