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왜 중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가

2021-10-0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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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한국은 미중 갈등 속에서 어느 편에 서야할까. 인도‧태평양에서 미국과 중국 간 패권전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스탠스를 취하며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국 쪽으로 기운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과는 거리를 두는 한편 중국과 관계를 강화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최근에도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중국 편을 드는 발언으로 논란을 촉발했다. 그는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공세적 외교를 “당연한 일”이라고 두둔했다. 또 “중국은 경제적으로 강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하려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이 가파르게 대치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발언인지 의문이다. 당장 “중국 대변인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정의용은 발끈했지만 중국 외교가 공세적으로 변하던 2019년에 나온 중국 대변인 논리와 똑같다는 점에서 궁색했다. 당시 화춘잉 중국 대변인은 “중국이 세계무대에 진입했지만 마이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 주도적으로 발언권을 쟁취해 당당하게 중국 공산당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발언권의 핵심은 국가 이데올로기이고 국가 가치관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외교부 장관이 중국 대변이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배경은 이 때문이다.

결정적인 건 “여러 나라가 중국을 강압적이라고 우려하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는 발언이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우리를 상대로 취한 강압적 행태를 몰라서 하는 말인지, 알고도 저자세를 취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의도적 회피라는 점에서 굴욕적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중국 정부가 취한 몇 가지 사례만 떠올려 봐도 동의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사드를 이유로 한국 기업과 한류를 초토화 시켰다. 롯데는 사드 기지를 내주었다는 이유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와 위생검사 그리고 불매운동에 시달린 끝에 수조원대 손실을 입고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또 한한령(限韓令)을 앞세워 우리 연예인들의 중국 내 활동도 전면 금지했다. 한때 중국은 K팝 시장으로 주목받았지만 삭막한 땅으로 변한지 오래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게임 영상물까지 모든 동영상 플랫폼도 차단했다. 연예기획사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나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역사왜곡도 서슴지 않는다.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구려도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려 집안 유적지를 비롯해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유적지 방문을 못한다. 나아가 그들은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김치를 중국 음식이라며 우기고 있다. 역사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정의용은 “우리나라에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고 했으니 어떤 근거에서 비롯된 자신감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 편향 정책은 역사관마저 의심케 한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을 미화했다는 논란 끝에 국내 상영이 취소된 ‘1953 금성 대전투’가 그렇다. 이 영화는 1953년 7월 강원도 금성군에서 국군과 중공군이 충돌했던 금성전투를 다뤘다. 우리에게는 가슴 아픈 기억이다. 영화는 중공군 입장을 반영했다. 결국 수입사는 “‘1953 금성 대전투’로 인해 국민들께 크나큰 심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드린다. 수백만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특히 적군의 영웅담을 담은 내용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해당 영화를 수입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느끼며 깊이 반성한다”며 판권 계약 파기를 알렸다. 수입사 사과에도 불구하고 문체부 산하 영상물등급심의원회의 역사인식은 한심했다.

수출 다변화에 힘입어 다행히 K팝 시장은 낙관적이다. 2017~2020년 음반 수출 현황(국세청)에 따르면 중국 점유율은 36.1%(2017년)에서 12.6%(2020년)로 3분의 1가량 급감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조치 이후 기술 의존도를 낮추고 소재와 부품, 장비 수입을 줄였듯 한한령은 오히려 K팝 시장에 약이 됐다. 미국은 지난해 처음 중국을 제치고 한국 음반 수출국 2위로 올라섰다.

우리 정부 저자세는 호주정부 처신과 대비된다. 호주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무시하기 어려운 경제시장이지만 주권국가로서 당당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중국 신장위구르와 홍콩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지난해는 코로나19 발원지를 따져봐야 한다며 중국 정부를 겨냥했다. 중국은 즉각 무역보복에 나섰다. 철강석과 와인, 소고기, 보리, 랍스터에 고율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호주 산업에 타격을 입혔다. 중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호주 철강석은 67%, 와인은 40%로 자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런데도 호주는 미국, 영국과 함께하는 새로운 안보동맹 오커스(AUKUS), 또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하는 쿼드(QUAD), 그리고 미국, 영국, 캐나다와 정보동맹 ‘파이브아이즈’를 맺는 등 중국 위협에 공동대응하고 있다. 앞서 5G사업에서 중국 기업 화웨이 참여를 배제하기도 했다.

우리와 처지는 비슷해도 다르게 대응하는 건 어떤 가치를 우선하느냐에 달렸다. 우리 입장에서 전체주의 중국보다 개인과 언론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의 민주주의 가치가 바람직한 건 불문가지다. 10년 전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17가지 시나리오를 전망했다. 그는 국제관계에서 새로운 형태 조공제도, 권위주의적 통치, 발달한 IT기술을 활용한 사회적 통제, 그리고 역사왜곡을 거론했다. 지금 중국 정부가 자국민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벌이는 행태를 감안하면 예상은 모두 현실이 됐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향할 곳도 분명하지 않을까.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서울시립대학 초빙교수 ▷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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