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리언(zillion)이라는 영어단어가 있다. ‘엄청나게 많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큰 수’를 뜻하는 이 단어는 세상의 수많은 데이터에 연결고리를 만들고, 연결의 힘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스타트업 ‘질링스’의 어원이 됐다. 질링스는 2018년 12월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만 3년 차, 직원은 대표 포함 4명뿐이지만, 어느덧 공공기관 21곳이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처리해야 하는 단순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그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를 활용해 실패 확률을 줄이는 것이 그들의 미션이다. ‘스타트업을 위한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질링스의 양홍석 대표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 회사명이 독특하다.
- 어떤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건가.
“대표적으로 공공기관 지원사업에 대한 성과 보고 업무다. 기관마다 보고서 양식은 다른데, 요구하는 데이터는 비슷하다. 크리티컬한 일은 아닌데, 이런 업무가 쌓이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요구하는 데이터는 월별 매출, 수출액, 고용자 수 등 다양하다. 보통은 이런 데이터를 엑셀에 일일이 작성하고, 증빙서류를 첨부해 전달한다. 시간상으로는 30분~1시간이 걸리고, 시스템의 엑티브엑스가 충돌하는 문제가 생기면 더 오래 작업해야 한다. 평균적으로 100개 업체 중 15개사는 수치를 잘못 입력해 오류가 발생한다. 질링스는 이 지루한 과정을 1분 안에 해결한다. 분기마다 보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짧게는 매월 보고해야 할 때도 있다. 서비스 최초 이용시 정보 제공에 동의만 하면 매월, 매 분기 자동으로 정보가 입력돼 보고서를 쉽게 만들 수 있다.”
- 어떻게 데이터를 공유하고, 자동으로 입력하는 건가.
“연동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예를 들어, 은행에 돈을 입금하면 데이터베이스(DB)에 정보가 저장되고, 바뀐 잔고를 이용자가 볼 수 있는 방식과 비슷하다. 홈텍스 아이디를 공인인증서로 연동하면 질링스 DB에 월별 매출과 수출액 등 데이터가 기록된다. 이렇게 저장된 데이터를 스타트업 지원 공공기관에서 요구하면 기업 동의하에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이런 작업은 회사 대표 대신 직원들이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자.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기계발 욕구가 강하다. 단순 행정 업무를 시키면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금방 나간다. 기관 입장에서도 지원하는 스타트업들이 잘못된 수치의 보고서를 보내면 다시 연락해서 수정을 요청해야 한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재요청하는데 시간을 사용해야 하는데, 질링스 서비스를 이용하면 효율적으로 포트폴리오사를 관리할 수 있다. 이제 반복 작업의 자동화는 시대적 흐름이다.”
- 기관에서 실무를 보는 직원들의 호응이 높을 것 같다.
“실무자들 입장에서 업무 정확성이 크게 높아지고, 업무시간도 크게 줄어든다. 그분들은 스타트업의 데이터를 모아서 상사에게 보고할 보고서를 또 작성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도움도 필요 하고, 엑셀로 하나씩 확인하면서 취합해야 한다. 반면, 질링스 서비스를 사용하면 알아서 데이터가 전달되고, 자동으로 그래프까지 그려준다. 월말·연말에 보고서 작성 업무가 몰리는데, 업무량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일부 기관에서는 자체 보고 시스템을 만들기도 하는데, 적게는 8000만원에서 많게는 5억원까지 들어간다. 제작 비용도 비싸지만 계속 업데이트하고, 오류를 수정하다 보면 개발비만큼 유지관리비가 든다. 우리는 매월 이용료를 받는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를 공급하면서 실시간 업데이트까지 제공하고 있다.”
- 질링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기관은 몇 곳이나 되나.
“지금은 21개 정도다. 한국무역협회, 코트라, 창업진흥원,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이다. 서울의 스타트업 지원 기관은 대부분 이용 중이다. 기관이 사용하게 되면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은 자연스럽게 질링스 서비스를 통해 보고서를 제작한다. 국내에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기관은 약 1000개가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도 유의미하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데이터의 자동 수집, 융합과 분석..."새로운 가치 활용"
-수집된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도 있겠다.
“사실 정부 지원사업 관련 데이터는 좀처럼 활용되지 못한다. 창업기업 중 상당수가 망하는데, 이들에 대한 데이터도 함께 휘발되고 있다. 시험 볼 때 오답 노트 정리가 중요하지 않나. 성공의 법칙은 제각각이어도 실패의 법칙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데, 이 중요한 실패의 데이터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데이터를 직접 입력하는 형태로는 한계가 있다. 자동으로 공유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분석한 뒤 새롭게 창업하는 회사들에 제공하면 폐업률도 낮출 수 있다.
다른 측면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한 컨설팅도 가능하다. 경험이 많은 회계사는 재무제표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하는 보고서를 만들 수 있다. 초기 스타트업이 자신들의 데이터를 자동으로 정리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한다면 어떨까. 사람이 해야 한다면 오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질링스는 프로그램으로 해결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느 시기에 어떤 투자를 받아야 하고, 어떤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지 의사결정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물론 서비스는 아직 초기 단계다. 장기적으로 데이터가 쌓이면 컨설팅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의미다.”
- 데이터 자동처리 서비스를 보고서 작성 이외에 다른 곳에도 활용할 수 있는 건가.
“내부적으로 논의된 아이디어가 정말 많다. 예를 들어, 회사 소개 페이지 자동화다. 팀원이나 회사 관련 뉴스 소개 페이지 등은 아주 중요하진 않지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역이다. 질링스 서비스를 이용하면 회사 관련 뉴스가 올라올 때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해준다. 우리는 도장 깨기 하는 것처럼 아주 작은 업무 하나하나를 자동화해나가고 있다.
우리는 스타트업 창업 초기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기 때문에 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 엔젤투자자가 투자할 초기기업을 찾는 과정에서 비정형 데이터를 제공할 수도 있다. 비상장 주식거래 시장 확대에 대응해 의사결정을 돕는 데이터 제공 서비스 또한 가능하다.”
- 실제로 사업화를 위한 서울창업허브 PoC 사업도 참여했다.
“서울창업허브는 B2B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객사로 영입해야겠다고 생각한 곳 중 하나였다. 우연히 주변 투자자의 소개로 허브에 입주하게 됐고, PoC 사업까지 진행했다. 서울창업허브 로비에 설치된 기업 정보 디스플레이를 자동화하는 작업이었다. 이전에는 기업 데이터를 관리자가 매번 요청받아 수정하는 방식이었다. 스타트업은 자신들의 정보가 변하면 연락을 따로 해서 변경해달라고 말하고, 관리자가 수기로 바꿔야 했는데, 이 과정을 기업이 직접 처리할 수 있도록 단순·자동화했다. 핵심적인 업무라고 하긴 어렵지만, 살아있는 정보를 제공하면서 작업 시간은 평균 6분의 1로 줄였다.”
-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질링스의 목표는 간단하다. ‘스타트업들이 데이터 관리를 잘할 수 있게 돕자. 반복되는 업무는 자동화 하자. 그리고 잘 정리된 데이터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자.’ 단기적으로는 질링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공공기관의 점유율을 높이려고 한다. 우리 서비스는 전국의 창업 지원기관에서 많이 쓸수록 더 강력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스타트업이 해야 하는 반복 업무를 하나하나 자동화하는 플러그인을 만들어 테스트하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