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아방강역고-48] 대한영토 4천리에서만 피는 진달래(3)

2021-09-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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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가장 많이 그린 꽃

대한영토 4천리 반만년 한민족이 가장 즐겨 그린 꽃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유명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꽃 무궁화

한·일 미술전(戰) : 한국 진달래 vs 일본 무궁화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 신윤복이 가장 많이 그린 꽃

조선시대 천재화가 신윤복(申潤福, 1758년~)은 여자일까? 영화 ‘미인도’와 TV 드라마 ‘바람의 화원’은 그를 여성으로 설정한다. 신윤복의 화풍과 스타일에서 섬세한 여성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윤복은 여자가 아니다,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 신한평의 다섯째 아들이라고 가계도와 족보에 명기돼 있다.

신윤복은 김홍도, 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불린다. 그런데 김홍도와 김득신은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으나 신윤복은 사람과 풍경과 풍속이 함께 어우러진 풍속화를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신윤복을 조선 최고의 풍속화가로 첫 손가락에 꼽고 싶다. 신윤복은 여인과 꽃을 즐겨 그렸다. 꽃 중에서도 제일 많이 그린 꽃은 다름 아닌 반만년 유구한 대한영토 4천리 시공에 피어나는 꽃 진달래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①신윤복, 선술집 주변에 진달래가 피었다(주사거배) ②신윤복, 바위에도, 여인의 머리에도 피고 놓인 진달래 ③신윤복, 소년이 진달래꽃을 꺾는구나(소년전흥) ④신윤복, 꽃놀이 하는 뒷동산에 핀 진달래(상춘야흥)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한민족이라면 거의 선천적으로 본능적으로 누구나 좋아하는 꽃 진달래는 신윤복의 대표작 모음 화첩인 '혜원풍속화첩(蕙園風俗圖帖 국보135호)' 30점 중에는 4점에서나 불긋불긋 피어 있다.(1)* 
 
대한영토 4천리 반만년 한민족이 가장 즐겨 그린 꽃

조선시대 문인화, 민화 등 모든 그림 속에 나타나는 화훼식물은 모두 48종 154회로 출현 빈도는 다음과 같다. 1위, 매화 연꽃(8회), 3위 모란 국화(7회), 5위 진달래(6회), 6위 장미(5회), 7위 난꽃(4회), 10위 작약, 철쭉, 찔레꽃, 수선화 맨드래미(각 3회)다.

그 밖에 개나리, 금등화, 꽈리, 나팔꽃, 명자, 물레나물, 삼백초, 수수, 수련, 순채, 억새, 여뀌, 강아지풀, 질경이 등 서민에 친숙한 민화에 1~2회 나온다.(2)* 

조선시대 그림에 진달래는 매화와 연꽃, 모란과 국화등 사대부들이 애호하는 꽃들 다음으로 많이 그려진 꽃이다. 진달래는 양반과 평민 남녀노소 가릴 것 할 것이 누구나 좋아하는 꽃 임을 알 수 있다.

비단 구한말 이전뿐만 아니다. 진달래는 현재 남한과 북한 만주로 갈라진 한민족 생존권역에 국가와 정부, 체제와 이념 구별없이 남한과 북한, 그리고 연변조선족 자치주와 러시아의 연해주 거주 현대 한민족 화가들이 가장 즐겨 그리는 꽃이다.
 

(왼쪽부터) ①한국 현대화가 강정자, <진달래가 있는 풍경>(유화) ②북한 공훈화가 오영성, <고향의 언덕에서(조선화)> 한민족꽃 진달래와 북한 나라꽃 목란을 함께 그려 놓은게 의미심장하다. ③러시아 연해주 거주 유명 고려인 화가 변월룡 <진달래> (유화)[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조선시대 유일한 무궁화 그림? 알고 보니 중국의 국화격 모란

근세 조선시대까지 남겨진 그림 중 유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무궁화 그림은 조선말기 도화서의 화원 유숙(劉淑, 1827~1873)이 민화풍으로 그린 작품 '장원홍(壯元紅)'이다. -조선일보 2017년 7월 29일, 서효원의 시시콜콜과학사 무궁화 이야기

(왼쪽)네이버 백과는 그동안 조선시대 유일한 무궁화 그림으로 올려놓았으나 필자의 지적을 수용 무궁화 그림이 아니라 모란으로 정정했다. (오른쪽)장원홍은 중국의 국화격인 모란의 대표 품종이다. 중국사람 대다수는 모란을 장원홍이라 부르고 있다.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행정안전부 산림청 홈페이지, 문화관광체육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네이버 백과, 위키백과, 나무위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등 국내 무궁화 관련 텍스트과 매체들은 입을 맞춘 듯 '조선 후기까지의 회화 작품 중 유일하게 남겨진 그림, 유숙(1827~1873)작품 장원홍이다'라고 게재해 놓고 있다. 그러나 그림 왼편 상단의 그림 제목 ‘장원홍(壯元紅)은 ’나는 모란이다’ 라고 말해주고 있다.

장원홍은 중국의 국화격인 모란의 대표 품종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의 고향 산둥성 허쩌의 특산 모란이자 모란중의 으뜸이라 붙여졌다. 중국 사람 대다수는 모란을 장원홍이라 부르고 있다.

네이버 백과는 재작년 아주경제 칼럼과 작년 출판한 책 '무궁화의 두얼굴'에서 필자의 지적을 수용해 “구한말 '무궁화' 그림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무궁화가 아닌 중국의 '모란'이다”로 수정했다.(3)*

만시지탄이지만 ‘네이버 백과’에 고마움을 표한다. 그러나 네이버 백과 이외 모든 온·오프라인은 무궁화 한반도 고유꽃이라는 날조를 짜맞추기 위해 그림 왼편 상단에 장원홍(모란 대표품종)모란을 조선시대 유일한 무궁화 그림이라고 적고 있다. 혹시 중국인이 자기네 나라꽃격인 모란을, 게다가 그림제목에 버젓이 장원홍(모란)으로 적혀 있는 걸, 한국의 지성이 한국의 나라꽃 무궁화로 둔갑시킨 장면을 목도하면 뭐라 할 것인가? 언제나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어서 빨리 바로잡기 바란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유명 화가들이 즐겨 그리는 꽃 무궁화

미술에서 한국의 무궁화는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 이후 '갑툭튀'지만 일본의 무궁화는 터줏대감 겸 오타쿠다.

회화로만 본다면 현대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20세기 이전 일본의 무궁화 유명회화는 작품의 수는 200점이 넘는다.

그 중 우리나라 신윤복과 같은 시대의 일본 에도시대 양대 유명화가 사카이 호이츠(酒井抱, 1761~1829년), 마츠무라 케이분 松村景文(1779년 –1843년)의< 목근도>와 일본 제국주의 극성기 쇼와시대의 대표화가 이토산수이伊東深水(1892~1972년)의 1928년작(4)* <목근도>가 유명하다.
 

①사카이 호이츠(酒井抱,1761~1829년)木槿図 ②마츠무라 케이분 松村景文(1779~1843년) 木槿図, ③이토산수이伊東深水(1892~1972년) 木槿図 1928년 소화3년.[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사진=강효백 교수 제공]



 
한·일미술전(戰) : 한국 진달래 vs 일본 무궁화

한국의 모든 국가상징을 지배하고 있는 무궁화 그림은 앞에서 지적한 유숙의 '장원홍' 모란 그림으로 오도한 것 외에는 단 1점도 나오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을 잇는 다리, 동양의 추상화라는 서예에서도 구한말 이전 한반도의 시공에서 무궁화의 '근(槿)'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비단 회화나 서예에도 찾아볼 수 없다. 구한말 이전 옛 우리나라의 모든 건축· 조각· 암각화· 칠기· 목기· 자기, 유기 등과 복식· 침구· 병풍, 부채 생활용품의 와당 벽화 문양 등을 포함한 미술품과 문화재와 유물은 물론 골동품에도 무궁화는 흔적도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왜 어째서 예나 지금이나 한국에 진달래 미술품은 많은데 무궁화 미술품은 전혀 없거나 희소할까? 한마디로 진달래는 반만년 대한영토 4천리 시공에 지천으로 피어나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서에 부합한데 반하여 무궁화는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어째서 예나 지금이나 일본에 무궁화 미술품은 많은데 진달래 미술품은 전혀 없을까? 마찬가지로 무궁화는 8세기부터 토착화돼 산야와 도시, 신사와 사찰, 공원과 거리 일본 전역에 피어나 일본 민족의 역사와 문화 정서에 부합하고 진달래는 대마도를 제외한 일본 본토에는 전혀 없는 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 상징을 독점 지배하는 무궁화는 1896년 11월 21일 애국가 작사자이자 무궁화 국화 지정자 윤치호(5)*가 ‘무궁화 삼천리’를 언급한 이후 2021년 9월 현재 약 126년간의 국내 가짜 텍스트와 언론매체에만 피어 있을 뿐이다. 각계 각층에서 무궁화 보급운동을 수 십년 째 몰입하고 있는 현대에도 무궁화 미술품은 희소한 까닭은 무궁화가 근본적으로 한민족의 정서에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궁화처럼 193개 유엔회원국은 물론 세계사상 한 국가의 모든 국가 상징을 독점 지배하는 사물은 전무후무하다. 대한영토 4천리 진달래를 비롯한 3500여종이나 되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생종 꽃은 외면한 채 하필이면 꽃으로 위장한 전범기 무궁화를 대한민국 국가상징 독점지배 꽃으로 모시면 쓰겠는가?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자료=강효백 교수 제공]


◆◇◆◇◆◇◆◇각주

(1)*<혜원풍속화첩>30점엔 진달래는 4점에 그려져 있고 국화와 연꽃은 각 1점에 그려져 있다.
(2)*경기대학교 박물관, 『한국민화도록(한국민화도①』 2000: 고려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명품 도록』 , 2007 ; 국립민속박물관 『민화와 장식병풍」 , 2005 등참조
(3)*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793006&cid=49391&categoryId=49391&expCategoryId=49391
(4)*1928년 1월 18일 다나카 기이치 일본 총리대신은 자산의 고향 야마구치현 하기시 남동쪽 가와카미 촌 아부강 상류에서 자생하는 무궁화 군락을 국가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무궁화는 1928년을 기점으로 일본과 식민지 한국의 모든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절정기를 구가했다. 상세내용 차후 공개예정.
(5)*창씨개명 이토지코, , 대한제국의 정책결정권을 일제에 상납한 갑진늑약 체결자(1904년), 이토히로부미 한국측 추도위원장(1909년),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종일매국노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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