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 통과시킨 식품표시광고법 개정안을 두고 불만이 무성하다. 오는 2023년부터 식품을 일정 기간 '팔아도 된다'는 유통기한 대신 '먹어도 된다'는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것이 골자다.
식품 폐기물을 줄이자는 도입 취지는 좋았다. 소비자들이 그동안 유통기한을 폐기 시점으로 인색해 먹을 수 있는 식품 폐기물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이를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와 선진국들은 소비기한 표시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1985년 처음 도입 이후 37년 동안 사용된 유통기한 제도를 폐지하고, 소비기한으로 갑자기 교체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을 잡을 안전장치 마련이 아직 미흡하다는 점이다. 그나마 대형마트는 회전율이 높아 장기 재고 상품을 구입할 일이 거의 없겠지만 중·소형 점포에선 소비기한 임계 시점까지 상품을 판매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이런 유통업계를 단속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점 때문에 소비기한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자는 의견이 제기됐었다. 하지만 해당 의견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면 비용이 7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제품의 가격 상승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는 업계와 식약처의 주장에 묻혔다.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을 병기하면 비용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주장의 진위 여부는 제쳐놓더라도, 300조원에 이르는 식품 산업 규모에 먹거리 안전을 위해 7000억원을 투자한다는 게 과연 과잉 투자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작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폐기되는 식품인 ‘유제품’은 이번 소비기한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식약처와 국회는 우유에 소비기한이 적용돼 가정 내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우유 소비가 더 감소할 것이라는 낙농업계 의견을 반영해 유제품에 대해선 소비기한 도입을 8년 더 유예해 2031년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2031년까지는 유제품은 유통기한, 그 외 식품은 소비기한을 표시하는 식품 표기제 사이에서 소비자들의 혼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식품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제조·유통사·소비자까지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생산부터 소비자 섭취까지의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제품 변질에 개입하는 '변수'가 그만큼 더 많아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소비기한 표시제에 앞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