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상우의 필모그래피를 키워드로 정리한다면 '청춘'과 '액션' 아닐까? 영화 '화산고'(2001)를 시작으로 '동갑내기 과외하기'(2003), '말죽거리 잔혹사'(2004), '신부 수업'(2004), '청춘 만화'(2006)를 거쳐 최신작 '탐정'(2015~2018) 시리즈, '두 번 할까요'(2019), '신의 한 수'(2019) '히트맨'(2020) 등에 이르기까지 '동네 형' 같은 친근한 캐릭터와 그에 대비되는 놀라운 액션을 선보여왔다. '청춘'과 '액션'을 한 장르에 녹여낼 수 있는 배우이자, 40대에 들어서도 그 키워드를 잃지 않는 이는 권상우가 유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권상우에게도 '변화'의 시기가 왔다. 드라마, 코미디, 액션 장르에서 친근하고 유쾌한 캐릭터들을 소화해왔던 그가 첫 악역을 맡게 된 것이다. 연기 데뷔 21년 만에 첫 악역이자 첫 사극 장르를 출연하게 된 권상우. 익숙하고 친근했던 그에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게 됐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감독 김정훈, 이하 '해적2')을 통해서다.
극 중 권상우는 보물을 노리는 역적 '부흥수' 역을 맡았다. 신출귀몰한 무술 실력과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맹렬한 기세를 가진 인물. 더 높은 권세를 얻기 위해 인생의 승부수를 띄운 그는 왕실의 보물을 찾아 나선 '무치' '해랑'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작품 안에서는 악역이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어요. 성공욕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여러 배우가 나오는 작품에서 재미있는 배역이 있다면 하고 싶었고 그 연장선에서 이번 작품을 선택했죠."
첫 악역이자 사극 장르라는 큰 과제를 앞에 두고도 부담을 덜어낼 수 있었던 건 김정훈 감독에 대한 신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탐정' 시리즈로 호흡을 맞춰왔다. 권상우는 김 감독에 대한 믿음과 애정으로 '해적2'에도 흔쾌히 합류했다.
"'탐정: 더 비기닝'은 제게 제2의 도약을 하게 해준 작품이었어요. 그 당시에 배우로서 벼랑 끝에 몰린 기분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돌파시켜준 작품이었어요. '쩨쩨한 로맨스' '탐정' 같은 영화가 처음엔 주목받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연출의 힘으로 극복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신뢰가 갔고 감독님을 더 존경하게 되고 인정하게 된 것 같아요."
연기 데뷔 21년 만에 발견하게 된 권상우의 새 얼굴. '해적2' 속 악역 부흥수는 권상우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장기인 '액션'을 마음껏 펼치고, 극의 무게를 잡으며 주인공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판'을 만들어주었다. 권상우 역시 자신의 새로운 면면이 만족스러운 듯 장르·캐릭터·배역의 스펙트럼 확장에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간 웃음과 감동이 있는 작품만 했는데 '나도 다른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배우로서 확장성을 보여줄 기회가 아니었나 싶어요."
권상우는 '부흥수' 캐릭터를 하이에나에 비유하며 동물적인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주인공들을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압도적인 느낌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악역이지만 멋지게 나오려고 했어요. 주인공들을 쫓는 하이에나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고 연기에도 적용하려고 했죠."
'해적2'는 권상우의 장기인 '액션'을 십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간 선보였던 액션과는 다른, '부흥수'의 옷을 입은 권상우의 액션은 더욱더 묵직하고 거침없으며 예리해졌다. 하지만 그는 '해적2' 속 액션을 선보이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어려움이 뒤따랐다는 것을 털어놓기도 했다.
"검술 액션은 처음이었어요. 모조 검이라고 해도 금속이기 때문에 (상대와) 합이 잘 맞지 않으면 위험했어요. 제가 잘못하면 상대가 다칠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이 압박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지금까지 저는 '맨몸 액션'을 해왔는데 지금까지는 그게 잘 맞고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는데, 검술 액션은 몸과 몸이 아니라 검을 매개로 액션을 펼쳐야 해서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액션 장인' 권상우에게도 어려운 액션이 있다니. 그는 맨몸 액션이 아닌 검술 액션을 하며 실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실제로 촬영하다가 다치기도 했어요. 아킬레스건을 다쳤는데 6바늘 정도로 꿰맸거든요. 사실 조금 놀랐어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뼈가 보일 정도로 상처가 깊더라고요. 촬영 끝나자마자 서울로 와서 꿰맸죠."
그런데도 권상우는 몸을 사리지 않고 액션 연기에 임했다. 깁스를 하고 촬영에 임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으나 "부상이 아니었다면 조금 더 역동적인 액션을 보여주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니 액션에 관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그의 연기 철학과도 맞닿아 있었다.
"몸을 잘 쓰는 배우가 좋고,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좋은 외모와 목소리도 중요하겠지만 '몸짓'이 자연스러운 걸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연기에서 '몸짓'이 주는 비중이 크다고 생각해요. 50% 이상으로요."
어느새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청춘스타' '액션 배우'라는 타이틀롤을 가진 배우. 그는 "전작의 이미지 덕분"이라고 담백하게 답하면서도 "요즘 40대는 청춘"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선배들이 활발히 활동하시는 걸 보면 더욱 힘이 나죠. 40대면 청춘 아니겠어요. 하하하. 앞으로 더 나이를 먹으면 그에 맞는 중후함을 가지게 되겠죠? 배우로서 또 다른 장점을 가지게 될 거예요. 지금은 지금 제게 맞는 나름의 팔딱거리는 활기찬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그는 가장 자신 있고 좋아하는 '액션 연기'를 환갑까지 하고자 끊임없이 자기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노화가 오지만 어떻게든 늦추려고 한다"며 신체적 움직임이 둔해지지 않도록 훈련을 거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으로도 액션 연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그것에 맞게 준비도 하고 있어요.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아요. 액션 연기를 하기 힘든 나이가 되어도 '액션 영화'에서 활약하는 게 제 목표예요. 젊은 배우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열심히 운동 중이에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