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각예술 작가 5인이 도시의 다양한 모습을 시각 예술을 통해 표현한다. 주말을 맞아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감상하기 좋은 전시다.
기획전 ‘도시의 불빛 저편에(Beyond the City Lights)’가 오는 8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 지난 18일 개막한 이번 전시는 도시적 삶의 단면을 탐구하고, 인간이 여러 요소와 맺는 관계의 형태를 동시대 예술가들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1층에 전시된 ‘이사 그리고 이사’에서는 직접 찍었거나 온라인에서 발견한 이미지를 압축한 형태로 대체하면서 그러한 고민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작품의 일부인 시멘트와 철 파이프는 전시 이후 다른 곳에 재사용 될 수 있도록 작업했다. 조각화 된 이미지들은 서식지를 뺏기거나 강제로 이동해야 하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오래된 건물을 표현함으로써 도시의 사회적 현상을 포괄적으로 내포한다.
우연한 계기로 도시정비사업의 도로변 제초작업 현장을 목격하면서 제거된 풀을 수거해 온 작가는 그 중 썩지 않는 여러 씨앗과 원형 그대로 말라버리는 강아지풀을 발견한 후로 강아지풀을 작업의 주된 재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품 ‘찬란한 잔해’의 아크릴 상자는 도심을 빼곡히 채운 수직적 건물을 연상케 하며, 마치 도시의 밤이 화려한 색과 빛을 내뿜듯 그 안에 매달려 있는 버려진 강아지풀 더미가 아름다워 보이는 역설적 장면을 관람객에게 제시한다.
‘Treasure – The Seed Collection’은 우리 주변에 서식하는 이름 모를 들풀의 씨앗을 수집해 종자 병에 담은 작품으로, 인간의 가치 기준과 필요성에 의해 보호와 훼손의 대상을 구분하는 행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도시 경관을 위해 계속해서 제거되는 들풀이 세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도리어 ‘잠재적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다는 상상에서 비롯됐다.
송주형 작가는 현대 도시에서 발생하는 주거와 환경의 문제를 민감하게 살피고, 인간의 본성과 현대 사회의 부조리하고 모순된 현실에 대한 사유를 작품에 담아 왔다.
이상적인 자연의 이미지와 폐비닐을 결합한 작품 ‘流(류)’는 영상을 반사 또는 투과시킴으로써 현대인이 인식하는 자연관, 그럼에도 여전히 환경을 훼손하는 모순적인 현실을 드러낸다. 빛이 통과한 폐비닐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전달한다.
‘도시 숲’은 조립식 골조와 4개의 영상으로 이루어진 설치작업이다. 4개의 화면으로 분할된 영상은 도시와 자연의 이미지를 하나의 장면으로 구성하고, 조립과 해체가 쉬운 골조는 현대도시 속 임시로 유예된 삶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주거 환경을 상징한다. 이 두 작업은 문규철 작가의 음악 ‘Eroded Future’로 완성됐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찍은 영상을 많게는 5개까지 합성한 작업은 관객의 상상력을 깨운다.
전시장에서 만난 송 작가는 “이상향 같은 자연을 꿈꾸지만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연이 도시와 좀 더 어우러져서 이상적인 도시로 나아가자는 바람을 담았다”라며 “관객들이 이 공간에서 쉬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층에서 전시 중인 김혜정 작가는 상처받고 소외된 반려동물 이야기와 훼손된 자연환경 속에서 고통받는 동물을 주제로 한 섬세한 연필 드로잉 작업 20여 점, 그리고 만화영화 한 편을 선보인다.
작가는 과거 유기견 ‘자몽이’를 입양하면서부터 동물과 환경에 관한 사유를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작품에서 동물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그림 속 동물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전하는 듯 글귀가 더해진 그림을 통해 작가는 우리 주변에 살아가는 모든 동물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존재임을 일깨우고 그들과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이종혁 감독과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 ‘당신이 버린 개에 관한 이야기’는 2013년 제10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관객심사단상을 수상했다.
윤정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반려동물’(2008~2015) 연작과 ‘구(舊) 동물실험실’(2016) 연작을 선보인다. 도시에서 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일상의 공간에서 촬영한 ‘반려동물’ 연작은 작가의 반려견 ‘몽이’에서 시작하여 작가의 지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까지 대상이 확장되었다. 사람들이 함께 사는 동물은 강아지, 고양이, 친칠라, 이구아나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가족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보여주는 이 연작은 동물과 함께 사는 1인 가구가 점차 증가하는 사회적 현상을 드러낸다.
‘구(舊) 동물실험실’은 2016년 작가가 참여한 전시 장소 근처 건물들이 과거 동물실험실로 쓰였다는 사실을 듣고 촬영한 것으로, 인간 중심의 세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편익을 위해 착취된 동물들을 암시하는 이 작업은 ‘반려동물’의 사진들과 대조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극대화한다.
작가에게 작품에 관해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됐다. 김혜정, 윤정미 작가가 오는 7월 3일 오후 3시, 송주형, 엄아롱, 장용선 작가가 7월 17일 오후 2시에 금호미술관에서 관객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