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각살우 된 플랫폼 규제... 역차별에 국내 IT업체 등골만 휜다

2021-12-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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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앱결제 금지법 이후 구글 인앱결제 더 강화

n번방 방지법, '텔레그램' '디스코드' 규제 못해

부처별 플랫폼 규제권 다툼에 졸속 입법 우려

올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 빅테크 기업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된 가운데, 국내 IT업계에도 플랫폼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 칼바람이 불어닥쳤다. 그러나 정작 규제 도입의 빌미를 제공한 해외 기업들은 사각지대를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 국내 기업들만 규제 부담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는 플랫폼 규제 주도권을 두고 샅바싸움을 벌이면서 졸속 입법, 중복 규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국내 IT 생태계에 대한 조사 없이 무리하게 입법을 추진한 게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100일 만에 무력해진 인앱결제 금지법, 규제 대상인 해외 사업자 미동 없어
지난 9월 14일, 구글·애플 같은 앱마켓 기업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됐다. 세계 최초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법안이 통과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실제 시행 여부를 보면 ‘속 빈 강정’이었다.
 
구글은 예정대로 인앱결제 정책을 강행하는 새 정책을 지난 18일부터 적용하면서 ‘외부결제 허용’이 가능하다고 알렸다. 그러나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인앱결제 강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글의 새 정책을 위해 앱 개발사는 구글플레이 결제를 강제로 탑재해야 하고, 제3자 결제 이용 시에도 구글이 정하는 스펙에 맞춰 구글에 의무적으로 매출 일부와 결제 데이터를 제공해야 한다. 애플의 태도 또한 구글과 다르지 않다. 애플은 방통위의 자료 요청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한국의 법 질서를 기망하고 있다고 지적받는다.
 
학계와 업계, 법조계는 거대 앱마켓 사업자를 대상으로 실효성 있는 규제를 집행하기 위해선 시행령·고시 입법예고 과정에서 앱 개발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실질적으로 인앱결제 강제를 막을 수 있는 조항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앱마켓 사업자의 결제방식과 다른 결제방식을 병행 사용하도록 강제해 실질적으로 인앱결제 효과를 거두려는 시도를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앱마켓이 자의적으로 결제방식을 정의해 새로운 우회책을 만들 수 없도록 해당 용어 정의가 수반돼야 하고, 방통위가 앱마켓의 독과점 지위를 이용한 인앱결제 강제정책을 제지할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구글 사옥[사진=연합뉴스·AP]


◆ n번방 방지법, 해외 사업자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
 
지난해 해외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불법 촬영물이 공유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n번방’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국회가 통과시킨 ‘n번방 방지법’.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0일부터 시행됐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네이버, 카카오 등 국내외 플랫폼 사업자와 디시인사이드나 뽐뿌, 보배드림과 같은 커뮤니티 등이 불법 촬영물에 대한 유통 방지 의무가 부과됐다. 이들은 불법 촬영물을 걸러낼 수 있는 기술적, 관리적 조치의 대상이 됐다.
 
업계는 종전부터 이 법의 실효성과 형평성에 대해 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왔다. 우려대로 n번방, 박사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터진 텔레그램, 디스코드 등 해외 플랫폼은 적용이 제외됐다.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방통위가 충분한 준비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점도 사업자들의 부담과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법 시행 3개월 전 개발된 영상물 제한 조치 관련 기술이 실제 서비스 환경에서 충분한 사전 테스트 과정을 거치지 않아, 불법 촬영물 필터링 시간 지연이나 오작동 등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트래픽의 과도한 증가에 따른 오류, 장애로 이어질 가능성도 존재한다. 방통위는 시행 1주일 전 뒤늦게 6개월의 계도기간을 부여한다고 발표했으나, 이를 통해 문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조치 적용 이후에도 플랫폼, 서비스 사업자들의 측면에서 예측이 어려운 장애 발생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계속되는 분위기”라며 “실질적인 목적에 부합된 내용으로 관련법이 제 기능을 다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점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해외 익명 메신저 '텔레그램'[사진=연합뉴스]

◆ 온플법, 부처 간 다툼 속 졸속 입법 추진 우려... '토종 기업 족쇄법'으로 전락할 판
 
공정위와 방통위, 국회는 플랫폼의 불공정 거래 행위를 잡겠다며 각각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보호법(온플법)’ 등 관련 법안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활발해지고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플랫폼 입점 사업자와 플랫폼 기업 간의 힘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의도였지만 부처 간 주도권 싸움과, 허술한 실태조사, 무리한 법안 추진으로 업계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플랫폼을 규제하는 데 있어 대규모유통업법, 공정거래법, 전기통신사업법 등 수천개의 법률이 작동하고 있는데 새로운 규제 법안으로 국내 IT기업들의 성장을 막고, 결과적으로는 자국 내 디지털 주권을 해외 기업으로 내줄지도 모른다고 업계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인앱결제 방지법과 n번방 방지법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외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실효성이 확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법안을 추진할 경우, 정부 기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내 IT기업들의 경쟁력이 더욱 뒤떨어지게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 전문가들도 입법 추진 근거가 부족하다며 온플법 추진의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은 토종 플랫폼이 있는 유일한 국가이지만, 토종 플랫폼에 대한 시장 파급력과 소비자 후생 감소 등 우려하는 부작용들에 대한 실질적 연구와 규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채 졸속으로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11월 학계 전문가가 모인 ‘도대체 이 시점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는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중요한 이슈이며 문제들도 많지만, 급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현재 기준으로는 너무 빠르게 진행된 과도한 규제"라며 "교각살우라는 말이 있듯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 될 수 있다. 현재 법안은 많은 젊은 기업이 성장하고 미래의 부가가치를 더 창출할 기회를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올해 새로 도입된 IT 산업 주요 법안과 논란[그래픽=임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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