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모든 게 변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음식점에서 여럿이 식사할 수 없고, 북적이던 거리는 한산해졌다. 밀집된 공간에 모이는 것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그러나 거리두기를 통한 코로나 확산 방지는 '노숙인 정책'에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여전히 다수가 한방에서 생활하고, 확진자가 나온다고 해서 개별적으로 격리를 할 여유도 없다. 이 때문에 노숙인들은 24시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 이후 집단감염 위험성이 커지고 있지만 시설 중심의 노숙인 정책과 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설 중심 안 돼"…코로나19 이후에도 변함없는 '노숙인 정책'
인권위가 서울시에 권고한 사항은 △감염병 예방과 확산방지를 위해 노숙인복지시설 정비·대응지침 개선 △임시주거지·무료급식 제공 등 사업 확대 △노숙인 환자를 위한 응급조치와 의료지원 체계 개선 등이다.
인권위가 노숙인 일시보호시설에서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2월 사이 거리노숙인 중 코로나19에 감염된 인원은 100명을 넘었다. 이들과 밀접접촉한 인원은 최소 25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에도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간 격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노숙인 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숙인들의 '주거 상실'이라는 현재 상황에 초점을 맞추고 상황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거지원 필요계층에 '노숙인 등'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2020년도 서울시 재난 상황에서 노숙인 등 인권상황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필요한 사회복지서비스는 주거지원, 의료지원, 소득보조 순으로 집계됐다.
◆"'주거우선' 정책 펼쳐야"
2020년 4월 유엔 주거특별보고관은 '코로나19 지침'을 통해 "전염병에 직면해 적절한 주택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홈리스에 대한 잠재적인 사형 선고"라며 주거 제공을 촉구했다. 노숙인복지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기존 법은 이른바 '시설 중심'으로 편성돼 있다. 사실상 시설을 거치지 않으면 노숙인들이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시설을 일종의 '열린공간'으로 노숙인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해 치료 등과 연계해 관리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들은 정신적, 신체적 이유로 시설에 오래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강압적보다는 노숙인들이 시설 등에 거부감 없이 들고 날 수 있는 ‘열린 시설’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며 "들어온 노숙인들이 시설을 편하게 여기고 자주 방문하는 과정에서 자활 의지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설' 자체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오히려 개별적인 주거 공간 등 지원과 치료를 연계해 나가는 방법이 있다는 주장이다.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노숙인 등'이란 노숙인 시설을 이용하거나 상당한 기간 동안 노숙인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등을 뜻한다.
해외에서는 긴급한 소요에 필요한 임시보호시설을 제외하고, 노숙인들이 장기간 생활하는 시설은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주거우선(housing first)' 원칙에 입각해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으로의 이주를 지원하고 있는 것.
이 과정에서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 등 치료보다 일정한 주거지를 지원하고 당사자가 원하는 필요 서비스를 연계해 주거 유지를 지원하고 있다.
정원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숙인이어도 재사회화가 필요한 사람이 있고 필요 없는 사람도 있다"며 "이들을 구분해서 필요한 사람은 재사회화와 직업 교육을 통해 지역 사회에 복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