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잇달아 발생한 화재로 2019년부터 ESS 관련 투자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국내 시장에서는 기업들이 사실상 ‘개점 휴업’ 상태다.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격 폭락에 정부 지원까지 단계적으로 축소됐지만 규제는 많아져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일관된 목소리다.
ESS는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나 값싼 심야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장치로, 계절과 날씨 등 외부환경에 따라 생산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할 수 있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큰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려면 ESS 설치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2017년부터 잇달아 ESS 화재 발생…업계 “배터리와 인과관계 없다”
그러자 배터리 업계는 “ESS 화재와 배터리와의 인과관계는 없다”며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화재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정부는 화재 예방 대책으로 신규 ESS 설비 가동률을 90%로 제한했다. 더 나아가 기존 설비 가동률은 80%로 하향하도록 추가 권고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ESS 업체들이 보전해주면서 사업의 수익성은 악화했고, 화재 불안감은 여전해 국내 ESS 시장은 계속 정체 상태다.
◆LG엔솔·삼성SDI·효성중공업 등 미국·EU 시장 확대 박차
이에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제약이 많은 국내보다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1위 배터리 업체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17일 세계 최대 규모의 ESS 프로젝트에 ESS용 배터리를 공급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발전사 비스트라(Vistra)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터레이 카운티 북동부 모스랜딩 지역에서 가동 중인 1.2GWh(기가와트시) 규모의 전력망 ESS에 최근 배터리 공급을 완료했다. 이곳은 단일 ESS 부지 기준 세계 최대 규모로, 약 22만500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저장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LG에너지솔루션의 ESS 배터리 신제품 'TR 1300' 랙이 공급됐다. 고성능 배터리 셀이 적용된 TR 1300은 최종 조립 단계인 '배터리 랙'을 2단으로 적재할 수 있어 공간 효율성은 높이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 밀도를 개선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특히 화재 관련 안전 표준도 충족했다. 글로벌 안전 인증회사인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이 공인한 ESS 열 폭주 화재 전이 안전성 시험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또한 배터리팩을 ESS 부지 현장에서 조립해 설치하던 기존 방식 대신, 이번에는 배터리 제조 공장에서 설치·조립을 완료한 후 출하해 ESS 현장 설치 시간과 비용도 줄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고도성장이 전망되는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ESS 부문 매출을 증대시켜 나갈 계획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전력용 ESS 시장 규모는 올해 1조8000억원 수준에서 2025년 8조8000억원 수준으로 5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 확대에 전력하고 있는 곳은 삼성SDI도 있다. 이미 전 세계 ESS 시장에서 삼성SDI의 점유율은 독보적이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19년 글로벌 ESS 시장에서 삼성SDI는 3.8GWh를 설치해 점유율 35%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6.2GWh를 기록하며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올해도 9.3GWh를 달성해 글로벌 시장점유율 32%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삼성SDI의 든든한 미국 시장 파트너는 테슬라다.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부터 테슬라에 ESS 배터리 공급을 시작했다. 테슬라의 올 1분기 ESS 설치량은 445MWh로 전년 동기 대비 71% 늘었다.
이보다 앞서 효성중공업은 지난 3월 17일 유럽에서 ‘대용량 ESS 첫 수주’ 축포를 터트렸다. 영국 최대 전력투자개발사인 다우닝(Downing)사와 영국 사우샘프턴 지역에 50MW급 규모의 대용량 ESS 공급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50MW급 ESS는 효성중공업이 그동안 해외 시장에 공급한 제품 중 최대 용량이다. 영국 전력 공기업인 내셔널 그리드사 송전망에 연결된다.
효성중공업은 전력변환장치(PCS), 배터리,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ESS 시스템 전체에 대한 설계·공급부터 설치 후 10년 간 유지·보수·관리에 이르는 ESS 시스템 종합 솔루션을 공급한다.
현재 ESS는 대용량 ESS가 전체 중 60%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유럽 각국의 친환경 정책에 따라 대용량 ESS 공급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효성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계약은 전력 산업의 본고장이자 글로벌 메이저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는 유럽 시장에서 자사 ESS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며 “이를 발판 삼아 전 세계 ESS 시장을 공략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ESS 관련 투자가 조용히 재개되는 모습이다. LG전자는 지난 2월 7일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 국내 최대 규모로 에너지저장장치(ESS)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KCH그룹, 한국서부발전, 탑솔라그룹이 만든 특수목적법인과 함께 신안군 안좌면 '안좌스마트팜앤쏠라씨티'에 단일 현장 기준으로 국내 최대 규모 ESS를 만든 것이다.
이 ESS는 전력변환장치(PCS) 용량 92메가와트(MW), 배터리 용량 340메가와트시(MWh)에 달한다. 우리나라 4인 가구의 월 평균 전력 소비량이 350킬로와트시(kWh)로, 가구당 매일 11.7kWh를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2만9000여 가구가 하루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배터리 용량이다.
LG전자는 PCS, 전력관리시스템(PMS), 배터리 등 ESS의 핵심 기술력을 토대로 제품뿐만 아니라 설계·시공에 이르는 ESS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특히 화재 등 안전 위험을 철저히 제어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번에 공급한 ESS는 LG전자의 PCS와 PMS,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LG전자가 배터리를 포함한 ESS 구성 요소 전부를 3년간 무상 보증한다. 또한 PCS, 배터리, 수배전반을 완전히 분리해 실내온도 및 성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ESS를 설계했다. 수배전반은 발전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해주는 장치다.
또한 24시간 모니터링·원격제어를 통해 특이상황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안전성을 위해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화재 확산 방지 시스템도 적용됐다. 만약 배터리에 화재가 나더라도 연기 감지기가 화재를 감지하고 해당 배터리 모듈 내에 물을 직접 주입해 확산을 차단한다.
LG전자는 △한국전력공사 신계룡 변전소 주파수 조정용 ESS △한국철강 창원공장 피크 저감용 ESS △환영철강 당진공장 피크 저감용 ESS △경주풍력 신재생 연계 ESS 등 국내 주요 사업을 연이어 성공적으로 구축해왔다.
안혁성 LG전자 ESS사업 담당 상무는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 편의성, 안전성을 모두 갖춘 ESS 토털 솔루션과 믿을 수 있는 사후 관리로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국내외 ESS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