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후장대(重厚長大) 산업의 대명사이자 전통산업의 리더격인 철강산업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에서 엔진이 사라지고, 배터리가 자리잡는 1백년 만의 자동차 혁명이라고 불리듯, 철강산업에서도 가히 1백년 만이라 여길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제4차 산업혁명과 기후변화가 동시에 몰고온 세기적인 철강산업혁명의 분기점이라 할 수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에 철강산업은 전통적인 산업공학에 기초한 생산체제를 넘어서 금융공학과 본격적으로 마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이 많은 철강업을 보다 친환경적이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사업으로 전환해 21세기에 걸맞은 신산업으로 변신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서 올해 세계 철강업계에서 특히 주목될 만한 뉴스 가운데 하나는 포스코의 글로벌 이벤트가 아닐까 싶다.
6일부터 8일까지 포스코가 주최한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HyIS 포럼 2021)은 이러한 과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하나의 시도라 볼 수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04년 8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착공해 2007년 4월부터 가동해 오고 있는 파이넥스(FINEX) 공법을 기반으로 수소환원제철 공법인 하이렉스(HyREX)를 개발하고 있다. 이번 행사는 철강 공정의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 공조를 꾀한다는 명분이지만 신공법개발을 놓고 경쟁사들 간의 뜨거운 탐색전 성격도 내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철강산업은 연간 19억t의 철강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8%를 뿜어내고 있다.
이 분야에선 유럽세가 강한 편이다. 지난 6월 유럽 아르셀로미탈은 최대 15억 유로(약 2조원)를 들여 독일 제철소 2곳에 수소환원제철 설비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철강 대기업 SSAB는 수소환원제철 사업과 수소 저장시설 건설을 결정했다. 세계에서 지구 온난화 가스 배출 삭감 시한이 앞당겨지는 가운데 철강 분야에서 탈탄소를 서두르는 모습이다. 철강업체들이 수소제철 상용화를 서두르는 것은 자사의 CO₂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강재를 판매한 고객들의 요청에 따른 부분도 크다. 예컨대 대형 자동차 메이커들은 서플라이체인(공급망) 전체에서의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어 강재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SSAB는 지난 4월 트럭 메이커인 스웨덴의 볼보(스웨덴)와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 강재를 이용한 자동차 개발·생산에 협력하기로 했다. 아르셀로미탈은 이에 앞서 지난 2020년 12월에 고객의 공급망에서 이산화탄소 배출 삭감에 공헌하는 ‘그린 인증 강재’의 판매를 시작했다. 일본제철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실질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제철은 탈탄소의 비장의 카드가 되는 수소 제철을 실현하기 위해 연구개발로 5조원, 설비투자에 40조~50조원이 든다고 시산한다. 정부에도 지원을 요구할 방침이지만 장기적인 투자 부담이 무거운 게 사실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회복으로 강재 수요는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수급이 타이트해지는 가운데 강재 가격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범용품 열연코일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t당 2000달러를 넘어섰고, 동아시아 시장 가격도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철강 기업들은 이런 가격 상승세를 기회로 삼아 미래전략을 발빠르게 실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며칠 전 일본제철이 발표한 뉴스도 적지 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일본제철은 11월 1일 미국의 본사 기능을 뉴욕에서 텍사스주 휴스턴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뉴욕, 휴스턴, 시카고 3곳의 사업 거점을 휴스턴 한 곳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는 미국 남부를 겨냥한 조치다. 일본제철은 유럽 아르셀로미탈과 절반의 합작 사업으로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에 공장을 건설하고, 이곳에서 미국 중부와 남부의 자동차공장 전용 강판을 생산하고 있다. 미국 남부에 고객이 많아 휴스턴에 사업장을 일원화하면서 영업을 강화하고, 이 공장을 지원한다는 전략이다.
도요타자동차는 북미 사업 거점을 캘리포니아주에서 텍사스주 북부의 댈러스로 옮겼다. 미쓰비시중공업도 뉴욕에서 옮겨왔다. 텍사스주는 개인소득세와 법인소득세가 없어 다른 주에 비해 세금 부담이 적고, 임대료를 포함한 생활비도 서해안과 동해안의 대도시들보다 저렴해 미국 하이테크기업들도 이전처로서 주목하고 있는 곳이다. 휴스턴은 비행기로 4시간 이내에 동해안과 서해안, 멕시코의 주요 도시로 출장할 수 있다는 것도 강점으로 꼽힌다.
차량용 강판 사업은 철강산업 경영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일본 철강연맹에 따르면 2020년 현재 보통강이 자동차 전용으로 약 20%, 특수강이 약 40%를 차지한다. 그러나 미국 조사단체 CAR에 의하면 차체의 소재에 차지하는 철의 비율은 2020년 65%에서 2040년에는 46%로 떨어진다. 미국 테슬라가 알루미늄을 적극 채용하는 등 플라스틱이나 탄소섬유를 포함한 철 이외 소재의 존재감이 높아지고 있다. 무거운 전지를 쌓아 항속 거리를 늘릴 필요가 있는 전기자동차(EV)에서는 차체의 경량화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일본제철은 2000년부터 실행해 온 충돌 실험 데이터를 알루미늄에 대항할 수 있는 철의 개발에 활용한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고장력 강판(하이텐)이다. 데이터에 근거해 설계 개선을 제안함으로써 초하이텐 강재의 채용 확대를 노린다는 것이다. 일본제철은 지난 3월 약 30년 만에 처음으로 국내에 열연 라인을 신설하기로 했다. 2026년부터 최첨단 초하이텐을 생산한다. 일본제철은 국내 수요의 감소와 중국 철강업체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려 국내 14기의 고로를 10기로 줄이는 것을 포함한 대규모 합리화 대책을 진행하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도 디지털화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일본제철은 올해부터 5년간 1조원 이상, JFE 홀딩스는 4년간 1조2000억원을 디지털 전환(DX)에 투자한다. 이미 고로의 인공지능(AI) 조업 등 일정한 성과도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최대기업인 중국 바오우(宝武)철강집단은 작년 말 빅 데이터 센터의 시험운용을 개시했다. 3년에 걸쳐 정보 분석을 다루는 기반을 구축한다고 한다. 유럽 아르셀로미탈도 지난 7월 프랑스에 첫 디지털 연구소를 설립했다. 일찍이 세계 철강 시장을 석권한 일본 철강업체들은 과거에 축적한 조업 데이터가 많다는 우위성을 갖고 있지만 인프라 구축 면에서는 외국 철강업체들에 뒤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의 철강 대기업들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전기로의 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세계 2위 아르셀로미탈은 구미에서의 전로 신설 등에 2030년까지 약 10조원을 투자하고, 세계 3위 중국 하강도 이 비율을 끌어 올린다고 한다. 일본제철은 철 스크랩을 원료로 하는 세계 최대의 전기로 실용화에 나선다. 2030년까지 국내에 대형 전기로를 만들 계획이다. 주류의 고로법에 비해 전기로는 생산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분의 1로 적은 편이다. 2050년에 온난화 가스 배출 실질 제로를 내거는 일본제철에 있어서 대형 전기로는 탈탄소 전략의 비장의 카드가 된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에 도전하는 구상은 아직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우선 전기로 선진국인 미국에서 만드는 설비로 기술의 축적을 서두른다는 전략이다.
이러한 급속한 기술 전환은 원료가 되는 철 스크랩의 쟁탈전과 가격 상승, 용도 확대를 향한 기술개발이라고 하는 새로운 과제를 넘어서야 한다.
일본제철이 지난달 유로엔 표시 신주예약권부사채(전환사채·CB)를 발행해 3000억엔(약 3조원)을 조달한다고 밝힌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뉴스다. 전환사채 발행은 옛 신일본제철 시대인 2006년 이후 15년 만이다. 조달 자금은 고기능 강재의 생산체제 강화와 탈탄소 관련 기술개발에 충당된다. 금리 부담이 없는 제로 쿠폰채로 미국을 제외한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시장에서 투자가를 모집해 지난 10월 4일 발행했다. 일본제철은 2021~2025년도의 5년 동안 설비투자에 24조원, 사업 투자에 6조원을 투자할 방침이다. 초점은 성장전략 실행에 맞춰져 있다. 아울러 해외사업 확충도 추진한다. 일본제철은 향후 전 세계 조강 생산능력을 연 7000만t에서 1억t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 아래 인도 제철소를 확장한다.
지금 세계 철강업계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다. 크고 작은 생존·성장 전략들도 난무하고 있다. 큰 눈으로 봤을 때 올해 철강산업 톱뉴스는 다소 이른 감은 있지만 역시 중국 바오우철강집단이 2020년 세계 조강생산에서 중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1위로 올라선 것이다. 조강은 원료인 철광석을 녹여 성분을 조정한 뒤 압연 등의 가공으로 넘어가기 전의 철로서 철강회사의 생산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다. 세계철강협회(WSA)에 따르면 바오우철강집단의 생산량은 전년 대비 21% 늘었다. 중국 내 태강철강집단을 인수해 2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아르셀로미탈이 지배해온 19년의 아성을 깬 것이다. 중국기업 하강집단과 장쑤사강집단도 각각 전년의 4, 6위에서 한 계단씩 올라섰다. 중국 철강산업은 M&A(기업인수합병)으로 규모를 확대해 왔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부터 경제 회복도 순풍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르셀로미탈은 2001년 이후 처음으로 2위로 밀려났고, 일본제철은 3위에서 5위로 처졌다. 포스코는 1990년 3위에서 6위로 낮아졌다.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려온 일본 철강업체들이 쇠퇴하고, 유럽철강업체들이 등장했다가 후퇴하면서 중국 철강업체들이 도약했다. 지난 30년간 세계 철강기업의 이러한 부침의 역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포스코는 일본 철강기업과 대등한 수준으로 기술력이 높고 생산 효율도 높다. 그 강점을 살려 탈탄소의 흐름을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시킬지가 가장 큰 과제다. 철강업계는 경기에 좌우되기 쉬워 실적 변동이 크며, 주식시장에서는 ‘철강업계의 호황은 일과성’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탈탄소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서도 해외사업 확대와 구조개혁을 양립시켜 수익력을 장기적으로 끌어올리는 전략도 빠뜨릴 수 없다.
제2기에 들어간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큰 눈으로 글로벌 판세를 읽고 세밀하게 실행에 옮기는 공격적 전략경영을 펼쳐야 할 시점이다. ‘착안대국(着眼大局), 착수소국(着手小局)’의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포스코의 미래는 이제 최 회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