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기업에게 있어 혁신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대표적으로 기술혁신은 산업혁명 이후 기업의 경쟁을 성공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많은 산업에서 기업들은 매출과 이익의 3분의 1 또는 그 이상을 최근 5년 내 개발된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애플이나 삼성전자와 같은 전자기업은 물론 존슨앤존슨, 3M 역시 매출의 절반 이상은 최근 5년 내 출시한 제품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혁신의 중요성이 증가하는 것은 시장의 세계화에 기인한다.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은 기업들에게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여야 한다는 압박으로 작용했다. 전세계를 뒤덮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보다 앞당겨진 비대면 정보기술 수요의 증가와 디지털 대전환은 소비자가전과 IT 등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던 우리 기업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작년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기술혁신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업의 일반적인 노력 및 활동과는 질적으로 다른 변화를 초래한다. 과거 기업 스스로의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업 성과를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는 시대로 변화하면서 기술혁신은 기존제품보다 우수한 제품과 새로운 공정의 개발을 통해 제품의 가치 자체를 변화시키고, 훨씬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으로 바뀌었다.
정보기술 발달은 컴퓨터를 이용한 디자인과 제조를 가능하게 하였으며, 이를 통해 기업은 더 쉽고 빠르게 신제품을 디자인하고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날로그 형식의 정보와 문서가 디지털 형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혁신은 가속화되었다. 또한 디지털 기술이 기존 업무 프로세스에 접목이 되면서 유연제조기술은 경제적 생산을 위해 필요한 생산의 최소단위를 줄어들게 함으로써 보다 세밀한 고객집단을 타기팅 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 고객만족(customer satisfaction)이라는 단어와 달리 최근 고객경험(customer experience)이라는 단어를 기업들이 많이 사용하는 주된 이유이다.
가전만 하더라도 상향 평준화된 제품의 성능보다는 차별화된 고객경험이 중요한 경쟁력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다양한 가전제품에 인공지능(AI)를 접목해 맞춤형 기능을 제안하거나 우리의 일상가전을 기반으로 건강관리, 펫케어 등 서비스 출시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대표적 디지털혁신의 사례이다.
이처럼 시대가 또다시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혁신은 디지털 경제에서 효과적인 조직 운영을 위해 기업의 운영 방식과 조직이 고객경험과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 과거 가전기업들은 단지 해당 목적을 위한 제품 개발에만 신경을 쓰면 되었다. TV는 영상에 대한 시청을 위한 용도였기에 보다 선명하고 깨끗한 화질이 경쟁의 기준이었고, 세탁기는 경쟁사 대비 적은 물과 전략을 사용하여 빨래만 깨끗이 잘되면 되었다. 하지만 디지털혁신에 있어서는 기업이 고객경험과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에 있어 변화를 필요로 한다.
팬데믹 이후 기업들은 회복탄력성과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경쟁력과 대응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였으며, 디지털혁신은 기업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 요즘 소비자들의 활동은 거의 대부분이 온라인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물건을 구매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한다. 은행 업무는 물론 손안의 디지털 환경에서 생활이 이루어진다. 기업은 이러한 소비자가 존재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소비자에게 다가가 가능한 한 최고의 고객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혁신은 고객에게 보내던 우편물이 단순히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상에서 우리의 고객이 어떠한 행동을 보이는지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이를 위해 기업들은 새로운 업무방식과 혁신적인 디지털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조직의 역량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조직역량 변화의 중심에는 기술이 아닌 사람이 있다.
기업은 더 이상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따라 어떠한 기업이든지간에 오랫동안 유지해 온 기업의 프로세스를 바꾸거나 조정해야 할 필요가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며, 관성에 충실하다. 기업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기업에 생각이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이 아닌 지금의 변화된 세상을 이해하고 새롭게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디지털혁신을 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는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들에게 묻는다.
이와 같은 질문에 누군가는 디지털혁신 인재가 누구인지 따져 물을 것이다. 그리고 소위 데이터 인사이트를 발굴해 이를 업무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 디지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을 선발해 기업들에게 적합한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기업들은 디지털혁신을 위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전문가의 채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에 대한 훈련기회를 확대해 현장에 충분한 인력이 공급되어야 한다 이야기한다. 채용 즉, 일자리 확대가 답이라는 것이다.
또한 다른 누군가는 디지털혁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주장할 것이다. 선조의 양병계획에 따라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이 떠오른다. 물론 이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지만,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기 전 인재육성에 선제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대학교육에 대한 혁신적 변화가 선행될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학문 간 벽이 높은 우리네 대학 교육에서 이러한 인재를 키우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상태에서도 전문적인 기술적 교육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변화된 환경에서 요구되는 인재는 단순한 전문기술만을 갖춘 사람이 아니다. 디지털혁신 인재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지식과 시각으로 문제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 채용과 양성, 디지털혁신에 대한 동상이몽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또 하나의 착각은 모든 기업이 삼성이나 LG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혁신인재가 가고자 하는 기업은 정해져 있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입장에서 신규 채용만이 능사는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 직원을 재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 디지털 세상에는 두 가지의 사람들이 공존한다 말한다. 처음부터 디지털 세상에서 태어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디지털 원어민)와 아날로그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디지털 세상에 적응한 디지털 이미그런트(digital immigrant, 디지털 이민자)가 그들이다. 디지털 혁신인재라고 모두가 네이티브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디지털혁신의 시작은 현재 기업의 기술 수준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디지털혁신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로 변화하는 데 관심을 두었으며 이에 따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기술인력의 확보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모든 기업에 있어 이러한 기술이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기업의 프로세스를 보다 면밀히 들여다보고 문제를 찾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적재적소에 적합한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국내 마스크 부족이 지속됨에 따라 삼성은 중소기업에 대한 생산량 증대를 지원하였고 이에 따라 단기간에 생산량을 최대한 늘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러한 과정에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이 사용된 것이 아니다. 현장의 제조공정 개선과 생산운영을 위한 기술이 전수되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마스크 생산 중소기업들은 이와 같은 표준화된 공정설비와 효율화 과정을 통해 생산량이 하루 4만개에서 10만개로 늘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이다. 디지털혁신을 위한 정책적 뒷받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감히 그 시작은 표준에 있다 주장한다. 기술과 달리 표준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활동이다. 규칙이나 심판이 나에게 유리하지 않다면 출발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내몰리는 것과 같다. 만약 게임의 규칙을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이를 놓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 정부는 이와 같은 세계적 경쟁구도를 이해하고 국제표준화에 있어 우리나라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체계를 구축하였다. 300-60 프로젝트는 전기·자율차, 스마트시티 등 10대 표준화 분야의 국제표준에 대해 300건을 선도적으로 제안하며 국제표준화기구 의장단을 60명까지 확대하고자 목표를 세우고 진행 중에 있다.
기업의 성공은 기술의 우수성에 국한되는 것이 아닌 기술이 안정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 시장성의 확보와 이에 대한 보호 과정을 필요로 한다. 표준은 시장성을 담보하며 모든 기업들이 동일한 선상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가 나서서 우리 기업들이 표준의 제정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부는 기업이 시장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기업의 표준 전문가들이 사내표준이나 기술표준을 만드는 것만이 그들의 역할이 아니라 표준전략을 통해 우리 기업에 유리한 시장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표준 전문가의 체계적인 양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표준을 전문적으로 교육받은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표준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표준제정에 많은 시간을 쏟는 대신 외국에서 만든 표준을 그냥 차용하는 데 급급하였다. 그 결과 뛰어난 기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경쟁은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다.
닷컴버블이라 불렸던 21세기 초, 기술혁신 과정을 통해 다양한 기술들이 등장하며 성장하였지만 기술고도화 및 시장규모 확대에 대한 어려움은 많은 기술기업의 몰락을 야기하였다. 이 과정에서는 우리는 기업이 기술만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4차산업혁명시대, 첨단 융합기술의 발전은 그 속도가 빠르고 정교하여 섣불리 표준을 개발하고 제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국제표준화 선점에 뛰어들고 있는 지금, 우리가 머뭇거리고 있을 이유는 없다. 이종기술 간의 융합이 신산업의 핵심으로 부각되는 지금, 한발 더 뻗어 나가야 한다. 표준은 공학자들만의 것이 아닌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요한 자산임을 인식해야 한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IT정책과 관련하여 가장 큰 변화를 제시하였다. 공공연하게 IT산업을 키워봐야 일자리만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결국 정보통신부를 해체하였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은커녕 덕분에 국내 산업에서 첨단 IT에 대한 화두가 일시에 사라졌다. 경쟁국들이 모바일 산업을 중심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동안 우리는 정보통신기술을 책임질 주관부처조차 없이 표류했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부가 디지털 환경으로의 변화에 대한 세계적 흐름을 외면하고 역행한 결과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김재영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영정보학과 ▷고려대 경영학 박사 ▷한국정보시스템학회 이사 ▷4단계 BK21 융합표준전문인력 교육연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