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긴축, 이번에도 폭풍우 일으키나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외신은 미국 금리인상이 신흥국의 자금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전쟁으로 공급망 혼란이 가중되며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자, 자원 해외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을 중심으로 경상수지 악화 우려가 커지며 뭉칫돈이 빠져나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기조는 설상가상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자산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외국인 자금이 신흥국에서 빠져나가 미국으로 유입된다.
반면, 달러 부족에 신흥국의 통화 가치는 하락하게 되고, 이로 인해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며 인플레이션이 치솟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과 자금 유출을 억제하려면 신흥국도 금리인상에 나서야 하지만 급속한 금리 인상은 신흥국의 경제를 빠르게 식힐 수 있다.
과거 미국이 긴축시대의 문을 열 때마다 신흥국 경제는 휘청이곤 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1993년 말 2.97%에서 18개월 후인 1995년 6월 6.02%까지 올리자, 달러 가치가 급등하며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쏠렸다. 이는 1997년 동남아시아 금융위기의 기폭제가 됐다.
모닝스타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등의 연간 경제 성장률은 6~9%에 달했으나, 1996~1997년 사이 인도네시아의 명목 GDP는 43.2% 급락했다. 태국(21.1%), 말레이시아(19%), 한국(18.5%) 등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들 국가들의 주식 시장 가치는 1998년초까지 최대 70%가 사라졌다.
이후 2008년 금융위기, 2013년 테이퍼 탠트럼(긴축발작) 등 미국의 긴축정책은 신흥국 경제에 폭풍우를 일으켰다.
채무 상환 부담도 문제다. 특히 신흥국의 저신용 기업은 자금 조달이나 채무 상환에 차질을 겪을 수 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S&P글로벌에 따르면 신흥국에서는 올해 들어 11건의 회사채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이 발생했다. 이는 전년 대비 3배가량 빠른 속도다.
중국 경기 둔화, 신흥시장 과격
중국 봉쇄 정책 역시 신흥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중국의 봉쇄정책이 수요를 둔화시키고 공급망을 파괴하며, 신흥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으로 우려한다.신흥국은 중국의 통화, 채권, 주식뿐만 아니라 무역에도 크게 의존한다. 이로 인해 중국 금융시장에 대한 매도세는 신흥국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중국 주식 시장이 무너져 내렸던 2015년에 신흥국 금융시장이 출렁였던 것은 단적인 사례다. 그 이후 세계 경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블룸버그는 “(중국은) 이제 세계 최대 상품 구매자가 됐으며, 이는 중국의 경기 침체가 원자재 수출업체와 시장에 그 어느 때보다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윌리엄 블레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머니 매니저인 조니 첸과 클리포드 라우는 이메일을 통해 "우리는 중국과의 무역 연계가 높은 국가들이 가장 취약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웰스파고의 통화 전략가인 브렌던 맥케나 역시 "중국 경제가 크게 둔화되면 위안화뿐만 아니라 신흥시장 통화도 변동성이 높게 유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브라질의 통화인 레알화는 위안화가 급락하기 시작하자 4월 후반부터 하락세로 돌아섰다. 브라질 중앙은행이 금리인상을 연속 단행하면서 기준금리가 2%에서 11.75%로 올랐으나 5월에도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이집트의 3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0.5% 올랐다. 4~6%대였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가파른 인플레이션이다. 중앙은행은 3월에 약 5년만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다만, 신흥국의 경제 사정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자산운용사인 퍼포즈 인베스트먼츠의 시장 전략가인 크레이그 베이싱어는 “세계가 긴축 정책을 경험할 때 신흥시장은 더 큰 고통을 겪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그 고통은 과거와는 비슷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는 신흥시장에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한 제조업이 다수였으나 “오늘날의 신흥시장은 기술력이 강한 아시아가 이끌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