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미래의 먹거리 대나무 산업

2022-01-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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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154종 보유한 자원연구소

담양 사람들은 어린 시절 콩을 볶아 먹을 때 어른들로부터 대밭에 한 주먹 뿌리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사람 먹기도 귀한 콩을 왜 대밭에 뿌리라고 했을까. 어린이들에게 대밭의 소중함을 깨우치고 애정을 갖게 하려는 교육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대나무는 담양의 소중한 자원이었다.
담양군의 대나무 자원연구소 산하 품종원에서는 자생종 10종을 포함해 세계 각국 대나무 154종을 재배한다. 세계적으로는 1400여 종 대나무가 있다. 문익점이 중국에서 목화씨를 붓두껍에 숨겨오듯 몰래 가져온 대나무도 있다. 공식 비공식으로 200여 종을 수집했지만 50여 종은 한국 땅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 각국 대나무 154종을 수집해 재배하는 대나무 품종원. [사진=황호택]

품종원을 둘러보던 관람객들이 “이것도 대나무냐”고 묻는 진기한 대나무도 있다. 중국 원산의 ‘어려도죽’은 담양에서 일상 만나는 왕대 분죽 맹종죽과는 전혀 딴판인 잡초 같은 대나무다. 키가 5㎝도 채 안 된다. 대나무도 외형만 갖고 판단할 일이 아니다. 이러한 대가 어떤 잠재적 자원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연구를 더 해봐야 알 수 있다. 유용한 자원을 찾아내서 필요하다면 한국에서 대량으로 증식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대나무 자원연구소의 과제.
대나무 신품종을 들여올 때 꼭 근경(根莖)을 캐거나 나무 째 파내 올 필요는 없다. 대나무 자원연구소의 기술로 뿌리나 줄기에서 채취한 조직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성체 대나무를 만들어낼 수 있다.
대나무 자원연구소는 대나무 연구개발을 활성화해 대나무와 관련한 신산업을 육성할 목적에서 2007년 설립됐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송진 농업연구사는 대나무 박사다.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대나무의 종 다양성 연구’.

담양군 대나무 자원연구소의 대나무 박사 이송진씨. [사진=황호택]

대나무는 2010년 12월 UN 기후변화회의에서 지구온난화의 대응 식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 시대를 맞아 대나무 자원연구를 통해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대나무 뉴딜을 하자는 것이 담양군의 목표.
대나무는 뿌리에서 잎까지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바이오매스(에너지화할 수 있는 생물유기체)다. 대나무 자원연구소는 대나무 성분분석 및 유전자 분석 기자재 등을 활용해 기능성 소재를 개발해 상품화를 하고 있다. 대나무의 미네랄 성분을 강화하고 유해물질을 없앤 죽염도 개발해 특허를 냈다.
대나무는 아토피를 유발하지 않는 고급 건축자재다. 열전도성이 빨라서 겨울에는 적은 에너지를 쓰고 따듯하게 지낼 수 있다. 대나무 돗자리는 겨울에는 온기를 보전하고, 여름에는 냉기를 품어준다.

담양에서 죽물시장은 사라졌지만 대나무 생활용기를 파는 죽물도매상이 여러 곳 있다. [사진=황호택]

일반적인 나무들은 성장하는 데 10년이 걸리지만 대나무는 3년이면 건축자재로 활용 가능하다. 척박한 땅에서도 빠르게 성장한다. 대나무의 쓰임새도 건축과 인테리어 조경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휘어짐에  내구성이 높아 곡선형 건축 구조에 유용하다. 대나무로 만든 섬유는 의류 전자기기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된다. 대나무 합판은 자연친화적인 제품. 대나무는 도시의 건축이나 쌈지공원 조경수로도 인기다.
 
세계 최로로 제작한 대나무 자전거
 
대나무 자원연구소는 2012년 튜브와 체인만 빼고 모두 대나무로 만든 친환경 자전거를 제작했다. 대나무로 산악용 자전거와 어린이 자전거도 만들었다. 열처리를 통해 대나무의 강도를 높여 가벼운 저탄소 제품을 만들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상징성이 큰 제품이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아프리카 가나에서 만든 대나무 자전거를 들고 나와 홍보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가나보다 먼저 대나무 자전거를 만든 담양으로서는 다소 억울한 노릇이다.

담양에서 세계 최초로 제작한 대나무 자전거. [사진=황호택]

죽염 제작과정은 복잡하다. 황톳물을 섞은 서해 천일염을 대나무 통에 다져 넣고 이를 가마에 넣어 소나무 장작불로 구워 낸다. 이렇게 만든 초벌 죽염 원석을 분쇄한 후 다시 대나무통에 다져 넣고 고열로 굽기를 3번 반복해 죽염을 만들어낸다. 약재로 쓰일 죽염은 굽는 과정을 9번 반복한다. 죽염은 단백질 합성을 도와주고 증금속 독성에 중화력이 있다.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장류에도 기존 소금을 넣지 않고 죽염을 사용한다.
문제는 대나무통을 바꾸며 700~900℃의 고열로 3번 반복해 굽는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나무 자원연구소는 대나무향과 미네랄을 추가하고 고열로 제조하지 않는 죽염을 개발해 특허등록을 했다. 연녹색의 이 소금은 창평 슬로시티에서 판매한다.
폐식용유에 대나무 추출물을 넣어 분해해 만든 주방용 물비누의 특허를 내고 상품화 했다. 광주 담양 등지에서 파는 ‘강청 비누’다.
화장실 거실에 대나무 향기를 퍼뜨리는 디퓨저도 히트상품이다. 모든 신상품은 제조에 성공하면 특허를 낸다.
대나무는 연구하고 개척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담양 주민들은 대나무 외에도 대숲에서 부산물을 생산해 고수익을 올린다. 임업통계연보를 보면 담양에서 전국 죽순의 절반 이상이 생산된다. 담양군의 연간 죽순 생산량은 30만kg 이상. 죽순은 아주 빠르게 성장한다. 대밭에 비가 오면 죽순 천지가 돼 우후죽순(雨後竹筍)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겼다. 죽순은 영양 성분이 다양하고 섬유질이 독특한 무농약 웰빙식품. 4~6월에 채취하는 죽순은 냉채 회 구이 나물 장아찌 술 등 요리가 100여 가지 개발돼 있다.

대나무 밭에서 자라는 흰망태버섯은 비싼 값에 팔린다. [사진=담양군 제공]

주민들은 그늘이 지고 습기가 풍부한 대나무 밭에 죽로차와 버섯, 구기자 등 약초식물을 재배한다. 대나무 밭에서는 모두 108종의 버섯이 자라는데 자생 흰망태버섯은 재배가 힘들어 1kg에 20만원 정도.
대나무 수액은 대나무의 체내에 존재하는 액체로 생장에 필요한 영양분이다. 채취 시기는 5~6월. 대나무 수액은 칼슘이 풍부하고 아미노산이 함유돼 있어 건강에 좋다.
대나무 숯은 왕대 솜대 죽순대를 잘라서 건조한 후 굽는다. 대나무 숯은 공기 정화용품, 벽지, 페인트, 전자기기 케이스 등 실생활과 관련한 산업용으로 쓰인다. 대나무 숯을 이용해 숯부작을 만들어 각종 난이나 분재, 야생화를 심는다. 겨울철처럼 환기를 자주 못할 때는 공기 정화에 도움이 된다.
죽초액은 대나무 숯을 구울 때 나오는 연기를 정제해 추출한 액체를 말한다. 초산을 주성분으로 200종의 천연 유기성분이 함유돼 있다. 친환경 농업용재, 환경정화, 수질정화, 악취 탈취제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죽초액 비누도 나왔다.

영화 또는 CF 촬영장소로 인기 있는 최희창씨의 '담양 대나무숲'(대전면). [사진=황호택]

일본에서는 대숯을 첨가한 커피 카스테라 같은 식품을 판매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 제품으로 개발되고 있지만 식품 첨가물로는 정식 허가를 받지 못했다.
댓잎의 활용 분야도 늘어나고 있다. 대나무 잎 분말은 국수와 냉면, 빵 한과 아이스크림 술 음료 김치 육가공식품 등에 다양하게 쓰인다. 죽초액 죽력 죽로차도 환경 및 식품, 신약 분야에서 쓰임새가 다양해지고 있다.
죽여는 대나무의 신선한 줄기에서 외피를 제거하고 녹색을 띤 중간층을 실 또는 얇은 선 모양으로 긁어내 음지에서 건조해서 만든다. 죽여를 딸기 멜론 등 농작물 재배에 활용하면 싱싱하고 탄력 있는 과실을 얻을 수 있다.
 
대나무 공예로 만든 현대 생활용품 인기
 

대나무 공예도 대나무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개성을 살려 미래지향으로 가야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다. 2020년 제39회 전국대나무디자인공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황미경씨의 사례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황씨는 아버지가 대바구니를 만들던 집안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부터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빼고는 아버지 곁에서 일을 도왔다. 광주여상으로 통학을 하면서도 대나무를 놓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도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대나무에서 벗어났다.
자녀들이 사춘기를 벗어났을 무렵 황씨에게 가벼운 우울증과 빈 둥지 증후군이 찾아왔다. 그녀는 담양 친정에 휴식을 취하러 왔다가 죽녹원을 찾았다. 대나무 박물관을 구경하고 대통밥을 먹었다. 대나무 박물관에서 공예품을 감상하며 대공예를 다시 붙잡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광주의 직장에 다니던 남편을 설득해 담양으로 집을 옮겼다.

황미경씨가 제작한 현대공예 작품 등갓. [사진=황호택]

대나무 계승자로 등록하고 죽제기(竹祭器)와 브로치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대공예에 몰입하니 잡념도 사라졌다. 황씨에게 브로치를 가르치던 김연수 명인은 “당신의 아버지로부터 공예를 배워 평생을 먹고 살았다”며 열심히 가르쳐줬다. 아버지의 제자가 스승이 된 것이다. 황씨의 아들도 김씨한테서 브로치를 배우고 있다. 3대에 걸친 인연이다.
황씨는 전남도립대 산업디자인학과를 1년 다니고 가정 일로 그만뒀는데 그때 배운 디자인의 실기와 이론이 도움이 됐다. 아버지는 평생 대바구니를 만들었지만 지금 사람들은 그런 바구니를 쓰지 않는다. 그녀는 대바구니 대신에 대나무 등갓을 만들기 시작했다. 황씨는 “손기술이 좋고 디자인이 예쁘다”는 평을 듣는다. 대나무박물관 관계자는 “황씨는 여러 분야를 잘 한다. 아주 높은 장인의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황씨가 제작한 등갓은 현대적 감각의 디자인이 돋보인다. 2018년 코엑스에서 열린 공예 트렌드 페어에 전시한 청사초롱등은 인테리어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황씨에게 등갓 주문이 많이 들어온다. 그녀가 만드는 등갓은 무늬의 패턴이 다양하다. 대나무 공예의 전통패턴을 8개나 재현했다. 그녀는 자료를 수집해 《죽세공예입문》 대뜨기편을 출간했다. 이제는 죽세공예입문 대바구니편을 쓰려고 발품을 팔고 있다. 아버지 시대에는 대공예가 구전으로 배우는 도제 제도였지만 새로운 세대의 교육을 위해서는 이론화와 텍스트가 필요하다. 대학에서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큰아들 임어진(32)씨는 대나무를 활용한 현대 생활용품과 인테리어 용품를 제작하고 있다. 

대나무 가공품 산업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삼다리 청죽시장. [사진=황호택]

 대나무 산업의 허브를 지향하는 담양군 대나무 자원연구소는 내년부터 농업진흥청 산림청과 공동연구를 진행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신소재 산업이 대나무의 미래 비전이다. 담양군의 대나무 뉴딜이 성공하면 세계 어느 나라든 대나무 관련 신소재 신기술을 공부하기 위해 담양으로 와야 할 판이다.
<황호택 논설고문·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
후원=담양군(군수 최형식) 뉴파워프리즈마(회장 최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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