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만이 바꾼 기업] "속초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폐조선소… 철거 위기서 지켜냈죠"

2022-02-1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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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때 피난와 세운 칠성조선소

조선업 불황에 '에코뮤지엄' 탈바꿈

연간 40만명 찾는 관광 핫 플레이스

도로건설계획 포함… 속초시와 중재

지난 2017년까지 배를 만들고 수리 하던 칠성조선소 작업장이 전시공간으로 개조됐다. [사진=칠성조선소 ]



“오전 11시가 돼야 문 열어요.” 지난 10일 오전 강원도 속초시의 한 동네. 굳게 닫힌 가게 대문 앞으로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자 이웃 주민이 대신 영업시간을 안내한다. 얼마 뒤 대문이 열리자 3300㎡(약 1000평) 부지 너머로 푸른 청초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입구 왼편에는 폐조선소 건물이, 정면에는 신식 카페가, 오른편에는 서점이 자리한다. 어른들은 내부 곳곳에 멈춰선 선박을 구경하고, 아이들은 청초호에서 흘러들어오는 물을 맞으며 뛰어논다.
 
속초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부상한 복합문화공간 ‘칠성조선소’ 풍경이다. 1952년에 문을 연 조선소로,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카페와 전시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은 코로나19 이전에는 하루 4000여 명, 지금도 연간 40만명이 방문하는 소위 ‘핫플레이스’다. 하지만 동시에 도시계획도로가 관통하며 철거 위기에 놓인 부지이기도 하다. 이 공간을 지키려 하는 최윤성 칠성조선소 대표(42)를 만났다. 
 
칠성조선소 역사는 최 대표의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됐다. 실향민인 할아버지가 어업 부흥기였던 1960년대 배 목수 일을 하면서 터를 잡은 곳이 칠성조선소다. 최 대표는 “할아버지는 고향인 함경남도 원산에서부터 배 목수 일을 했다”며 “6‧25전쟁 때 피난을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조선소를 연 이듬해에 태어났다”고 전했다.
 

칠성조선소 야외공간에서 음악회를 연 모습 [사진=칠성조선소]


 
최 대표에게도 칠성조선소는 뜻깊은 공간이다. 그는 이 공간에 대해 “유년시절을 보낸 놀이터이자 아버지의 일터”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부 시절 조각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이유도 이곳에서 보낸 추억 때문”이라며 “어릴 때부터 배를 만드는 일에 호기심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돌아오리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 대표는 미국에서 유학하며 배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다 졸업 후 속초로 돌아왔다. 이후 칠성조선소 옆에 ‘와이크래프트보츠’라는 레저 선박브랜드 간판을 달고 카누와 카약을 만들어 판매했다. 하지만 조선업이 어려워지면서 조선소를 지속할 수 없게 되자 복합문화공간 사업을 구상했다.
 
공간의 콘셉트는 ‘에코뮤지엄’으로 잡았다. 에코뮤지엄은 지역 고유 문화와 건축 유산, 자연환경 등을 그대로 보존·계승하면서 이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형태의 박물관을 말한다. 최 대표는 배나 선박 인양 철로 등 기존 조선소 시설은 그대로 보존하되 쓰임을 달리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배를 만들고 수리하던 공간은 전시관으로, 레저용 선박을 건조하던 공장은 카페로 바꿨다. 가족들이 살던 집은 북살롱(서점)으로, 공터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개조했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조선소는 그렇게 재탄생했고, 배 목수들이 떠난 자리를 관광객들이 채웠다.
 

속초시 도로건설계획에 포함된 도시계획도로가 들어서면 사진 왼편 북살롱과 오른편 전시장 건물은 철거 위기에 처한다. [사진=김경은 기자]


 
하지만 최 대표는 공간을 재단장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실을 알게 됐다. 속초시 도시계획도로 건설계획에 조선소 부지가 포함돼 있다는 것. 1977년에 발표된 계획으로 지난 40년간 추진되지 않았지만 추후 속초시가 기존 계획대로 도로를 건설하게 되면 칠성조선소는 일부 건물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이다. 최 대표는 곧장 속초시청을 방문해 어려움을 호소했으나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 부지를 팔거나 건물을 올려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니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을 뿐”이라며 “이런 이유로 도로건설계획을 변경할 수 없는지 시청에 수차례 문의했으나 바뀐 건 없었다. 오히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에너지가 소모됐다. 한 담당자에게 ‘대의를 위해 칠성조선소를 밀어버릴 것’이라는 협박도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건 중소기업 옴부즈만이었다. 옴부즈만은 중기‧소상공인 관련 불합리한 규제와 애로를 개선하는 정부기관이자 개인이다. 최 대표가 청년혁신가로 활동 중인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옴부즈만에게 이야기가 전해졌다. 박주봉 중기 옴부즈만은 2019년 직접 칠성조선소를 찾아 최 대표를 만났고 이후 속초시에 규제 개선을 건의해 협조를 이끌어냈다.
 
속초시는 “원활한 개발 지원을 위해 해당 도시계획도로는 존치가 필요하며 현재로서 노선 해제는 어렵다”면서도 “향후 도시개발 여건 변화 시 주변 환경을 재검토해 폐지 등 도로 개설 여부를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옴부즈만에게 전달했다.
 
중기 옴부즈만과 속초시의 적극행정으로 지역 관광명소를 지킬 수 있게 된 만큼 칠성조선소 측도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최 대표는 “아직 도로건설계획 변경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속초시와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다”며 “속초는 바다, 호수, 산 등 가진 게 많은 도시다. 도시화에만 집중하지 않고 자연이 가진 것들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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