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첩한 조직의 조건] 안정성과 속도, 두 마리 토끼 잡아야 살아남는다

2021-07-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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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전환이 화두로 떠오른 데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조직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분석과 계획 수립보다 예측하지 못했던 사태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성이 중요해지는 추세다.

기업 경영 환경도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과 같은 기술은 파괴적 혁신을 가능하게 만든다. 인구 변화와 MZ세대의 부상으로 각 세대마다 전혀 다른 가치관을 중시하면서 예측을 어렵게 한다. 특히 회사 내부 구성원인 MZ세대는 본인이 수행한 일에 대한 피드백을 즉시 받길 원하고, 이에 따라 리더들에게도 유연한 조직 관리가 요구된다.

조성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슈브리프 '지속가능한 성장의 필요충분조건, 조직민첩성(Organizational agility)'에서 "급격한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기존의 기능(function) 중심의 수직적 조직체계에서 다기능(cross-function) 중심의 수평적 조직체계로 변화 중"이라고 진단했다.

조 연구원은 "한 부서 내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관행이 다른 여러 부서 전문가들과의 협업 체계로 바뀌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바로 조직 민첩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HR 컨설턴트인 린다 홀베치(Linda Holbche)에 따르면 급격한 환경변화에서 불구하고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조직 운영에서의 민첩성이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에 따르면 조직민첩성이란 속도 뿐만 아니라 안정성을 동시에 가진 기업을 의미한다. 두 요인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이 조직민첩서을 갖춘 기업인 셈이다. 맥킨지는 상대적으로 신속성보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기업은 '관료적 기업'으로, 신속성에 초점을 둔 기업은 '스타트업'으로 분류했다.

영국의 전략 전문가인 도널드 설(Donald Sull) 교수는 △전략 민첩성(strategic agility) △포트폴리오 민첩성(portfolio agility) △운영 민첩성(operational agility)으로 조직민첩성을 구분했다.

도널드 설에 따르면 전략 민첩성은 신사업 기회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적시에 포착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특히 사업을 포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신속하게 철수하는 역량도 포함된다.

포트폴리오 민첩성은 자원을 신속하게 확보·배분하고 시장 변화에 따라 제품과 사업군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능력이다. 운영 민첩성은 제도, 조직, IT시스템 등 관리 시스템을 효율적으고 유연하게 운영해 사업계획을 신속하게 실행하는 능력이다.

한국IDC도 '국내 미래 업무 설문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고 조직 민첩성을 확보하기 위해 빠른 속도로 자동화가 업무 영역에 도입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는 백신 접종 이후 자동화가 45%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업무 역량 강화를 위해 IT 지원, 쉬운 도구 사용 및 디지털 기술 교육 등 구체적인 전략과 실행이 요구된다.

기업 인사 및 재무 관리 애플리케이션 워크데이가 1000명 이상의 C레벨 임원 및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조직민첩성: 디지털 가속화 로드맵' 조사 결과에서 응답자 3명 중 1명은 3년 내 자사 매출의 75% 이상이 디지털에서 실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조직민첩성은 기술 투자에도 적용되는데, 77%의 기업이 신기술에 대한 투자 실패에 회사가 신속하게 대응한다고 답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직민첩성을 높이기 위한 구조 개혁은 이미 주요 기업들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은 2012년 제품개발 분야에 애자일 방법론에 기반한 패스트웍스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GE의 패스트웍스는 불확실한 환경을 극복하고 경영과 제품개발 속도를 높여 고객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경영 도구다. 프로젝트 팀을 10여명 내외로 구성해 리더 외에는 역할 구분이 없고 팀원 각각이 오너로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패스트웍스는 고객 문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을 설정해 구체화한 후 테스트 제품을 제작한다. 이어 최소한의 비용과 시간을 투자한 제품을 제작하고, 고객 반응을 기반으로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며 입증된 결과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GE는 이러한 방식을 통해 새로운 양전자 컴퓨터 단층촬영기 개발에 기존 소요시간인 2~4년 보다 절반 가까이나 줄이는 획기적인 성과를 창출했다.

한국에서도 조직민첩성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회사 내부 구조를 개혁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네이버는 이미 2014년 셀(cell) 조직을 도입해 신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는 폐단을 해결하고자 했다. 셀 조직 도입으로 기존의 4단계던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2단계로 축소됐고, 셀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리더에게는 기획, 운영, 인사, 예산 등 전반적인 권한이 부여됐다.

이어 2015년에는 의사결정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본부제를 폐지하고 '센터/그룹, 실/랩' 단위로의 재편을 단행했다. 같은 해 성장성이 높은 셀 조직을 사내 독립 기업으로 독립시켜 별도 자본금을 제공했다.

LG화학도 지난해 한국을 비롯한 중국, 미국, 폴란드 등 전세계 사업장의 사무기술직 2만여명을 대상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업 솔루션 팀즈를 도입했다.

LG화학은 팀즈 도입으로 비대면(Untact), 무중단(Unstoppable), 무제한(Unlimited)의 '3U 업무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비대면을 통해서는 업무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해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무중단 업무 시스템은 오피스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지 않은 PC에서도 문서를 편집할 수 있도록 해 끊김 없는 업무 환경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무제한 업무 정보 접근 시스템은 회의와 문서 공동작업 결과를 팀즈에 보관해 누구나 검색만으로 업무 진행 과정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조성일 연구원은 "조직민첩성 강화는 급변하는 경영환경 하에서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며 "조직의 민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속성과 안정성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기업들은 조직구조, 일하는 방식, 제도와 인프라, 조직문화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는 대부분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들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수평적인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직급과 호칭을 통합했다. 그러나 몇 년 되지 안하 이전 체제로 복귀한 기업들이 생겼다. 기존 체제 회귀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됐던 제도를 갑자기 바꾸는 데 대한 거부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조 연구원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할 때 조직민첩성은 속도와 유연성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안정성도 함께 필요하다"며 "대기업들은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직급과 호칭 폐지를 시도했지만 실제로는 조직 안정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낳으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기업들은 조직 민첩성 향상을 위해 신속성을 높이는 방안 이외에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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