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 있는 8월이면 우리는 언제나 한·일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기를 어언 70년이 넘었지만, 한·일관계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광복 이후 한·일 양국이 수교 단계를 거쳐, 양과 질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룬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한·일관계의 진전은 남북관계와 비교해 보면 그 변화의 양상이 분명해진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어쨌든 한·일 양국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 국가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언제나 어딘가 막혀 있고, 답답한 이물질이 목에 걸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이웃 국가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티격태격하는 수준을 넘어 뭔가 고질병 같은 것임을 우리는 느낀다. 그리고 그 질환은 병력(病歷)이 아주 오래된, 그래서 당장 어떻게 치료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임을 우리는 안다. 또 그것은 당장 생명을 앗아가는 급성 질병은 아니지만, 인체의 모든 부위에 영향을 끼치는 기저질환 같은 것임도 우리는 알게 됐다. 한·일관계의 그 질병을 우리는 역사 문제 또는 과거사 문제라고 부르고, 그 치료를 과거사 청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일 양국은 이 과거사 청산 문제에 묶여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과거사 문제의 구체적 증상은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등으로 나타난다. 과거는 과거대로 해결하고, 미래는 미래대로 나아가자고 말은 하지만, 과거 없는 현재가 어디 있으며 현재 없는 미래가 어디 있겠는가. 과거, 현재, 미래가 두부 자르듯 그렇게 나눠질 수 없으니 한·일관계가 지금도 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던 문재인 정부의 대일(對日) 자세가 왜 이렇게 유턴한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과 관측이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그동안의 대일 강경 일변도 정책이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말로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 일본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데다 역대 한국 정부의 실패 사례는 들춰보지도 않았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칼을 뽑았으면 어쨌든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결기라도 있든지, 아니면 일본을 굴복시킬 현실적인 수단과 실력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불행히도 우리에겐 둘 다 부족하기 그지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은 현실을 정확히 꿰뚫는 냉철한 안목과 지혜일 것이다.
우리가 소리 높여 외치는 반일의 기치와 목소리에는 일본에 대한 미움과 증오, 적대감이 배어있을 수밖에 없고 그걸 더욱 확대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움은 미움을, 증오는 증오를 부르게 마련이다. 우리가 반일을 외칠수록 일본에서도 반한(反韓)과 혐한(嫌韓)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과거사 청산을 통한 양국 간 화해든, 반대로 양국 간 화해를 통한 과거사 청산이든 갈수록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필자가 일본에서 유학할 때 사사했던 일본인 교수인데 동아시아 근대사 전공이었던 그는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고 안 의사의 숭고한 뜻을 알리는 노력을 하고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누구인가. 일본의 초대 총리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총리를 네 번씩이나 역임하고 조선 통감을 지낸 일본의 최고 지도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일본인 입장에서는 용서하기 어려운 인물 아닌가. 그런 안 의사를 존경한다는 일본인 교수를 유학 초기에 만났으니 필자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교수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 있는 동안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일본인을 만나는 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본인 지인 중에는 한국에 가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을 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탁월한 정치사상이론으로 평가한다. 일본이 동양평화론이 제시한 길을 걸었다면, 그 엄청난 국가패망을 피했을 뿐 아니라 동양의 한·중·일 3국이 함께 번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동양평화론이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었는지, 너무 이상적인 구상이 아니었는지 등에 대한 지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일본 지식인들 중에는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훌륭한 정치사상가로서 약소국 조국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영웅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것이다. 이들은 모임을 만들어 안중근 의사 추모식에 꾸준히 참석하기도 한다.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던 2019년에도 서울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린 안 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에 일본인 2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를 바라보는 일본 정부의 인식은 어떤 것인가. 2014년 1월 중국에 안중근기념관이 개관하자 지금은 총리가 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당시 관방장관은 “우리나라의 초대 총리를 살해, 사형판결을 받은 테러리스트”라면서 한국과 중국에 강한 항의를 표했다. 일본은 관방장관이 직접 정부를 대표해 브리핑에 나선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어떻게 접근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는 테러리스트인가, 동양평화를 추구한 혁명가인가. 안중근 의사에 대한 평가를 놓고 일본 정부(또는 일본의 일반여론)와 지식인들 간에 보이는 이런 엄청난 괴리는 조금만 연장하면 곧바로 일본의 한국 침략사 전반에 대한 인식 차이로 확대된다고 할 수 있다. 한·일 과거사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그런 반성의 토대 위에서만 한·일 양국 관계는 물론 일본 스스로의 미래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쪽은 일본의 이런 지식인들인 것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지식인들이 소수일 수 있다. 그런 만큼 이런 지식인들과 이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방향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강경한 반일 정책은 이들 지식인의 입지를 한없이 쪼그라트려 놓고 있음을 쉽게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이제 한국 관련 발언이나 행동을 극도로 자제한다. 공연히 나섰다가 한국 쪽에서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일본에서는 욕만 실컷 얻어먹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돈 얼마를 더 얻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목적이라면 문제해결은 차라리 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일본의 진정한 반성은 압박과 공격이 아니라 설득과 공감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며, 지나온 70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물음 앞에 소환되는 해답은 이미 23년 전에 제시돼 있다고 본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그것이다.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공동선언에는 양국 간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11개 항목의 핵심 내용과 43개 항목의 행동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미 20여년 전에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해결하고 미래를 열어갈 청사진을 밝혀 둔 것이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고, 한국은 일본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했다. 이 선언이 계속 잘 실행됐더라면 양국 관계는 지금쯤 과거사를 청산하고 저 멀리 미래로 나아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못한 책임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따지기 시작하면 양국 관계는 지금처럼 계속 쳇바퀴만 돌리게 될 것이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해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자 일본에서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지식인 78명이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냈다. “일본의 보복이 한국의 보복을 초래하면 그 연쇄반응의 결과는 수렁”이라면서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의 사이를 가르고 양국 국민을 대립, 반목하게 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 성명에는 7000여명의 온라인 서명이 이뤄졌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스가 내각이 출범하자 이번엔 ‘한국은 적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내면서 한·일정상회담 개최 등을 촉구했다. 그런데 이들이 양국 간 관계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시발점으로 제시한 것도 바로 김대중·오부치 선언이었다.
한국에서도 한·일관계가 심하게 악화되자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되살리자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때마침 대권 후보 중 한 사람은 이번 광복절에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반가운 일이다.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어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 진지한 토론과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 내에서도 상응한 논의가 가능하리라 본다. 김대중·오부치 선언도,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 발언과 IMF 사태 때 일본의 비협조 등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때에 탄생해 양국 관계를 획기적으로 돌려놓았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