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無漢)시 정부는 집을 사려는 주민은 집을 살 수 있는 자격부터 취득하라는 내용의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았다. 주택을 구매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 주택구매 자격증을 발급한다는 것이다. 자격증은 발급 후 60일까지 유효하며, 자격증 1장당 아파트 한채만 등록해 구매할 수 있고 동시에 두채 이상 아파트 등록은 불가능하다는 게 규제 주요 내용이다.
중국 언론들은 이 주택 구매 자격증을 '방표(房票)'라고 불렀다. 과거 양표(粮票)·육표(肉票)·유표(油票) 등과 같은 물품 배급교환권이 있어야만 식량을 살 수 있었던 계획경제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계획경제 시대처럼 주택을 정부가 분배해주는 건 아니지만,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지방정부가 얼마나 골몰하는지를 보여준다.
올 들어 규제책만 320건···부동산 투기 잡아라
우한시의 ‘방표’ 정책은 전국 각지 지방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규제책의 빙산의 일각이다.
중국 중위안부동산 연구중심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부동산 시장에 발표된 규제책만 320건이 넘는다. 이 중 중앙정부가 내놓은 규제만 46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30건이었다.
이어 3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당중앙정치국 회의에서도 "주택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房住不炒)"라는 기조를 재차 강조하며 "땅값, 집값을 안정시켜 부동산 시장의 온건하고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장다웨이 중위안부동산 수석 애널리스트는 "최근 중앙 각 부처에서 줄줄이 규제책을 내놓고 있다"며 "특히 주택건설부와 인민은행이 내놓은 부동산 규제책의 강도와 치밀함이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강도 높은 규제는 서서히 효과를 내고 있다. 중국 부동산시장 바로미터로 불리는 광둥성 선전 부동산 시장 열기가 차츰 가라앉고 있는 것. 이곳은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었던 지역이다.
중위안 부동산 연구중심에 따르면 지난 6월 선전시 중고주택 거래량은 2575대로, 전년 동비 70% 줄었다. 부동산 시장 비수기인 춘제(중국 설) 연휴를 제외하고는 선전 중고주택 거래량이 월 3000채 아래로 내려간 건 2011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선전시 6월 중고주택 가격도 전달 대비 0.2% 하락하는 등 지난 5월부터 두달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중국 부동산중개업체 이쥐에 따르면 6월 선전시 중고주택 거래가는 ㎡당 6만1500위안으로, 1월 최고점(7만2436위안) 대비 약 15% 하락했다.
10년래 최저치로 떨어진 中부동산 대출 증가율
사실 지난해 경기 부양을 위해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며 시장이 과열 양상을 띠자 중국 정부는 규제책을 쏟아냈다. 올 들어 각각 지방정부, 은행, 부동산개발업자를 대상으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한 게 대표적이다. 우선 집값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지방정부 책임자를 소환해 부동산 투기를 막으라고 경고했다.
올 상반기에만 광저우, 허페이, 닝보, 둥관, 청두, 시안, 선전, 상하이 등 13개 도시 부동산 부문 책임자가 웨탄(約談·예약면담) 형식으로 소환돼 경고 조치를 받았다. 웨탄은 정부가 관리대상 기관이나 개인을 소환해 공개적으로 질타하고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부동산 투기 문제로 각 지방도시 책임자를 소환한 건 2018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올해부터 은행권의 부동산 관련 대출 상한선도 설정했다. 각 은행 규모별로 부동산 관련 대출 비중을 12.5(농촌은행)~40%(대형은행)로 제한한 것. 은행별 가계주택담보대출 비중도 마찬가지로 7.5(농촌은행)~32.5%(대형은행)로 규제했다.
덕분에 올 상반기 들어 중국 은행권의 부동산 대출 증가세도 꺾였다. 중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은행권 부동산대출 잔액은 전년 동비 9.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해말 증가율보다 2.2%포인트 둔화한 것이다. 중국 베이커재경(貝殼財經)은 분기별 증가율로는 약 10년래 최저치라고 전했다. 같은 기간 가계주택담보대출 잔액도 13% 증가에 그치며 지난해 말 증가율(14.6%)을 밑돌았다.
"빚내서 집 짓지마" 中 부동산개발상 숨통 조이기
가장 공격적인 규제는 부동산 개발업체의 돈줄을 조인 것이다. 그동안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빚을 내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게 다반사였는데, 이것이 중국 금융시스템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올해부터 부동산 개발업체에 '세 가지 레드라인'을 준수할 것을 요구했다. 세 가지 레드라인은 각각 △순부채율을 100% 이하로 낮추고 △유동부채 대비 현금성 자산을 1배 이상으로 늘리고 △선수금을 제외한 자산부채율을 70% 이하까지 낮추는 것이다. 이 중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맞추면 연간 부채를 전년 대비 15%까지 늘릴 수 있지만, 한 두 가지라도 충족시키지 못하면 연간 부채는 5~10%밖에 늘릴 수 없도록 했다.
특히 세 가지 레드라인을 모두 준수하지 못한 기업은 부채를 줄여야 함은 물론, 토지 매입도 제한했다. 토지 매입액이 연간 매출액의 4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기로 한 것. 자금 여력이 없으면 땅을 사지도, 집을 짓지도 말라는 얘기다.
올해만 200개 넘는 부동산개발상 '파산'
중국의 부동산시장 규제 칼날이 매서워지고 있다는 우려에 지난달 26~27일 이틀새 중국 본토와 홍콩증시에 상장된 '톱30' 부동산기업 시가총액이 1862억1100만 위안(약 33조원)어치가 증발했다고 중국 매체 시대재경은 집계했다.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중국 부동산기업이 잇달아 경영난에 빠지며 올 상반기에만 파산업체가 200개가 넘는다. 중소기업은 물론 상장사,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국 3대 부동산 재벌인 헝다그룹도 최근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재벌 완커그룹 위량(郁亮) 회장은 "이제 부동산개발업도 제조업처럼 변해야 한다. 제조업에서 배워야 한다"며 "부동산으로 쉽게 떼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는 제조업처럼 천천히 성실하게 장기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진핑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은 진행 중
과거 부동산은 중국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과열로 집값은 치솟고 개발업자들은 떼돈을 벌었지만, 정작 대다수 중국인들은 집을 살 처지가 안되거나, 내집을 장만하더라도 거액의 빚을 진 '팡누(房奴·집의 노예)'로 전락했다. 부동산은 교육, 의료와 함께 민생을 괴롭히는 원흉이 됐다. 게다가 부동산 개발업체의 천문학적 부채가 중국 금융시스템에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이에 중국은 2016년부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당시 시진핑 주석은 "부동산은 거주용이지, 투기용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규제 고삐를 조였다. 특히 부동산 시장이 갑작스럽게 붕괴하는 걸 막고 연착륙을 실현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0년 중국 경제에서 부동산·건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4.5%에 달한다. 부동산 시장 붕괴는 중국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