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쉽고 바르게]⑥ 시대를 따를까, 맞춤법을 따를까...안방극장의 고민

202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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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샤' '차칸남자' 오기인 듯 헷갈리는 제목들...시청률 오르면 논란 뒷전

과도한 비속어·욕설 노출에 법적 제재...제작진 "창작의 자유 침해" 우려

제목 논란 겪은 KBS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사진=KBS 제공]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언어'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통신과 TV 등 각종 매체에서 신조어가 넘쳐나고, 외국어 남용도 비일비재해졌다. 소통의 역할을 하는 언어가 파괴되면서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격차는 더 심해졌다.

국민을 계도하고, 소통에 앞장서야 할 정부나 기관·언론도 언어문화 파괴의 온상이 됐다.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의 언어 파괴는 말할 것도 없다.
신조어와 줄임말, 외국어 사용으로 '새로운 표현'과 '간결한 표현'은 가능해졌을지 몰라도 이를 모든 국민이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쉬운 우리말 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쉬운 우리말을 쓰면 단어와 문장은 길어질 수 있지만, 아이부터 노인까지 더 쉽게 이해하고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사)국어문화원연합회는 모든 백성이 쉽게 배우고 익힐 수 있도록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정신을 계승해 국민 언어생활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공기관의 보도자료와 신문·방송·인터넷에 게재되는 기사 등을 대상으로 어려운 외국어를 쉬운 우리말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지도 이 노력에 힘입어 우리 주변에 만연한 외국어와 비속어·신조어 등 '언어 파괴 현상'을 진단하고, 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13회에 걸쳐 연재하기로 한다. <편집자 주>


'프로듀사' '식샤를 합시다' '우와한 녀' '쌈, 마이웨이' '너의 등짝에 스매싱' '꼰대 인턴' '이 구역의 미친X'…자칫 '오기(誤記)'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는 실제 전파를 탄 인기 드라마들이다. 유행어나 줄임말은 우리 일상과 아주 많이 가까워졌고 시대상을 반영해 드라마도 '요즘 언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한글 문법에 맞지 않는 유행어나 은어가 쓰이기 시작했고 점점 드라마 속 우리말을 찾기 어려워졌다. 비속어나 욕설은 덤이다. 

'요즘 언어'를 쓰는 드라마를 두고 창작자와 시청자 간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한글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창작의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부딪쳤다. '우리말'을 지키느냐, '시대'를 따르느냐…TV 드라마의 딜레마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앞서 KBS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 '프로듀사'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우와한 녀' 등은 방영 당시 한글 문법에 맞지 않는 제목으로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공효진·차태현·김수현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 '프로듀사'는 연극, 영화, 방송 등의 제작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인 '프로듀서(producer)'가 옳은 표기지만 직업을 강조하고자 하는 제작진의 뜻에 따라 '프로듀사'라는 제목을 가지게 됐다. 제작진은 "'프로듀서'에 직업을 뜻하는 '사(事)' 혹은 검사, 의사처럼 전문직 중 하나라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유행어를 제목으로 쓴 tvN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사진=CJ ENM 제공]


가수 겸 배우 윤두준이 주연으로 출연한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는 '식사를 합시다'가 맞는 표현이지만 유행어에 따라 '식샤'라고 표기하기로 했다. 제작진은 "허구연 야구 해설위원이 경기 해설 중 '식사'를 '식샤'로 발음하면서 만들어진 유행어를 빌린 것"이라며 바른 표기가 아니라서 내부적으로도 논의가 많았으나 본래 의미를 지키고자 제목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위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시청자들은 "제목이 혼란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지만,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며 이 같은 반응은 사그라졌다. 그러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는 한글 단체의 반발로 방영 도중 제목을 변경하게 됐다.

당시 한글학회는 KBS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차칸남자'(이하 '차칸남자')의 제목을 보고 대한민국 공영 방송인 한국방송공사의 드라마 제목인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많은 연속극 제작자와 출연 배우들 가운데 누구도 '차칸남자' 표기를 바르게 쓰자고 제기하지 않았다면 그것 또한 큰 문제"라며 "우리 말글을 제대로 쓰고 그 교육과 계도에 앞장서야 할 한국방송공사에서 한글맞춤법을 무시하고 우리말을 파괴하면서까지 연속극을 만든다는 데에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항의했다.

국립국어원도 KBS에 '차칸남자'가 한글맞춤법과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것은 물론 한류의 핵심인 한국어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다른 나라에 전파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고 시정을 촉구했다.

이에 '차칸남자' 측은 "극 중 주인공이 자신을 '착한 남자'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랑을 위해 또 다른 사랑을 이용하고 복수하는 '나쁜 남자'라는 점에 착안해 '착한'의 반어적 의미를 '차칸'으로 표현했다. 뇌 손상을 입어 지적 능력이 퇴화한 주인공이 자신의 일기장에 '착한 남자'를 '차칸 남자'로 잘못 쓰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이야기 전개에서 필요한 표현"이라고 반론했다. 그러나 한글 단체들은 법원에 '방송 금지 가처분'을 내는 등 맹공을 펼쳤고 '차칸남자'는 결국 방송 3회부터 '착한남자'로 제목을 변경했다.
 

은어를 제목으로 활용한 KBS '쌈, 마이웨이'[사진=KBS 제공]


은어나 유행어를 즐겨 쓰는 TV 드라마를 두고 시청자들의 반응도 갈렸다. '한글 파괴'에 관한 우려를 보이기도 했고, '요즘 언어'를 받아들인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30대 남성 김씨는 "한글 문법에 맞지 않게 유행어나 은어를 남발하는 드라마들을 자주 보았다. 솔직히 (유행어를 쓴 제목이) 드라마 내용과 딱 맞아떨어지거나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크게 와닿지도 않았다. 저런 제목이 아이들에게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걱정되기도 한다"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대 여성 임씨는 "유행어나 은어를 드라마 제목으로 쓰는 건 크게 개의치 않는다"라면서도 문법에 맞지 않는 제목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임씨는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유행어나 은어를 쓰는데 오히려 매력적이지 않다고 하면 쓸 이유가 있나. 오히려 유행어는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촌스럽게 느껴진다. 진입 장벽을 높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30대 여성 최씨의 의견은 달랐다. 최씨는 "드라마는 예술 작품 아닌가. 강박적으로 한글 문법이나 바른말을 쓰는 것보다 작품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았는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는지가 더 중요한 거 같다. 드라마를 보지 않고 지적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인터넷 유행어를 제목으로 쓴 카카오TV '이 구역의 미친X'[사진=카카오TV 제공]


방송국 관계자들은 이러한 드라마 제목에 관해 "시청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라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방송국은 최신 유행을 따르고 시대를 읽어야 한다며 특히 드라마는 사실적 묘사를 위해 대중의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었다.

방송 작가 A씨는 "최신 유행을 따르는 건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미를 유발하기 위함이다. 문법에 맞지 않더라도 유행어를 제목에 쓰는 건 그만 한 이유가 있다. 시청자를 몰입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드라마 작가 B씨도 이에 공감했다. "'차칸남자'나 '식샤를 합시다'가 아직 회자하는 건 분명 제목이 가져다주는 강렬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법에 맞지 않더라도 드라마의 핵심을 담고 있고 시청자들에게도 강한 이미지를 남기지 않았나. 창작자로서는 부러울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방송 관계자 S씨는 "제목으로 작품의 이미지가 정해지는 것"이라며, 작품 분위기나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문법에 어긋나는 제목을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S씨는 "무조건 눈에 띄기 위해서 은어나 유행어를 쓰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시적 허용'이라고 본다. 문법상 틀린 표현이라도 문학적 효과를 위해 허용하고자 하는 거다. 드라마 제목은 채널 성향, 시청 층에 따라 제목이 결정된다.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고민 끝에 나온 결과"라고 강조했다.

비속어 대사 남발로 지적받은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사진=CJ ENM 제공]


드라마 제목 외에도 대사를 통한 은어, 비속어 남발도 문제 되고 있다. 비프음을 통해 노골적으로 욕설을 노출하거나 '이런 시베리아' '수박씨 발라먹는다' '샤발라' 등 욕설을 연상시키는 대사도 자주 목격된다. tvN '호구의 사랑',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은 비속어와 욕설 사용 등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방심위는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욕설을 노출하고 비프음 처리한 것을 지적하며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과도한 욕설 표현 등을 방송한 것은 시청자의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것"이라며 법정 제재를 하기도 했다.

창작자와 시청자는 TV 드라마 속 은어와 비속어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야 할까.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시대 속 언어에 관해 언급하며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 속 유행어나 비속어 사용에 관해 두 가지 관점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바른 언어, 우리말을 제대로 써야 한다'라는 비판적 시선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 친구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를 담아야 하는 게 아니냐'라는 관점이다. 이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바른 언어, 우리말만 쓴다면 '드라마'가 가지는 시대상이나 사실적 묘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적절히 쓰되 남발하거나 의도 없이 쓰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은어나 유행어 사용에 관해 대중이 '불편하다' '한글 파괴다'라는 공식적 반응을 보인 건 아직 없다.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사용된다는 이야기다. '언어'는 시대를 담고 있다. 국립국어원도 신조어가 대중적으로 사용되면 사전적으로 정의하고 해설을 달기도 한다. 그 시대의 언어를 받아들이는 거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요즘 언어'를 사용하도록 열어둘 필요도 있다. 다만 실제 언어생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적절한 선이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는 우리의 일상을 담고 시대를 그린다. 은어나 유행어 사용 자체를 막거나 강박적으로 바른 언어를 사용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유행어·은어·비속어 사용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라면 무분별한 유행어 사용이나 한글 파괴를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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