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일본 외교가까지 덮친 反韓 쓰나미

2021-07-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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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영 前뉴시스 도쿄특파원·日와세다대 국제관계학 박사


주한 일본대사관의 2인자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일 관계 개선 노력을 성적 표현으로 비하한 사건은 한·일 외교사에 깊은 내상(內傷)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한 일본 고위 외교관의 자질 문제로만 치부하고 넘기기에는 현재의 한·일 관계가 너무나 살벌하다. 소마 히로히사(相馬弘尙)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발언은 돌발적 실언이라기보다는 한국 정부에 대한 그의 평소 생각, 나아가 일본 외교관들의 일반적인 정서가 드러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 표현이 외교관으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을 만큼 무례하고 거칠었다는 것이 문제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그의 거친 표현을 걸러내고 발언 내용의 핵심만 요약한다면 “일본은 한국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반일 감정을 몰아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또 일본과 관계 개선을 못해서 안달이냐고 비난하고 조롱한 것이다.
일본 내의 반한(反韓) 또는 혐한(嫌韓) 분위기가 한국 내의 반일 감정 못지않다는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제 급기야 한국통 일본 외교관이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 기자를 앞에 두고 한국을 마구 조롱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소마 공사는 일본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해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공사 등을 지낸, 일본 외무성에서 정통 한국 전문가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에서 정치인, 외교관, 언론인, 기업인 등 각계 인사들과 자리를 가리지 않고 어울리며 한국어에도 막힘이 없고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도 잘 아는 편이다. 한·일 양국의 우호적 관계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위치에 있는 그도 어느덧 일본 내에 만연한 반한 감정에 감염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마 공사 발언이 보도된(16일) 지 나흘 후인 지난 20일 일본 집권 자민당의 외교부회(외교분과위원회)가 열렸다. 당연히 소마 공사 발언과 이후 대처 방안 등에 대한 지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작 이 문제를 거론한 의원은 없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관방장관과 총리까지 나서서 그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마당에 굳이 집권당에서까지 거론할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만 자민당 의원들의 침묵을 그렇게만 보기에는 찜찜한 게 사실이다.

소마 공사 문제에는 입을 꾹 닫은 의원들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이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피해 자체 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데 대해서는 불만을 토로했다. 게다가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자민당 외교부회 회장은 지난 17일 요미우리신문에 “(선수촌에 공급하는) 식재료는 대접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신경 쓰고 있다”면서 “(한국의 행동은) 후쿠시마 주민들의 마음을 짓밟는 행위”라고 말했다. 미국 선수단도 자체 식사 조달을 하고 있지만, 자민당은 미국에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일본 집권당 의원들이 한국 선수단에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소마 공사 문제에는 침묵하는 것이 그들의 내심에는 같은 반한 감정에 동조하고 있다는 징표는 아닐까.

일본 외무성의 반응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아이보시 고이치(相星孝一) 주한 일본대사는 소마 공사 발언이 보도되자 곧바로 새벽 2시에 보도자료를 내고 유감을 표했다. 이어 주말인 17일 오전에 외교부 차관의 호출을 받고 사과했다. 이례적일 만큼 즉각적이고 신속한 대처였다. 아이보시 대사는 원칙적이고 꼼꼼한 외교관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소마 공사와는 달리 사람을 만나는 데도 신중한 편이고, 평소 외교관으로서의 매너와 처신을 매우 중시한다고 한다. 그런 아이보시 대사에게 소마 공사의 발언은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격분했을 만하다. 새벽에 보도자료를 내고 주말 아침에 주재국 외교부에 불려들어가는 그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을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였다. 한국에서는 소마 공사의 즉각 본국 소환을 기대했지만 아이보시 대사는 본국 외무성에 넘겼고, 일본 정부도 “정기 인사 때 보자”는 태도이다. 소마 공사를 징계하듯이 조치할 수는 없다는 뜻일 것이다. 당시는 문 대통령의 방일 문제를 놓고 양국 간에 마지막 줄다리기가 치열한 순간이었다. 한·일 양국은 막바지 협상 중이었고, 그 내용은 주일 한국대사관에서도 제대로 파악이 안 될 정도로 극비였다.

일본 외무성이 소마 공사 사건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일본 외교관의 품위를 떨어뜨렸다는 사실이 표면적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일본이 아쉬워하는 것은 자신들이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한 문 대통령의 방일 문제가 이 건으로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고 결국은 무산돼버린 점일 것이다. 소마 공사 사건이 터지기 직전만 해도 한국은 협상 결과가 상당히 미흡한 상황에서도 한·일 정상회담에 거의 합의한 상태였는데 소마 공사 사건이 터지면서 이를 뒤집었다는 게 일본 언론의 판단이다. 일본으로서는 모처럼 한국을 압박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것이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각 부처의 실질적 책임자는 사무차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 6월 22일 임명된 모리 다케오(森健良)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으로서는 초반부터 대형 악재를 만난 셈이다.

일본 외무성 내 한국 관련 업무 부서의 경우 주한 일본대사관은 물론 본부까지도 한국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일 수밖에 없게 됐다. 그나마 소마 공사는 한국 언론이 비교적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이었는데 이런 일이 터지는 바람에 이제 누구도 선뜻 기자는 물론 외교관들과도 비공식적인 자리라 해도 좀처럼 함께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인과의 접촉 경계령이 내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조심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에 대한 신뢰가 더욱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소마 공사의 발언은 백번 잘못된 것이지만 그래도 어쨌든 비보도 전제의 비공식 자리에서 편하게 한 이야기가 그대로 보도되는 마당이니 앞으로 어떻게 한국 언론을 믿고 만나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 일본 측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한국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일본 외교관들의 이야기를 모아보면 대개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일은 근본적으로 외교관 개인의 자질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본 외무성 내에 한국에 대한 지겨움이랄까 짜증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에서 근무해 보면 한국인의 따뜻함이나 정 같은 것을 느끼고, 이는 외교관의 보람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 있어서, 한국은 자신들의 입장만을 강조하고 자신들의 말만 하는 것 같다. 일을 벌여놓고 이해해달라거나 해결하라고 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피곤함이 있다. 그러다 보면 한국과 외교협상을 하는 데 대해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한국에 대한 불신도 더 쌓여간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소마 공사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네티즌 반응은 뜨거웠다. 소마 공사 발언에 대해서도 잘했다는 반응이 많았다. 지난 19일 오후 일본 니혼TV가 문 대통령의 방일 무산을 전한 뉴스에 달린 댓글 중에서 “정말 훌륭한 결단이다. 한국 선수단도 보이콧 해준다면 더욱 멋질 것 같은데, 검토해주시겠어요?”라는 댓글이 베스트 댓글로 뽑혔다. 14만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싫어요’는 4400여 건 정도였다. 이 기사에는 일본 방송에서 한국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혐한 발언을 자주 해오던 재일교포 출신의 한 언론인도 “문 대통령은 일본의 완고함을 이제 알았는가.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일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이라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는데, 2만4000여 명이 “참고가 되었다”를 눌렀다.

일본의 분위기가 이러니 앞으로 소마 공사가 일본에서 반한 인사로 맹활약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 같은 소리도 나온다. 일본 외무성에서 코리안스쿨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주한 일본대사로 발탁돼 친한 인사로도 정평이 났던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전 대사가 요즘 반한 인사로 일본 언론을 누비고 있는 일에 빗댄 것이지만, 일본의 반한 분위기를 전하는 씁쓰레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일 양국에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증오가 코로나19처럼 확산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책이 없어 보인다. 최소한의 역할이라도 해야 할 양국 주재 대사관마저 거의 마비 상태이고, 이번 소마 공사 사건처럼 오히려 기름을 붓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일 한국대사관이라고 사정이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는 부임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강 대사는 부임 이후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간사장과는 인사를 나누었지만, 자민당의 다른 핵심 간부들은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4선 국회의원 출신에 한일의원연맹 회장까지 역임한 강 대사지만, 일본 정계에서는 그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부임 직전 일본 정부와 집권당을 향해 여러 차례 독설을 날리면서 날을 세웠던 것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외교 관련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 중 한국에 호감을 느낀다는 비율은 2009년 63.1%를 정점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19년에는 26.7%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호감도는 2011년 41%에서 2019년에는 12%로 떨어졌다(한국갤럽). 양국 정부의 상대에 대한 정책이나 일시적 현안 등에도 이 수치는 영향을 받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역사문제와 더불어 양국의 국가 위상 변화 등에 따라 장기적 추세가 변화해 나갈 것이다.

양국 관계를 단시간에 바꿔놓을 묘약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만 양국의 관계자들이 이럴 때일수록 작은 일에서부터 세심한 배려와 신중한 자세를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은 되새겨야 할 것 같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은 지금의 한·일 관계에도 유용한 격언이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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