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와 대리점 간 공급 계약이나 기업의 인수합병(M&A) 계약이나 '약속'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대리점법을 M&A 계약에 적용해선 안되겠지만, 중요한 내용은 서면으로 남겨야 한다는 것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만약 공급자인 본사에서 서면 계약서에 없는 조건을 들먹이며 상품 구입을 강요하거나, 계약을 취소하려 한다면 어떻게 봐야 할까. 굳이 대리점법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부당한 처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한앤코)와 국내 2위의 유가공 업체 남양유업 사이에 벌어진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앤코와 남양유업은 지난 5월 27일 홍원식 회장을 비롯한 남양유업 오너 일가의 지분 53%를 3107억원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계약 당시 주식 대금은 8월 31일까지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대금 지급 기한이 끝난 지난 9월 1일 홍 회장 측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계약을 해제하겠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쌍방 간 합의가 이뤄진 특정 사안에 대해 한앤코 측이 계약 체결 이후 인정할 수 없다며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한앤코는 홍 회장 측이 거래 종결을 위한 임시주주총회 불참 이후 오너 일가 개인을 위한 무리한 요구들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고 밝힌 바 있다. 홍 회장은 이에 대해서도 입장문을 통해 "무리한 것들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쌍방의 합의가 됐었던 사항임에도 이를 침소봉대하여 발표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한앤코는 홍 회장의 입장문이 발표된 직후 다시 합의 사항에 대해 입장을 바꾼 적이 없으며, 모든 합의 사항은 서면으로 남아 있다고 반박했다. 오히려 홍 회장 측이 계약 발표 이후 가격 재협상을 포함한 수용하기 어려운 사항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대리점법은 2013년 벌어진 남양유업의 '밀어내기'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제정됐다. '원인 제공자'였던 남양유업도 이에 따라 구두나 이면 계약을 일체 없애고 표준 계약서를 사용해 오고 있다. 그런 남양유업이 정작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인수합병에서는 구두 합의를 이유로 계약 파기를 선언했다. 57년 역사를 가진 기업의 지배권과 관련된 계약이 대리점 공급 계약보다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