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품 농기구 호미는 김을 매거나(잡초를 골라 뽑는 일) 땅 속 감자, 고구마 등을 캘 때 쓴다. 뾰족한 작은 삼각형이 목으로 이어져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다. 가래는 줄을 매달아 쓰는 큰 삽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지금 하면 적은 힘으로도 할 수 있는데 나중에 많은, 큰 힘을 들인다는 말이다. 때 맞춰 미리미리 문제를 처리하지 않다가 나중에 큰 화(禍)를 당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 방침에 따라 한국전력은 이날 오전 내년 1∼3월분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올해 4분기와 동일한 kWH당 0원으로 확정해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내년 3월까지 일반 가정용 요금은 현재의 kWh당 88.3원(하계 300kWh 이하·기타계절 200kWh 이하 사용 조건 기준) 그대로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 말 전기요금 체계를 개편하면서 전기료에 생산 원가의 오르내림을 반영하는 연동제를 도입했다. 때문에 올 1분기에 kWh당 3원을 인하했고, 4분기(10~12월)에 다시 3원을 인상했다.
최근 유연탄, LNG, BC유 등 연료비 급등으로 한전은 내년 1분기 kWh당 3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동결을 결정했다. 연동제를 잠시 유보한 거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전기요금 문제는 복잡다단한 국제경제적 변수가 얽히고설켜 있다. 갖가지 변수가 한꺼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한전에 따르면 우리 전기료는 2013년 11월 이후 실질적으로 인상되지 못했다. 한전 적자는 결국 국민 세금에서 보전해야 하는 사실상 채무다. 한전은 142조원의 부채, 매년 2조원(하루 55억원)) 가량의 이자를 내고 있다. 현재 저렴한 전기료는 언젠가 오를 수 밖에 없다. 미래 세대가 짊어질 비싼 요금을 앞당겨 쓰는 셈이다. 조삼모사(朝三暮四) 중 지금이 3, 미래가 4다.
그러지 않아도 다른 선진국보다 전기료가 싸고, 국제원유가 급등 등 인상 요인이 있음에도 계속 올리지 않으면 문제가 될 소지가 적지 않다. 실제로 미국은 태국의 전기요금을 부당지원으로 판단, 상계관세를 부과했다고 한다.
▶지금 전기료는 상식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비용이 높아지면 가격이 올라야 한다. 탈원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 감소, 탄소중립 2050으로 대표되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재래식 발전 감축 등으로 전기요금은 점진적으로 오르는 게 당연하다. 친환경재생에너지 생산에 드는 고비용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다.
건강보험과 비슷하다. 어떤 특정 질병 치료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고가의 신약이 건강보험에 편입되면 우리 각자가 내는 건강보험료가 소폭 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나라 전기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무척 낮은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반값 전기, 마냥 좋을 수는 없다. ‘코드 꽂으면 안 되는 게 없는’ 우리나라의 전기 공급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외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똑같은 '전기 국뽕' 경험을 한다. 한국에서 몇 만원 내던 전기요금을 갑자기 서너 배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귀국하면 달라진다. 물 쓰듯 전기를 쓰는 한국 생활로 돌아온다. 전기 고마운 줄 알고 아껴 써야 한다. 비싼 전기료 때문에 창업을 못하거나 가게 문을 닫는 비극이 닥칠 지도 모른다. 가래를 쓰기 전에 호미로 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