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최찬욱 [사진=연합뉴스]
초·중등생 성 착취를 일삼은 최찬욱씨(26)가 범행에 첫발을 들인 건 5년 전 접한 '노예 놀이'다. 노예 놀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성행위를 하는 듯한 자세를 명령하면 이에 복종하는 식이다. 최씨는 SNS에서 호기심으로 시작한 노예 놀이가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남긴 뒤 검찰로 송치됐다. 하지만 수많은 피해자를 만든 노예 놀이는 최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최씨 구속 2주째인 29일에도 트위터 등 SNS에는 노예 놀이 대상을 물색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날 한 SNS 검색창에 노예 놀이와 관련된 몇 가지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하자 노예를 구한다는 글이 수시로 올라왔다. 한 이용자는 나이에 상관없이 노예를 찾고 있다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링크를 첨부했다. 오픈채팅방은 익명으로 채팅에 참여할 수 있어 익명성을 악용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해당 오픈채팅방에 입장하자 방장(방 관리자)은 지원서를 작성하라며 양식을 보냈다. 해당 양식에는 이름과 나이를 비롯해 메신저 아이디 등이 포함됐다. 심지어 주소란에는 동까지 적으라고 요구했다.
노예 놀이 관련 키워드를 조합해 검색하자 올라온 글 [사진=SNS 캡처]
지원서 단계가 끝이 아니다. 이들은 치밀하게 작성된 '노예 계약서'까지 들이민다. 한 이용자가 올린 노예 계약서를 보면 항목은 총 6개로 이뤄져 있다. 각 항목을 어길 경우엔 어떤 처벌이라도 감수해야 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이때 처벌은 노예 놀이와 관련해 주변 지인에게 알리거나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실제로 최씨는 SNS로 접근한 피해 남학생들에게 음란한 사진과 영상을 전송받은 뒤 피해자가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지인에게 유포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해 더 심한 영상을 찍도록 유도했다.
문제는 10대 청소년을 비롯해 초등학생도 SNS를 통해 노예 놀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씨가 노예 놀이를 처음 시작한 곳이라고 지목한 트위터는 13세 미만 이용자가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휴대폰 인증이 아닌 이메일만으로 본인인증이 이뤄져 실명과 나이를 속일 수 있는 구조다. 또 하나의 아이디만으로 여러 개의 계정을 만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가해자 한 명이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노예 놀이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에 피해를 보는 아동·청소년들은 매년 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공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와 동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 착취물을 제작하거나 불법 촬영을 하는 등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는 266명으로 전년(223명)보다 19.3% 증가했다.
또 이들 범죄자에 의해 피해를 본 아동·청소년은 모두 505명으로 전년(251명)보다 101.2% 급증했다. 보고서는 범죄자 수보다 피해자 수가 더 많은 것은 한 명의 범인이 다수의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범행하는 디지털 성범죄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씨에게 당한 피해자는 모두 67명이며 그의 휴대전화에는 200여명 가까운 피해 의심자 연락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는 아동·청소년들이 별도의 안전망 없이 성범죄에 쉽게 노출된 점을 들어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정혜원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그루밍 성범죄와 아동 청소년' 보고서에서 "영국은 아동 착취와 온라인 보호센터(CEOP)를 설립해 아동·청소년과 부모 등이 쉽게 (성범죄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한국형 온라인 아동·청소년 성 착취 방지 센터를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영국의 어린이 성 착취 온라인보호센터(CEOP) 홈페이지]
또 "아동·청소년은 성 착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위기에 처했더라도 위험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전문가 교육을 통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 착취 범죄에 대해 교육하고 대응 방법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 아동·청소년에게는 심리적·정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