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닻을 올려야 할 때인가?

2022-01-20 19:00
  • 글자크기 설정

[이진우 GFM투자연구소장]

목적지가 분명하고 순풍도 불기 시작할 때 들려오는 “닻을 올려라!”는 외침은 가슴을 뛰게 한다. 꿈을 향해, 아니 뭐 그리 대단한 것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이제 배가 힘차게 출발하는 상황만 상상해 보더라도 기분 좋은 그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오늘 필자가 제목으로 삼은 닻(anchor)은 쓰나미 경보가 내려진 해변에 정박해 있는 배의 닻을 말한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온 바이지만 2020년 3월 이후 1년 반 이상 펼쳐졌던 전 세계 자산시장의 랠리는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코로나19 시국에 펼쳐진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팬데믹으로 세상이 멈춰 서다시피 하자 미국 연준은 기준금리를 2020년 3월 3일 50bp(0.5%포인트), 3월 15일 100bp(1.0%포인트) 인하했다.

그달 17~18일로 예정되어 있던 FOMC를 기다리지 못하고 예정에도 없던 두 차례 회의를 통해 다시 미국 기준금리를 제로(0) 금리로 떨어뜨린 것이다. 거기에다 연준은 며칠 뒤(3월 23일) 국채와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추가로 매입하는 양적완화(QE) 정책에 더하여 ‘유통시장 기업신용 공급(Second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 프로그램을 통해 회사채와 회사채 ETF도 매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일본은행(BOJ)이 이미 회사채를 넘어 주식까지 매입하고 있었지만 천하의(!) 연준마저···.
 
이러한 초고도 부양 정책은 이후 기관투자자나 개인투자자들을 불문하고 시장 참여자들의 인식 체계에 묵직한 닻을 내렸다. 주가나 가상화폐 가격이 조금 밀린다 싶을 때 저가 매수(Buy the dip)에 나서면 어김없이 오래 기다리지 않아 수익을 낼 수 있었고, 어지간한 악재에도 전 고점을 금방 회복하는 장세가 반복되다 보니 나만 이 역사적 기회를 놓치는가 하는 두려움(FOMO·Fear Of Missing Out)에 빚을 내서라도 추격 매수에 나서고, 이러한 흐름이 2년 가까이 이어지다 보니 주식 외에는 대안이 없다(TINA·There Is No Alternative)는 확고한 인식···.
 
작년 8월 27일 연준은 ‘2% 평균 물가목표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연준의 목표치인) 2%를 밑돌았다면 인플레이션율이 한동안 2%를 웃돌더라도 평균 2%에 이를 때까지는 금리 인상 같은 액션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다. 선제적인 금리 정책이 신통치 않았음은 역사적으로 판명된 가운데 이젠 대놓고 뒷북이나 치겠다는 것이었는데, 거기에다 지표 발표 때마다 치솟고 있던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는 ‘일시적(transitory)’이라는 진단과 함께 딱히 당장 쓸 약(藥)도 없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그랬던 연준이 반년도 지나지 않아 당장 다가오는 3월 FOMC에서 금리 인상에 나설 태세인 데다 연내 어느 시점에서부터 만기 도래하는 국채나 모기지채권의 재투자를 중단하는 식으로 양적긴축(QT)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 '연준에 맞서지 말되 너무 믿지도 말라'는 시장의 오랜 격언이 그저 생긴 말이 아님을 또 확인하게 된다.  
 
학계에서도 시장에서도 그동안 연준을 비롯한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의 몰상식하고도 무분별한 유동성 확대에 우려를 표해 왔지만 "코로나, 코로나~~”를 외치며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한데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며 둘러대고 넘어왔던 지난 2년이다. 그리고 또다시 직면하게 된 연준의 말 바꾸기와 뜬금없는 정색(正色)···. 혹자들은 어느 정도의 경기 침체라는 오랑캐로 인플레이션이라는 더 무서운 오랑캐를 제압하려는 연준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정책을 이해해주자고 하지만, 필자는 연준의 그간 성적표를 감안할 때 이번에도 소뿔을 바로 잡으려다 소를 죽이는(矯角殺牛) 우를 범하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된다.
 
어쨌든 지금은 워런 버핏 옹(翁)의 표현을 빌리자면 수영장의 물이 빠지면서 누가 수영복을 입었는지 혹은 안 입었는지가 드러나는 때를 맞고 있다. 운용하는 7개의 ETF 2020년 평균 수익률이 141%에 달해 월가의 스타 펀드 매니저로 떠오르고 국내에서도 ‘돈 나무 누나’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캐시 우드(Cathie Wood)가 작년 하반기 이후 고전을 겪고 있다. 수익성 없는 혁신(?) 기업들의 주식으로만 채워진 그녀의 주력 상품 아크 이노베이션 ETF(ARKK) 주가는 작년 2월 고점 대비 거의 반 토막을 향해 추락 중이다. ‘강세장의 여왕’으로 불리던 그녀로서는 이번 하락장에서도 진정한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부담은 지금 시장에 몸담고 있는 모든 참여자들에게도 이미 묵직하게 다가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