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중소기업을 ‘보호’라는 시각에서 바라봐야 할까요.”
오동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은 최근 서울 동작구 본원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와 인터뷰에서 “중소기업을 보호가 아닌 성장 주체로 보고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짜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중기연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기관이자 국내 유일 중소·벤처기업 전문 연구기관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기업청이 중기부로 승격된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이 당면 과제로 떠오르면서 관련 정책 의제를 던지는 중기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오 원장은 “현재 정책 패러다임에서는 중소기업을 지원과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 이유로는 ‘시장 실패’를 든다.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의미”라며 “이런 시각은 잘못됐다. 이건 정책 실패이자 정부 실패이지 시장 실패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펴왔다”며 “정부에서 전자‧자동차‧조선‧반도체 등 사업 분야를 정하고 자본(기획재정부), 토지(산업통상자원부), 노동(고용노동부) 등 생산 요소를 집중 투입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생산 요소가 대기업에 집중되다 보니 중소기업과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며 “언제까지 특정 산업을 지정해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하겠나. 이제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정책에서 중소기업 중심의 기업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성장 사다리가 해법
오 원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성장 사다리’가 정책 패러다임 전환의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벤처‧스타트업-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 사다리를 구축할 경우, 산업이 아닌 기업이 성장하면서 국가 경제를 이끌 수 있다”며 “윤 당선인이 제시한 성장 사다리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정부조직상 성장 사다리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벤처‧스타트업 정책은 중기부가, 중견기업과 대기업(산업) 정책은 산업부가 관장하고 있어 정책의 연결고리가 느슨하다는 점에서다.
오 원장은 “창업 이후 중소기업까지는 중기부에서 중소기업법의 적용을 받고, 중견기업이 되면 중견기업특별법이라는 일시법으로 산업부의 관할을 받는다”며 “공식적으로 대기업 정책은 없지만 산업부의 산업정책 지원 방향은 대부분 대기업에 쏠려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중기부와 산업부 정책이 단절돼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성장 사다리는 끊기게 된다”며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연결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중기부와 산업부가 성장 사다리라는 관점에서 힘을 합쳐 기업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 접근은 긍정적··· 현실화는 과제
윤 당선인의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 공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 원장은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오랜 화두”라며 “이전까지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면서 대기업을 옥죄는 방식으로 격차를 줄이려 했다. 반면 윤 당선인은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서 격차를 줄이겠다는 멋진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방법론을 고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원장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은 쉽지 않다”며 “우리나라 제조 중소기업의 판로 구조를 보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국내 제조 중소기업 대부분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
그는 “제조 중소기업의 판매는 내수가 90%, 수출이 10%다. 내수를 다시 쪼개보면 다른 기업에 납품하는 비중이 85%, 공공기관 판매(납품)가 5%, 일반 소비자 판매가 10%”라며 “내수의 90%, 전체 판매의 89%가 납품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물량을 공급하는 납품으로는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오 원장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1000원짜리 상품 100개를 대기업에 납품하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이때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려면 생산원가를 낮춰 500원짜리를 100개 만들거나 생산량을 늘려 1000원짜리를 200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계약에 의한 납품 관계에서는 중소기업이 생산원가를 낮추거나 생산량을 늘릴 유인이 부족하다. 오 원장은 “계약서상 1000원에 100개를 납품하기로 했다면 대기업 입장에서는 200개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반대로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투자 비용을 들여가며 생산원가를 500원으로 낮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경쟁이) 살아있는 시장이라면 중소기업들이 생산원가를 낮추려 노력하겠지만, 대부분 경쟁이 아닌 관행에 따라 계약을 맺는다”며 “현장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1대 다수의 입찰제가 아니라 1대 1로 납품 계약을 맺는 경우가 많다”고 부연했다.
고용 문제도 생산성 향상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오 원장은 “생산성 향상이 일어나면 기존에 일하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며 “시장경제 원리로는 기존 노동자에게 직업훈련을 시켜 새로운 산업 현장으로 보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얘기”라고 지적했다.
오 원장은 수출과 글로벌화에 생산성 향상의 답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소기업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해외에 수출하면 된다”며 “결국 생산성 향상 정책은 판로 확대, 글로벌화와 연계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손실보상 뫼비우스 띠 끊어야··· 폐업 지원 ‘배드뱅크’ 필요
소상공인 분야에서는 폐업 지원을 실질적인 정책으로 꼽았다. 중기부는 2020년 9월부터 소기업‧소상공인에게 재난지원금과 방역지원금, 손실보상금 등으로 약 35조원을 지급했다. 하지만 오 원장은 이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했다. 소상공인들이 대부분 대출금을 갚는 데 지원금을 쓴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윤 당선인은 50조 규모의 손실보상을 공약했는데 이는 오히려 소상공인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며 “국채를 발행하면 유동성 공급으로 물가가 상승하면서 시중금리가 인상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국채발행으로 손실보상을 했더니 갚아야 할 대출이자만 늘어나게 되는 악순환”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손실보상이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야 한다”며 “손실보상을 하되 폐업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에게는 폐업 지원과 함께 신용회복을 시켜주자”고 제안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논의 중인 ‘배드뱅크’ 설립을 제시했다.
배드뱅크란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채무 재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전문기관을 의미한다. 시중은행 등 금융사가 보유한 개인사업자대출 채권 가운데 부실 징후를 보이는 채권을 사들여 채무자의 상황에 따라 원금을 일부 탕감해주거나 이자 면제, 장기 분할 상환 등의 방식으로 연착륙을 지원하는 구조다.
신용회복위원회와 연계하는 방안도 거론했다. 오 원장은 “금융위원회는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특례를 도입해 대출 상환 부담을 경감하도록 했으나, 연체 발생 1~3개월 이상 지나야 신청 가능하다”며 “소상공인이 폐업과 동시에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신청해 신용회복과 재도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취임 1주년··· “내부 질적 성장 이루고, 외부 패러다임 제시할 것”
오 원장은 새로운 중소기업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을 임기 내 목표이자 인생의 숙제라고 했다. 그는 “중소기업인들이 보호와 육성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정부 지원책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연구원에서 체감도 있는 중소기업 정책 패러다임을 만들어서 정부의 경제 정책이 잘 운영되도록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오 원장은 2006년부터 중기연에서 연구위원으로 지내다 2014년 동아대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8년 만인 지난해 6월 제8대 원장으로 선임돼 중기연에 돌아왔다. 오 원장은 “8년 만에 연구원에 다시 오니 예산과 인력이 2배 늘었더라”며 “이에 맞는 역량을 갖추기 위해 질적 성장 측면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취임 1주년을 앞둔 소회를 전했다.
그는 “연구진들은 중기연에 대한 직장으로서의 로열티(충성심), 중소기업에 대한 연구대상으로의 리스펙트(존경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하루에 세 개씩 마스크를 갈아 끼며 이러한 문화를 강조하고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로필]
△충북 청주 △미국 하와이대 경제학·한국외대 중국경제학(석사)·성균관대 경제학(박사) △2004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팀·중국팀 전문연구원 △2006년 중소기업연구원(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국제경제실 연구위원 △2014년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2021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