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때문에 최근 대한민국은 '고소·고발 공화국'이 됐다. 특히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고발은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마저 흔들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제3자의 고발, 그중에서도 명예훼손 고발의 문제점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 A시민단체는 서울 종로구 중고서점 외벽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아내 김건희씨로 추정되는 벽화가 그려지자 이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점 주인을 경찰에 고발했다.
특정 정파적 이념을 띠고 고위 공직자나 유명인이 자신이 지지하는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시민단체가 고발하는 '제3자 명예훼손 고발'에 대한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적인 고소를 통해 수사기관이 진실을 가릴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7일 '2021 법무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고소·고발 처리된 인원은 84만 3712명으로 5년 전인 2016년(74만4960명)보다 10만명가량 늘었다.
본인이 고발한 건수와 제3자인 시민단체가 고발한 건수가 명확하게 나눠져 집계되는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법조계에서는 시민단체의 고발이 늘어난 것을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한다.
이른바 '프로 고발러'라는 별칭을 얻은 시민단체들은 정치·사회적으로 이목을 끌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하면 고발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키워나가고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은 권력층이 저지른 불법적인 행태 등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 아래 소송을 남발한다는 비판이 적잖다.
특히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시민단체가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을 위해 고발을 하고 수사기관이 이에 대한 수사에 나서도 정작 본인이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건이 그대로 종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6월께 경찰은 윤 전 총장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SNS에 게시한 혐의(명예훼손)로 시민단체에게 고발당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 결정했다. 당시 윤 전 총장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불원서를 내면서 결국 사건이 종결된 것.
시민단체가 고발에 나선 이유는 조 전 장관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윤 총장이 자신의 인사청문회에서 이 방안(수사·기소 분리)이 '매우 바람직'하다고 답변했을 때 언론과 검찰 내부에서 아무런 비판도 나오지 않았다"는 글을 게재했다는 것이었다.
수사기관도 언론보도나 누군가의 발언만으로 고발에 나서는 시민단체에 대해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이 같은 고발이 남소될 경우 민생사건 처리에도 지장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 수사기관 관계자는 "막상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한다면 그간 수사했던 것들이 무용지물이 될 때가 있다"며 "관련 없는 사람이 고발에 나서 수사기관에서는 예산과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민생사건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제3자 명예훼손 고발에 대한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사실을 말해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어 사실상 정적이나 피해자들의 입막음을 하기 위한 수단 아니냐는 것. 사실을 적시해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질 경우 처벌을 전제로 '공익성'을 따진다는 것이다.
특히 공익성의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어 말 그대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지적이다.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정치적 이념·정권·여론에 따라 법원의 판단이 들쭉날쭉하다는 비판도 적잖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공인은 반론 창구가 있다. 자신의 발언을 정정할 플랫폼이 있는데 굳이 제3자가 고발해서 형사 처벌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제3자가 고발하고 수사에 착수한다는 게 수사력 낭비이고 표현의 자유 위축"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