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권 교체, 강경파 라이시 당선...이란 핵협정 영향은?

2021-06-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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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출신 라이시, 8월 취임...하메네이 후계자 거론도

이란핵협정 협상은 현 로하니 행정부에서 마무리할 듯

오는 8월 취임할 이란의 차기 대통령이 선거를 통해 정해졌다. 당초 예상에서 별다른 이변 없이 강경 보수파 정권이 8년 만에 복귀하는 가운데, 향후 이란과 중동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와 AP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이란 내무부는 전날 치러진 제8대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투쟁하는 성직자 연합(CCA)' 소속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가 61.9%(1792만6345표)를 얻어 당선했다고 발표했다.

강경 보수 성향의 성직자인 라이시 당선자는 2019년부터 사법부 수장을 역임해왔으며, 지난 2017년 대선에서 현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패배하기도 했다.
다만, 라이시 당선자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선거 초기부터 유력한 당선 후보로 꼽혀왔다.

이에 따라 향후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큰 이견없이 라이시의 대통령 당선을 최종 승인하고 올해 8월 중순 4년간의 1기 임기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대통령은 1회 연임이 가능하며 오는 2025년 다음 대선이 치러진다.

라이시 당선자에 뒤이어 2위를 차지한 후보는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 '이슬람혁명 저항전선(RFII)' 소속 모센 레자에이 후보는 341만2천712 표(약 11.8%)로 두 번째로 많은 표를 얻었다.

현 로하니 온건개발당(MDP) 정권의 중도 개혁 성향의 이을 후보로 꼽혀왔던 이란중앙은행장 출신의 건설관료회(ECP) 소속 압둘 나세르 헴마티의 득표율은 8.4%(242만7201표)에 그쳐 3위를 기록했다.

라이시는 당선 확정 후 취재진에게 "현 정부의 경험을 활용해 국가의 문제들을 푸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특히 민생 문제를 챙기겠다"고 소감을 밝혔으며, 로하니 대통령은 내무부의 발표 직후 라이시를 찾아 회담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19일(현지시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한 에브라힘 라이시.[사진=로이터·연합뉴스]

 
◇처음부터 김빠진 선거...이란인들, 실망감에 투표 안 했다

이번 대선은 전체 유권자 5931만307명 중 2893만3004명이 참여해 48.8%의 최종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치러진 대선 투표율 중 역대 최저치다.

이와 같이 낮은 투표율은 원리주의 이슬람 혁명을 주도하는 보수 강경 세력이 복귀한 것에 대한 이란 시민 사회의 실망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선거 초기부터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지지를 받고 있는 라이시의 당선이 거의 확정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특히, 현 로하니 행정부를 지지하는 시민들로부터 강경 보수 세력에 대항할 후보로 지목됐던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결국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김빠진 선거'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선거 기간 중 헴마티 후보는 자신이 자리프 장관과 정치적 입장이 일치하고 긴밀한 관계라는 것을 강조하는 한편, 신학 공부만 한 라이시 후보가 현재의 엄중한 경제·안보·외교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결국 큰 이변 없는 결과로 이번 대선은 끝났다.

아울러 이번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12.8%에 달하는 370만명이 무효표를 던진 것 역시 시민사회가 국자 지도층에 실망감을 피력한 의미로 풀이된다.

기존의 무효표 규모인 120만~150만표 수준을 크게 웃돌았을 뿐 아니라, 이번 선거의 무효표 대부분이 4명의 최종 후보 중 어느 쪽에도 표를 던지지 않은 항의 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지난 16일 공개 발언을 통해 "투표율이 저조할 경우 외국의 압박이 증대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시민들의 투표를 독려했음에도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란인들이 투표를 통한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잃었으며, 라이시 당선자는 낮은 투표율의 혜택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 대통령 선거 후보 TV 토론회에 참석한 압둘 나세르 헴마티 후보(왼쪽)와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사진=AP·연합뉴스]

 
◇하메네이의 뜻은?...'로하니, 핵협정 마무리-라이시, 최고지도자 승계'

현재 이란은 국내외적으로 중대한 전환 국면을 맞고 있는 상황이라 이번 대선의 결과는 향후 이란과 중동 정세의 향방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39년생으로 만 82세의 고령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건강이 최근 악화했다는 관측이 이어지면서 그의 후계 구도에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을 뿐 아니라, 미국의 복귀를 두고 이란핵협정(JCPOA) 개정 협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이터와 포린폴리시 등 일부 외신은 라이시의 대통령 당선이 하메네이를 계승할 가능성을 높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라이시 당선자는 신학교에서 하메네이를 사사한 제자이면서 동시에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권한을 갖는 기구인 국가지도자운영회의 부의장을 겸임하고 있기에,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꼽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하메네이 현 최고지도자 역시 지난 1981~1989년까지 2~3대 이란 대통령을 역임했기에, 그의 후계자 역시 이와 유사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라이시 당선자는 대표적인 안보 매파로서, 과거 판사로 재임 중이던 1988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사상에 반발하는 수천명 규모의 정치범 처형을 주도했다는 국제연합(UN·유엔)과 미국 등으로부터 인권 유린 혐의를 받고 있다.

국제 인권운동 단체인 앰네스티는 지난 2018년 보고서에서 당시 처형된 정치범의 규모를 약 5000명 수준으로 추산하면서 "기록된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비판했으며, 미국 행정부 역시 해당 혐의 등을 이유로 지난 2019년 라이시 개인에 대한 제재를 부과한 상태다.

한편, 국제 사회는 라이시의 당선이 현재 오스트리아 빈에서 진행 중인 이란핵협정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은 지난 2018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 시절 일방적으로 협정을 탈퇴한 후 이란에 대한 독자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이후 올해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란핵협정 복귀를 선언하고 지난 4월부터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현재 해당 협상에서 미국과 이란 양국은 각각 이란의 핵무기 재생산 과정 중지와 미국의 국제 제재 우선 해제를 요구하면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다만, 이란이 표면적으로는 국제 제재를 먼저 해제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핵협정 복귀를 반대하며 협상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엄포하곤 있지만,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본심은 결국 이란핵협정 개정에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국제제재로 국가 경제 상황이 극심한 상태로 몰리면서 이슬람 혁명 지도층과 강경 보수 세력에 대한 민심 이탈세가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란 국영 파르스통신과 포린폴리시 등은 자리프 장관 등을 인용해 현 로하니 이란 행정부가 오는 8월 퇴임하기 이전에 핵협정 개정 협상을 타결하고 자국에 대한 국제 제재를 완화하는 것이 하메네이의 뜻이라고 분석했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왼쪽)와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당선자(오른쪽).[사진=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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