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공권력인 경찰도 대비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안전에 초점을 맞춘 만큼 이에 대한 경찰의 전문성 향상도 함께 필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중대산업재해는 노동부, 중대시민재해는 경찰이 수사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인한 재해 중 사망 1명 이상,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감염자 10명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특히 현장에서 일차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법률적 검토하는 경찰로서는 법 조항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필수라는 분위기다.
서울에 근무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소방당국과 함께 인명을 구조하고 안전조치를 하는 등의 과정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법률적으로 검토, 적용하는 단계부터는 고민이 커질 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대시민재해의 정의를 보면 ‘원료·제조물’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등의 요소가 등장한다. 이런 항목들에 경찰이 구체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며 “국가수사본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해설서가 내려왔지만, 한두 번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실전에서 활용을 해봐야 한다”고 전했다.
한 경찰 출신 변호사는 “중대산업재해가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면, 중대시민재해는 이용자를 보호하는 법”이라며 “기존에 경찰이 안전사고에 적용하던 혐의인 업무상과실치상 또는 업무상과실치사의 수사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또 “이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더라도, 관련 사고에 대한 수사를 경찰이 크게 어려워하거나 못할 수준은 아닐 것”이라면서도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하는 안전조치가 상당히 많다는 대목은 매우 전문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포괄하는 사고의 정의나 경영책임자 책임 범위를 따져보는 과정이 까다로울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경찰이 이를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문제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기업 대표에 대한 형사 책임 부과와 관련해 수사로 입증할 역량이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산업 전문성, 압수수색 전략, 지역 사회 첩보 등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과학 수사와 같은 분야는 경찰이 이미 전문성을 쌓아둔 상태여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경찰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재해 예방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경찰력 편성과 집중에 대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경찰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조직 정비에 나서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안전사고에 대한 집중·전문 수사를 위해 시도경찰청 전문수사팀을 확대 편성했다. 전문수사팀은 중대재해 등 안전사고 수사에 집중하도록 다른 사건 업무에서는 제외하는 등 사무분장을 조정하고 표준 운영안을 마련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