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칼럼] '부자 보고서'에 드러난 불평등의 민낯

2022-04-25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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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2022년 봄, 한국 사회는 소용돌이치는 가치관의 회오리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촛불의 함성 속에 공정을 외치며 정권을 잡았던 진보 정권은 아이러니하게도 똑같은 공정에 상식을 가미한 보수정권에 침몰했다. 패한 정권의 법무부 장관은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다는 빌미를 보수정권에 주었고 그 대가로 온 가족이 법정에서는 곤욕을 치른다. 새로운 정권은 공정을 지킨다며 대중 연설에서 어퍼컷을 날리고 당 대표가 십여 년간 인권을 외치는 장애인과 말싸움을 하기도 한다. 공정에 대한 개념과 경계가 허물어지며 많은 국민은 너무 혼란스럽다. 대기층에 온실가스가 차오르며 지구가 뜨거워지듯 한국 사회 대기에도 공정에 대한 불신이 층층이 두께를 더하며 대중은 분노를 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 엘리트는 국민 갈라치기 정치 기술을 터득하고 마음껏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사회 변화에 대한 단서는 2020년 말 발간된 한 권의 책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다. 샌델 교수는 트럼프가 집권하는 미국 사회를 분석하며 공정을 외치던 진보가 왜 실패했는가를 설명한다.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이 시작한 시장 세계화는 이후 40년간 금융화로 치달으며 불평등을 키웠다. 이 과정에서 진보 정권, 중도 정치 세력은 불평등을 해결한다고 흉내는 냈지만, 보수정권이 심은 ‘능력주의’ 가치관에 동조했다. 보수, 진보 구분할 것 없이 상위 10%에 속하는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 등은 누구나 노력하면 재능이 이끄는 만큼 성공할 수 있다는 기회의 공정을 최고의 사회 가치로 추구했다. 대중 인기가 높던 오바마 대통령도 “하면 된다(You can make it if you can try)”라고 연설하며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세계화가 낳은 불평등에 신음하는 미국 국민에게 ‘너의 실패와 가난은 네가 게으르고 재능이 부족하기 때문이므로 감수해야 한다’라는 능력주의에 대중은 실망했다. 더 나아가 사회의 패배자, 사양산업 노동자를 조롱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자 대중은 능력주의에 사로잡힌 진보 정권에 환멸을 느꼈다. 샌델은 굴욕의 정치(politics of humility)가 미국 사회 포퓰리즘에 기름을 부었고, 이런 대중의 분노를 읽고 영리하게 활용한 트럼프는 결국 대통령에 당선했다고 진단했다.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후 1년이 지나서도 미국 사회의 승자는 자기를 지지했고 패자가 트럼프를 지지했다고 주장했다. 샌델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2016년 미국 대선에는 이미 2022년 한국 대선 결과가 상당 부분 예견되었다. 공정과 능력주의에 대한 한국 진보 엘리트의 오만이 한국 사회 대중에게 고통과 모욕을 주지는 않았는지 곱씹어 볼 일이다.

한편 샌델의 공정과 능력주의 관점에서 최근 발표된 금융지주의 몇몇 보고서가 주의를 끈다. 먼저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매년 발표하는 한국 부자 보고서(4월)를 보자. 마케팅 효율성을 높이려는 의도와는 달리 보고서 내용 일부는 한국 사회 패배자의 시각에서는 포퓰리즘을 자극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다양한 조사 결과 중에 주목할 내용은 첫째, 현실을 넘어 일반 대중의 인식에까지 뿌리내린 불평등의 현주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대중이 생각하는 한국 부자의 재산은 217억원이었고, 부자 스스로는 187억원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설문 조사에 응답한 부자들의 실제 재산은 77.8억원이었다. 단순 비교로 보면 일반 대중의 부자에 대한 인식과 현실의 규모 차이는 약 3배 차이가 나며, 통계청 발표 2021년 한국인 가구당 순자산액, 5억2500만원과 비교하면 평균적 일반대중이 생각하는 부자는 자기보다 41.3배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보유한 사람이다. 아마 일반 대중은 부자를 까마득하게 높은 올림포스 신전에 사는 신처럼 체감할지 모른다. 이러한 불평등의 발견과 강조는 금융회사의 서비스를 부자 지향적으로 개선하는 근거가 됨은 물론 한국 사회의 패자에 대한 부자의 차별과 모욕을 일반대중이 부득이한 현실로 인정하고 또한 부자는 일반대중을 35.6분의 1만큼 미천한 존재로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할 위험이 있다. 즉 한국 사회 패배자는 금융에서도 굴욕을 인식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둘째, 하나금융 보고서는 금융서비스 차별화를 위해 젊은 부자, 영리치(Young Rich)를 특집으로 다루었는데 그 모습은 한국 사회 패자들 관점에서는 더 충격적이다. 조사 결과 영리치의 재산은 약 66억원이며 일반 대중과 약 12.5배나 차이가 났다. 한편 영리치의 직업별 연소득을 보면 비중 1위인 회사원은 2억4000만원, 4위인 기업 경영자는 8억1000만원이었다. 통계청 자료의 임금근로자 평균 연봉은 약 4400만원이므로 영리치는 최소 5.4배에서 최대 18.3배의 연소득을 더 받았다. 이것도 평균의 비교임을 참작하면 양극단의 소득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 지표를 보면서 영리치는 자랑스럽겠지만 어둡고 숨 막히는 근로 환경에서 어느 젊은 패자는 절망으로 치를 떨고 있을지 모른다. 보고서 끝에 하나금융은 부자와 영리치를 위해 모든 금융서비스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홍보를 싣고 있다.

또한 KB금융경영연구소는 4월 전세자금대출 동향을 상세히 분석한 후 전세자금대출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포함하여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제언 보고서를 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정권 교체론으로 엮어 대통령선거에 승리했으므로 다음 정부 인수위의 부동산 대책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정책제언을 채택하면 부동산 가격 안정과 가계부채 축소 효과는 있을 것이지만 서민 가계는 주거 불안정 등 큰 고통을 줄 것이다. 정부는 주택금융 전문가인 KB금융의 건의로 곤란한 정책의 선택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금융회사 보고서에서 한국 사회의 패배자에 관한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사모펀드 불법, 불공정 판매와 엮인 하나, 우리, 신한 등 금융지주의 경영진 행태로 미루어 보면 자리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반 대중은 물론 VIP 고객조차도 막 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금융 산업의 태도가 2022년 정치판처럼 금융시장에서 포퓰리즘의 반격을 불러일으키지 않을지 걱정이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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