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영화 제목이 아니라 독일 경제를 나타내는 말이다. 이른바 ‘황금시대(Goldene Zeit)'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이 경제지표상에 나타나고 있다. 2020년 통계로 3000억 유로의 경상수지, 즉 수출을 해서 돈을 가장 많이 번 나라가 독일이다. 수출 규모에서 중국이 더 많지만 이윤은 독일이 가장 많이 남기고 있다. ‘경제 동물’이라고 부른다. 2021년 국내총생산(GDP)에서도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독일이 4위(4조3192억 달러)를 유지하고 있다. 인구수로 중국(14억4000만명), 미국(3억3000만명), 일본(1억2500만명)에 비해 독일은 8000만명으로 최고 생산성을 보여준다. 또한 독일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에서 지난 20년 동안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가 발표한 지수다.
독일이 어떻게 산업 최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경제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고 있는가?
둘째, 독일 국민의 DNA인 ‘소명의식’이다. 최고 일꾼으로 거듭난 것이다. 500년 전 독일 마르틴 루터 신부는 종교개혁을 외치면서 ‘소명의식’을 제시했다. 하늘의 소리로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면 천국에서도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는 ‘성실성과 근면성’에 기반한 ‘프로테스탄티즘 정신’이라고 규정했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독일인들은 꾀병을 부리지 않는다. 열심히 일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같은 베짱이는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휴가가 가장 많고, 근로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창의성을 위해서다. 오죽하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 토머스 게이건은 <미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야>라는 책을 발간해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독일 사회보장제도를 높이 평가한 것이다.
셋째, ‘마이스터’ 인재 양성 방식이다. 독일은 고졸 학생 중 3분의 1만 일반 대학에 진학한다. 또한 3분의 1은 마이스터가 되기 위해 3년 반 동안 ‘아우스빌둥(Ausbildung)', 기업이 제공하는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 ‘기업 사관학교’로 기업이 인재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리와 차이 나는 점이다. 글로벌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지멘스는 매년 약 7000억원을 투자해 인재 양성에 나선다. 졸업자들은 마이스터로 성장해 독일 산업의 역군이 되고 있다. 마이스터는 기술자를 넘어 산업의 리더로, 동네 선술집에 가면 맥주 한 잔을 무료로 제공할 정도로 존경받는다. 2021년 OECD 보고서는 “독일 아우스빌둥 인재 양성 모델이 이상적”이라고 평가했다.
넷째, ‘미텔슈탄트’, 히든챔피언 강국이다. ‘구구팔팔’이라는 용어가 있다.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일자리 80% 이상을 만든다는 의미다. 독일에서 중소기업을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하는데, ‘산업의 허리를 담당한다’고 말한다. 독일 정부의 경제·산업 정책은 대기업이 아니라 당연히 중소기업 중심이다. 세계 경쟁력을 갖춘 독일 히든챔피언이 1350개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이들이 지멘스, 벤츠, BMW, 보쉬 등 대기업과 함께 독일 산업을 이끌고 있다.
다섯째, ‘노사공동결정제’이다. 독일에서 노사 관계는 타도나 투쟁의 대상이 아니라 상호 파트너로 인정한다. 보수 정권인 아데나워 총리 시절부터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하기 시작해 브란트 총리 시절에 2000명 이상 기업에 적용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주요 인사와 정책을 노사가 함께 결정하는 제도다. 투명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독일식 ‘코포라티즘’ 문화를 만든 것이다. 노조 간부들이 투쟁이 아니라 경영진과 협상을 하기 위해 공부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독일 하원에서 노조 간부 출신 의원 비율이 가장 높다. 또한 노사공동결정제가 잘 이뤄지는 기업이 생산성과 복지제도가 발전했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다행히 한국에서 필자가 ‘경제민주화’를 서울시(박원순 전 시장 당시)에 제안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노동이사제’가 첫 도입됐다. 20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까지 노동이사제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섯째, 사회안전망을 갖춘 복지국가다. 독일은 사회보장제도를 시혜가 아닌 ‘사회적 연대’로 간주한다. 5대 사회보장제도인 건강, 재해, 실업, 연금, 간병보험에다 사회적 부조인 약자에게 월세 지원, 서민층 대학생에게 생활비 지원(BaFoeg : 무이자로 월 100만원), 어린이와 부모 수당 지급 등 ‘약자를 위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비전과 업적을 보여주는 정치 리더십과 협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리더들은 평균 10년간 재직하면서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핵심 문제를 풀어갔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서방정책과 총리 민주주의, 에르하르트는 라인강의 기적, 키징거는 대연정, 브란트는 동방정책과 더 많은 민주주의, 슈미트는 경제위기 극복, 헬무트 콜은 평화 통일, 슈뢰더는 사회경제 개혁, 메르켈은 대통합의 정치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비록 정파가 다르더라도 연정으로 전임자의 위대한 업적을 이어갔다. 아데나워의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을 브란트가,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복지정책을 콜이, 슈뢰더의 사회개혁 정책을 메르켈이 이어가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갔다. 8명의 총리들은 겸손하면서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치를 우선했고, ‘빠’시즘이나 패거리 정치를 멀리했다. 친아데나워, 친브란트, 친콜이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들과 가장 큰 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러피언 드림’, 즉 독일 모델을 꿈꿨다. 대연정을 제안했지만 당시 야당에 무시당했다.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롤 모델로 독일(26.8%)을 가장 많이 꼽았고, 이어 스웨덴, 미국, 영국 순이었다. 독일은 분단 국가였지만 평화 통일을 이룬데다 경제강국일 뿐만 아니라 청년실업, 양극화, 전국 균형 발전, 성평등, 유럽 중심 국가 등 대한민국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먼저 풀어갔기 때문이다. 독일과 비교할 때 우리도 강점을 가지고 있다. 독일이 소명의식이라면 우리는 더 위대한 ‘신명의식’을 보여준다. 세계 136개국에서 ‘디아스포라’로 활동하는 유일한 나라다. 다만 독일과 비교하면 정치·경제 리더십이 턱없이 달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차 산업혁명을 독일에서 벤치마킹했고, 3차 산업혁명(정보화)은 YS·DJ가 미국을 패스트 폴로했다면, 이제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담대한 리더를 우리 국민은 기다리고 있다. 독일 경제를 뛰어넘을 비전과 공약을 제시하는 담대한 지도자다.
김택환 교수 주요 이력
▷독일 본(Bonn)대 언론학박사 ▷미국 조지타운대 방문학자 ▷중앙일보 기자/국회 자문교수 역임 ▷광주 세계웹콘텐츠페스티발 조직위원장 ▷현 경기대 산학협력단 교수
언제나 감명깊게 보고 갑니다ㆍ
진정한 리더쉽의 지도자를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