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미·중 기술패권 경쟁 본격화 . .경제·안보 콘트롤타워 만들자

2021-12-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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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윤 교수]


최근 미·중 간의 기술패권 전쟁이 치열하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이후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 장악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한 치의 양보 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년초 발생한 차량용 반도체 칩의 공급부족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공급망 재구축 문제가 미국의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미 정부는 지난 4월부터 세 차례에 걸쳐 백악관 대책회의를 추진해왔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참여하여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대한 해결대책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미 의회는 중국을 타깃으로 한 각종 규제 법안을 만들고 있다.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지난 10월 대중국 무역정책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미국과 중국은 충돌 방지를 위해 지난 12월 15일 미·중 정상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였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최근 미국이 신장인권 문제를 내세워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는 등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미·중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반도체, 인공지능 등 미래산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최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명분으로 삼아 삼성, TSMC 등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유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이 중국에 이전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봉쇄하고 있으며, 국가안보 차원에서 미국 첨단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 이후,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을 압박하는데 외교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현재 미 정부는 과거 트럼프 정부보다 더 정교하고 강력한 대중국 압박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안보협력체제 구축과 기술동맹 강화를 위해 쿼드(Quad), 오커스(AUKUS), 파이브 아이즈 등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EU와 함께 반도체공급망, 불공정무역관행 등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무역기술위원회(TTC)를 발족하였다.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 대표와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차관이 각각 11월과 12월에 방한하여 내년초 출범시킬 계획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 네트워크(IPEF)에 동참해 달라는 모습을 보였다.
 
향후 바이든 정부는 핵심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제안보 문제를 더욱 강조하고, 동맹국들에게 대중국 견제를 위한 연대 활동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물론 미국의 경쟁국인 시진핑 정부도 주변국가들이 미국 진영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압박 수위를 높일 것이다.

미국의 우방국들은 화웨이 통신장비 도입을 금지시키는 등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미국의 대중 압박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호주는 중국으로부터 관세인상, 수입제한 등 무역보복을 당하였다. 최근 중국은 아베 전 일본 총리의 ‘대만 군사개입’ 발언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였다. 일본은 미국의 중국 포위망 구축에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여 경제안보 담당 장관직책을 새로 만들고 경제안보 콘트롤타워인 경제안전보장담당실을 신설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편 문재인 정부는 최근 글로벌 공급망 사태 등 경제안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장관급 협의체인 '대외경제안보 전략회의'와 외교부 내 '경제안보 T/F팀'을 조직하였다. 정부는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값비싼 교훈을 얻은 바 있다. 2017년 사드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 조치로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2019년 7월 일본 아베 정부의 기습적인 경제보복 조치로 한·일 무역전쟁이 촉발되었고, 핵심 수출제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소재를 조달하지 못해 애를 태웠던 경험도 있다. 문 정부는 아베 정부의 무역보복에 대한 대응카드로 지소미아 파기를 꺼내 들어 국민에게 안보 불안감을 주었다.
 
그동안 문 정부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만 매달린 채, 경제안보 현안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지난 10월 중국이 요소수 수출 제한을 실시함에 따라 국내에서 요소수 품귀 사태가 발생하였다. 자칫 국내 물류가 마비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차이나 리스크 등 몇 차례의 위기사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대처에 미흡했다.
 
세계 곳곳에서 경제안보 문제와 관련된 이상징후가 발생하고 있다. 12월 7일 바이든 대통령은 미·러 화상 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시 강력한 경제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였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는 유럽으로 배송되는 '아말-유럽 천연가스관' 밸브를 갑자기 닫아 버렸다. 유럽 시민들은 가스 가격 폭등으로 추운 겨울을 맞게 되었다. 12월 23일 중국 정부는 전기차 등 첨단기술 제품에 필요한 희토류를 통제하기 위해 국유기업 중국희토그룹을 출범시켰다. 우리나라는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희토류를 보복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국내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전 세계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 군사적인 대결을 자제하는 대신, 경제적 압박과 보복 조치 등을 통해 자국의 힘을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모호한 외교적 줄타기를 해왔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견제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차기 정부는 외교적 노선을 분명하게 정해야 할 것이다.
 
차기 정부는 미·중 갈등 속에서 쿼드 가입 등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그 후속 파장에도 대비해야 한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경제안보 문제를 최우선시하는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어, 우리도 북핵 문제와 함께 경제안보를 국가 현안으로 다루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중국 무역 의존도가 높다.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정에서 촉발되는 미·중 갈등에 따라 국내경제와 산업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큰 만큼, 후유증 최소화를 위한 사전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경제안보는 산업, 국민,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이다. 내년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유관부처를 총괄하는 콘트롤타워를 만들고 체계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산업, 학계, 정부 간의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정보기관, 군, 각 부처에서 ‘레드팀’을 도입하여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한 조기경보 시스템을 전사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 삼성, LG도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는 전담조직을 신설했다. 미국 CIA는 조직 역량을 기존의 대테러에서 정보수집 분야로 이전하고 있다. 이는 미·중 간의 치열한 기술패권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과 경제안보에 대한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새 정부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장면을 보여 주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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