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일제 강제노역 피해 배상을 외면해온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매각명령에 강력 반발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일본은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 정국에서 후보들이 강경론을 들고 나올 경우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한·일관계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28일 대전지법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 명령 신청을 받아들인 데 대해 "극히 유감"이라며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과 그에 따른 사법 절차들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고 밝혔다.
모테기 외무상은 "주일 한국대사관 차석 공사(정무공사)를 초치해 즉시 적절한 대응을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며 "한국 측에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일본 측이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겠다. 현금화는 일·한 양국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고 밝혔다. 모테기 외상은 지난 23일 뉴욕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만났을 때도 "현금화를 피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적절한 대응을 요청했다. 미쓰비시중공업 측도 항고를 통해 법원 판결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우리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열려 있는 입장"이라며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근원적 해법 모색을 위해 일본 측이 성실하게 대화에 응하고 성의 있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 대변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 범위에 관한 법적 해석에 다툼이 있다"며 "일본 측의 '국제법 위반' 주장에 대해 "전혀 사실과 맞지 않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1965년 한·일 협정으로 모두 완료됐으며, 2018년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한국 정부가 해결하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다만 한국은 식민지배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인정된다는 입장이다.
최 대변인은 "한국 측이 해결책을 제시하라고 일본이 언급한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부로서는 피해자의 권리 실현 및 한·일관계 등을 고려해서 모든 당사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해법 마련을 위해 조속히 한·일 양국 간에 협의를 진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로 인해 당초 지난해 한국이 개최할 예정이었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도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일본 기업의 자산 매각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하지 않으면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난해 말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게다가 양국은 도쿄올림픽 계기 한·일 정상회담을 타진했으나 무산 되면서 관계 개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한 양국이 대선을 앞두고 있어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정치 이슈에 휩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은 29일 총리직의 명운이 걸린 자민당 총재 선거, 오는 11월 일본 총선(중의원선거)을 앞두고 있고, 한국 역시 내년 3월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