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경찰 통제의 명분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의 공정성'을 강조해왔던 윤 대통령이 수사기관을 통제하려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또 통제를 하려는 원인과 당위성을 알 수도 없어 사실상 경찰 통제를 통한 사정 국면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취임 초 '경찰 길들이기' 논란
윤 정부는 취임 초부터 독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찰청을 외청으로 독립시켰다는 취지와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윤 정부 초대 행안부 장관인 이상민 장관은 차기 경찰청장 후보군인 신임 치안정감들을 승진 전 차례로 만나 사전 면담한 데 이어 경찰청장 지명 전 한 번 더 만나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이상민 장관 지시로 구성된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는 최근 4차례 회의에서 경찰을 통제할 조직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사실상 과거 행안부 전신인 내무부 안에 있던 '경찰국'이 부활하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경찰의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 경찰 제도개선 자문위원회에는 '친검찰' 성향으로 평가되는 인사가 포진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행안부 조직을 통해 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수사권이 강화된 경찰이 정치권과 더욱 멀어져야 하지만 정치 예속화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 기자간담회에서 "권한과 책임, 그에 대한 견제는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경찰권 통제뿐 아니라 경찰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1991년 경찰법 개정 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경찰위의 실질화가 미진하다는 지적엔 "(경찰위의 실질화와 위상 강화를 위한) 개정 법률안이 국회에 다수 제출됐으나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며 "해당 법안들이 조기에 입법화하도록 적극 논의에 참여하고 협력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행안부 경찰국 등을 통한 통제는 경찰법 개정 취지에 어긋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경찰위의 실질화를 도모해 경찰권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경찰청, 왜 내무부와 분리됐을까
경찰 통제로 비칠 수 있는 일련의 시도에 대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적잖다. 경찰청은 1991년 경찰법 제정으로 내무부 산하 치안본부에서 외청으로 독립·분리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아지면서다."책상을 '꽝' 치니까 '억'하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넘어져 쇼크사했다."
지난 1987년 1월 14일 오전 11시께 박종철 열사가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사망했다. 이른바 '박종철 고문치사-조작·은폐 사건'이다. 박처원 5처장은 당일 오후 6시께 강민창 치안본부장에게 '박종철이 물고문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치안본부 대공수사 2단은 박종철 열사가 쇼크사했다는 내용의 변사사건 발생보고서를 작성했다.
치안본부는 부정선거 개입, 1976년 '고문밀실' 남영동 대공분실을 만들어 대간첩 수사를 명목으로 인권 탄압을 자행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경찰청이 내무부 산하에 있었던 점이 지적된다.
전임 행안부 장관인 전해철 의원은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경찰청이 외청으로 된 것은 90년대 치안본부가 내무부 산하에 있어 여러 폐해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경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자는 뜻인데 (행안부를 통한 통제는) 이를 다 무시하는 것이어서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그는 "경찰의 권한이 확대되는 것은 행안부 권한을 강화해서 견제할 것이 아니라 자치경찰제나 국가수사본부의 역할 강화, 더 나가 경찰위원회의 실질화 등의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옳다"고 덧붙였다.
국가경찰위원회(경찰위)는 행안부 산하에 설치돼 경찰청장의 임명제청 동의와 경찰 주요 정책, 관련 법령 및 규칙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경찰위가 도입된 이후 행안부 장관의 경찰 치안 사무에 대한 통제는 제한됐고, 경찰위가 그 기능을 일부 수행해왔다. 국가경찰위원은 위원장 1명과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5명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3년 임기를 보장받지만 비상임위원들은 내년 12월 임기가 끝난다. 일각에서는 독립된 국가기관으로서 경찰 예산 편성권을 갖는 국가경찰위원회 위원에 검찰 출신이 대거 임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경찰위원도 행안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간 국가경찰위 구성원은 일반 변호사와 시민단체, 학계 등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경찰, 송어 아니다"…일선에서도 '부글부글'
일선 현장에서는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에 대해 "상전을 둬 현장경찰관을 더더욱 힘들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는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경찰 내부게시판 '폴넷'에는 "지금 이 시대에 행안부에서 경찰을 통제하기 위해 옛 치안본부 시절의 경찰국을 신설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80~90년대로 회귀한다는 것"이라며 "현장의 경찰관은 또다시 푸념한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작성자는 "현장의 경찰관들도 지금의 지휘부가 잘한다고 칭찬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아닌 것은 아니다. 지금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게 대한민국 경찰이다"라고 푸념했다. 이미 일선 현장 경찰관들은 정치에 민감하고 취약한데, 행안부의 '경찰국' 신설은 이를 더 격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또 다른 경찰관은 "경찰청장은 행안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는 댓글을 적기도 했다.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며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 대립하던 시절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을 빗댄 표현이다.
지휘부를 성토하는 글도 여럿 올라왔다. '지휘부들이여, 돈은 없지만 가오는 잃지 맙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린 작성자는 최근 이 장관의 경찰청장 후보군 면접을 언급하며 "제청권이 있어 사전에 만났다고 하지만 이는 누가 봐도 우리 경찰 지휘부를 길들이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