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하다. 소통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는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당신은 우리말을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본지가 지난 4월부터 게재한 ‘우리말 쉽게 바르게’ 연속 기획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자신을 돌아봤을 때 일상에서 매일 사용하는 우리말을 생각보다 잘 모르고 있었다. 사회 전체로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일본식 한자어·차별어
우리가 평소에 무심코 사용하는 말에 대해 ‘정말 우리말이 맞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말을 지키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예컨대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십팔번’이 뭔가요?”나 “국기를 게양합시다”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져야 한다.
‘십팔번’이란 단어는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일본 대중 연극 가부키 배우인 이치가와 단주로는 자신의 가문에서 내려온 기예 중 크게 성공한 18가지 기예를 정리해 그것을 ‘가부키 십팔번’이라고 불렀다. 국립국어원은 이를 ‘단골 노래’ 또는 ‘단골 장기’로 다듬었다.
“국기를 게양한다”라고 할 때 쓰는 게양 역시 ‘높이 건다’는 뜻의 일본식 한자어이다. 국기를 ‘올린다’ 또는 ‘단다’로 바꿀 수 있다.
일본식 한자어는 한자의 음과 뜻을 이용하여 일본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한자 어휘를 말한다. ‘철학’이나 양복을 맞출 때 쓰는 ‘가봉’과 같은 단어들은 일본식 한자어가 그대로 우리말로 굳어진 것들이다.
행정용어나 법률용어, 일반 서식에 쓰이는 용어에도 일본식 한자가 많다. ‘공람’은 돌려봄, ‘감봉’은 봉급 깎기, ‘공시’는 알림으로 쓰는 것이 올바른 우리말 표현이다. ‘과세’는 세금 매김, ‘건폐율’은 대지 건물 비율, ‘하청’은 아래도급 또는 밑도급 등으로 풀어쓰는 것이 좋다.
더욱 정확한 사용을 위해서는 광범위한 한자어 중 일본식 한자어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들이 이를 변별해 사용하기는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향후 개선돼야 할 부분이다.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한자어의 경우 그동안 무엇이 일본식인지 아닌지 심도 있는 연구가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다”며 “이제라도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잘못된 언어의 사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차별어가 대표적인 경우다. 차별어란 사회적 약자 또는 특정 대상을 직·간접으로 부정하고 무시, 경멸하거나 공격하는 단어·구·문장 등의 언어 표현을 말한다. 편견과 고정관념 등도 해당한다.
흔히 우리는 ‘결정장애’라는 말을 많이 쓴다. 차별어다.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에 ‘장애’를 붙이는 건 ‘부족함’을 의미하고, 그런 관념 속에서 ‘장애인’은 늘 부족하고 열등한 존재로 여겨지게 된다.
차별어는 노골적 차별어, 비대칭 차별어, 관습적 차별어, 다의적 차별어로 분류할 수 있다.
‘노골적 차별어’는 차별 의도가 언어 형식이나 내용에 가시적으로 드러나 누구나 차별어로 인식하는 비속어나 혐오 표현을 말한다. 차별 의도가 명백하고 그것이 언어의 형식과 내용으로 분명하게 드러난 비어나 속어, 모욕어, 직접적 언어폭력에 해당하는 어휘들이 여기에 속한다. 욕설과 ‘~충‘ 같은 은어성 유행어들이 속한다.
‘비대칭 차별어’는 표현 자체는 차별을 담고 있지 않지만, 다른 어휘와의 관계에서 차별의 특성을 드러낸다. 여의사, 여류 작가, 여기자, 남간호사 등이 있다.
‘관습적 차별어’는 ‘미망인’, '집사람'처럼 역사적으로 또는 사회적 관습으로 자연스럽게 쓰이고 있는 차별어다.
‘다의적 차별어’는 비차별적 의미와 차별적 의미가 함께 있는 다의어로 특정 맥락에서 차별어로 규정되는 어휘들이다.
김미형 국어문화원연합회 회장은 “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평생 교육 등을 통해 차별어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라며 “국립국어원 등에서 차별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차별어 관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때가 있을 텐데, 언론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문체부·국어문화원연합회,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
이처럼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 등이 나섰다.
문체부는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의 하나로 국립국어원과 함께 외국어 새말 대체어 제공 체계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대체어를 발표한다.
어려운 외래 용어가 널리 퍼지기 전에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다듬은 말을 제공하기 위해 국어 유관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인 ‘새말모임’을 통해 제안된 의견을 바탕으로 의미의 적절성과 활용성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대체어를 선정한다. 또한 국민에게 ‘어려운 외국어에 대한 우리말 대체어 국민 수용도 조사’를 실시해 이를 반영하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용어는 생명과 연관돼 있다. 코로나19 감염자 또는 감염 의심자에게 증상 발현 후 나타나는 후유증을 이르는 말인 ‘롱 코비드’를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연속 감염’, ‘부스터 샷’은 ‘추가 접종’으로 다듬었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전국에 있는 거점 국어문화원 21곳을 묶는 중심 역할을 하는 단체다. 국어문화원은 국어기본법 제24조에 따라 ‘국민의 국어 능력을 높이고 국어와 관련된 상담’을 하는 기관으로 세워졌다. 각 국어문화원에서는 국어 관련 전문가들이 원장과 책임연구원을 맡아 국어문화원을 이끌어가고 있다.
국어문화원은 국민의 국어 능력 향상 교육, 국어 상담, 지역별 국어책임관 연수회, 한글과 한국어 관련 문화행사, 우리말 가꿈이 활동, 정부·광역자치단체·지방자치단체·언론사 등 공공기관의 공공언어 개선 지원, 학술용어 관련 사업(대학 논문·학술지 감수·용어 정비 등), 우리말(지역어·토박이말) 연구·조사, 지역어 진흥 사업 등 다양한 일을 한다.
국어문화원연합회는 이러한 국어문화원의 사업을 계획·관리·지원하는 한편 우리 사회의 국어 환경을 개선하고 국어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 부서와 언론사를 상대로 공공언어개선사업인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말은 우리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주위를 돌아보면 신조어, 줄임말 등으로 세대 간 의사 소통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어려운 말들은 국민이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성적 판단을 하기 힘들게 만든다.
사회 통합을 위해서 국어는 중요하다. 김미형 회장은 “국어는 사람의 마음을 나누게 하고 이성적 판단을 하게 하는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다. 어려운 말을 사용하면 그 맥락과 단락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필수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게 된다”라며 “정보화 시대에 오히려 정보 소외가 되고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게 안타깝다. ‘쉬운 우리말 쓰기 사업’을 꼭 해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