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북한 미사일 도발과 대북정책의 전환

2022-02-0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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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교수]

 
지난해 문재인 정부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착을 명분으로 종전선언을 위해 소중한 외교역량을 허비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새해 들어 1월에 각종 탄도미사일을 일곱 차례나 발사하고 국민안전을 위협하였다. 북한의 숨겨온 본색이 드러나며 남북관계도 냉탕으로 돌변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1월 5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후, 연이어 위협적인 도발을 자행해왔다. 1월 20일 북한 노동신문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발사 모라토리엄’ 선언의 철회 가능성을 보도했다. 1월 30일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 (IRBM)을 발사하였고, 이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북한 스스로 약속한 모라토리엄 위반이며 UN 안보리 결의위반”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하였다. 국제사회에서도 북한 도발을 규탄하는데 적극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문 정부는 북한의 도발 행위들에 대해 ‘도발’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고, 침묵하거나 ‘유감’이란 단어로 대신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북한이 중거리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자 그제야 규탄성명을 발표하였다. 여전히 ‘도발’이란 말은 쏙 빠졌다. 정부가 북한 도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현실을 회피하려는 태도인지 궁금하다. 정부의 안보 불감증이 우려된다. 이제 북한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지난 5년간 문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북한의 비핵화도 전혀 찾을 수 없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물거품이 되었다.
 
북한은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보여왔던 관망 자세에서 벗어나 도발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시계 바늘이 2017년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당시 한반도 상황은 최악이었다. 북한은 6차 핵실험과 ICBM 발사를 지렛대로 삼아 한국과 미국을 협박하였다. 문 정부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 미·북 간 대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고, 북한에 미북정상회담이라는 선물을 두 번씩이나 안겨주었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고, ‘북한의 비핵화’는 볼 수 없었다. 북한은 또다시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모라토리엄 파기’라는 카드를 꺼내 협박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실체이다. 북한은 ‘벼랑끝 전술’을 통해 ‘협박, 대화, 보상’의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핵과 전략무기들을 개발해왔다. 북한의 속셈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 국민을 인질로 삼아 위협한 후 협상을 통해 보상받기를 원한다. 북한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북한이 최근 도발수위를 높이고 있는 배경을 다각적으로 알아보자.
 
첫째, 작년 하반기 북한은 문 정부가 추진했던 종전선언을 지렛대로 삼아 UN의 대북제재 해제를 기대했으나, 미국의 호응 없이 무산됨에 따라 잇따른 도발을 통해 바이든 정부를 압박하려는 시도다.
 
둘째, 북한은 미·중, 미·러 갈등 국면을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더욱 강경한 대중 압박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며 미·중 기술패권 경쟁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통해 동맹국들과 반중국 전선을 확대하고 있어, 중국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대만 문제를 놓고 중국과 날 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였다. 바이든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중 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북한의 도발 행위를 제재하는데 미국과 중국이 한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한편 바이든 정부와 서방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부를 놓고 푸틴 정부와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양측의 무력충돌도 배제할 수 없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철군 시 국제사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도 하락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경우,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 현재 바이든 정부는 이 문제 해결에 정신이 없다. 북한은 미 정부가 중국·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는 현재 상황을 호재로 보고 ‘모라토리엄 파기’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사용하여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고 한다. 북한은 자신이 심각한 도발을 하더라도, UN 안보리에서 동맹국인 중국·러시아가 대북제재에 쉽게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셈법을 갖고 있다.
 
셋째, 북한은 오는 11월에 실시될 미국의 중간선거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 바이든 정부의 외교력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북한이 ICBM을 발사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 실패로 여겨져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수 있다. 북한은 이러한 점을 고려해 바이든 정부를 압박하여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에 집중된 미국의 관심을 다시 한반도로 끌어내고 향후 미·북 협상에서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속셈이다.
 
넷째, 비록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였지만, 동계올림픽은 여전히 글로벌 시민들의 주목을 받는 세계적인 잔치이다. 북한은 북핵·ICBM 문제를 이슈화시켜 주목을 받기 위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중거리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는 등 ‘벼랑끝 전술’을 폈다.
 
다섯째, 북한은 지난 몇 년간 문 정부와 손을 맞잡고 북한 비핵화를 구실로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였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북한이 또다시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한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함이다. 북한은 남남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 행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나약하고 무책임한 모습만 보였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데도 여권에서는 여전히 금강산관광 재개와 DMZ 관광추진을 주장하였으며, 종전선언의 필요성까지 강조하고 있어 걱정스럽다. 정부는 대북 유화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안전을 위해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올해는 북한의 도발수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남북관계는 물론 미북관계도 출렁일 것이다. 문 정부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주장하는 동안 북한은 핵 개발과 탄도미사일 성능 고도화에 주력해왔다. 북한이 한국 국민을 볼모로 삼아 핵 인질극을 벌이다고 해도, UN의 대북제재 완화와 같은 당근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비핵화가 없는 종전선언은 무의미하다.

차기 정부는 실패한 대북 유화정책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한미동맹 관계를 복원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이룰 수 있는 대북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강력한 한미동맹과 UN의 대북제재 프레임을 바탕으로 한·미·일 안보협력관계를 견고하게 구축해야 한다. 북한의 기습적인 핵미사일 공격을 사전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위력을 갖추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을 대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이나 믿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한반도에서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튼튼한 국방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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