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이준석 현상이 온다”…정치 효능감에 눈 뜬 MZ세대

2021-06-0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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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권에 도전하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지난 24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상인과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에 49개 당협이 있는데 그중에서 명시적으로 오세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활동한 당협은 3개밖에 없다. 우리는 처음으로 조직선거라는 공식에서 탈피하는 과정에 있다. 중진들이 캠프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젊은 층의 공간이 넓어졌다. 조직이나 원로의 힘 없이 처음으로 치르는 선거다. 만약에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그 과실도 젊은 세대가 갖게 될 것이다. 과실이란 게 어떤 자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이뤄내 본 경험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입한 사람이고, 대통령을 만들어 본 게 제 정치 이력의 큰 자부심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야권 단일화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3월 18일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을 맡고 있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청년들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야권 단일후보로 만들려고 하는 중진들의 압박이 거셀 때였다. 반(反)김종인을 기치로 한 중진들이 당 밖의 안 대표를 중심으로 뭉쳐 당권을 노렸던 것이다. 기존 정치인들의 낡은 정치 문법에 대한 비판과 세대교체의 필요성, 이를 통한 젊은 세대의 정치 효능감을 언급한 그는 이미 두 달 전 ‘이준석 현상’을 예상했던 것 같다. 보수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불고 있는 이준석 돌풍을 분석해봤다.

◆여론조사 1위··· 후원금 돌풍으로 입증된 ‘대세론’

국민의힘 6‧11 전당대회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이준석 후보의 기세가 무섭다. 30대 ‘0선’ 이 후보가 보수정당에 불러일으킨 바람에 보수 정치권은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 진보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후보는 4·5선의 쟁쟁한 중진 정치인들을 제치고 민심, 당심, 지역, 연령 등 전 부문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31일 발표한 국민의힘 당 대표 적합도(28~29일 조사, 그 밖의 자세한 사항은 여심위 홈페이지 참조)에 따르면 이 후보는 39.8%의 지지로 나경원 후보(17.0%), 주호영 후보(3.4%) 등을 크게 앞섰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를 지적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있지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만 50.1%를 얻어 29.5%에 그친 나 후보를 앞섰다.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은 대구‧경북에서 38.9%, 부산‧울산‧경남에서도 39.5%의 지지를 받고 있다.

지지율 증가 흐름도 뚜렷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PNR의 정례조사(머니투데이 의뢰)에 따르면, 지난 9일 13.9%였던 이 후보 지지율은 20.4%(16일)→26.8%(22일)→40.7%(29일)로 뛰었다. 반면 나 후보는 18.5%→15.5%→19.9%→19.5%로 보합세, 주 후보는 11.9%→12.2%→9.5%→8.5%로 약보합세를 보였다. ‘이준석 돌풍’이 대세론으로 굳어져 가는 형국이다.

당 대표 경선 후원금은 사흘 만에 한도액인 1억5000만원을 채웠다. 2000명이 넘는 후원자가 전액 세액공제가 되는 10만원 이하의 후원을 했다. 그간 보수 정치권에선 볼 수가 없었던 ‘소액 다수’ 후원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젊은 세대가 자주 이용하는 커뮤니티엔 ‘후원 인증글’이 줄지어 올라왔다. 후원을 넘어 대선 투표권 행사를 위해 국민의힘에 입당하는 젊은 층도 나타나고 있다. ‘이준석 현상’이 단순히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수치가 아닌, 실질적인 변화로 입증된 셈이다.

◆주류 정치권에 대한 반발··· 변화 열망 투사

전문가들은 ‘이준석 현상’에 대해 대체로 비슷한 분석을 하고 있다. 그동안 주류 정치권이 보여준 신뢰받지 못할 모습, 이에 대한 변화의 욕망이 ‘정치인 이준석’을 통해 분출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 변화를 추동한 것이 한국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배제됐던 2030의 목소리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우리가 나서면 바꿀 수 있다”는 정치 효능감을 체험한 이들이 앞장서 이준석 현상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변화를 바라는 민심이 투영됐다는 말이 맞는다. 그런데 왜 변화를 바라게 됐느냐”며 “기존 정치권, 기득권 계층에 대한 반발인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또 “현 정권 들어서 집권세력이 모든 걸 자기들 마음대로 다 하면서 정치가 없어졌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정치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들을 하는 것”이라면서 “이 후보를 적임자로 보는 현상이다”고 했다.

이 후보는 지난 서울시장 보선 당시 오세훈 후보의 유세차에 올라 연설했던 청년들의 예를 자주 언급한다. 선거 초반부터 주류 정치인들이 오 후보가 아닌 당 밖의 안철수 후보를 지원했고, 그 주류 정치인들의 빈자리만큼 오세훈 캠프 안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는 것. 그 공간에서 젊은 세대가 ‘V-서울’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청년들의 유세차 연설이다. 통상의 선거에선 중진 정치인들이 선수별로 차례로 유세차에 올라 지원 연설을 하는데, 중진 정치인의 빈자리를 청년들이 채웠다. 그렇게 올라선 청년들의 연설은 유튜브 조회수 50만~100만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바람을 일으켰다. 중진 정치인들의 연설은 많아야 1000회 남짓,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체감한 ‘변화’인 셈이다.

이 후보는 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주류 정치인들이 가볍게 대응한 것이 오히려 ‘이준석 현상’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 사람들(주류 정치인)이 민심과 대세를 읽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과거로 회귀하려고 했던 본능이 오히려 역작용을 크게 불러온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초기의 바람을 가볍게 본 사람들, 경험과 경륜이란 말로 될 줄 알았던 사람들의 가벼운 대응이 이런 현상을 초래했다”고 했다.

◆4선‧5선 ‘압도하는’ 좀 모자란 동네형

시대적 요구가 있다고 해서 아무나 그 변화의 중심에 설 수는 없다. ‘이준석 현상’의 중심엔 이준석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있다. 서울과학고를 조기에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수재. 26세의 젊은 나이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보수정당의 혁신위원장 및 최고위원 등을 여러 차례 역임한 엘리트지만, 이준석이라고 하면 덥수룩한 머리와 킥보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서울시장 보선 당일 캠프 한구석 컴퓨터에서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젊은 층들은 “좀 모자란 동네 형 같다”고 열광한다. ‘어렵지 않고 친근하다’는 얘기다.

토론이나 방송에 나가선 거침이 없다. 민주당, 국민의힘 가리지 않고 할 말은 한다. 4선·5선 중진들이 프레임을 걸면, 기발하게 되받아친다. 나 후보가 “이번 당 대표는 사실은 멋지고 예쁜 스포츠카를 끌고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정말 짐을 잔뜩 실은 화물트럭을 끌고 좁은 골목길을 가야 된다”고 경륜 부족을 지적하자, 이 후보는 “제가 올 초에 주문 넣은 차는 전기차”라며 “깨끗하고, 경쾌하고, 짐이 아닌 사람을 많이 태울 수 있고, 내 권력을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겠다”고 맞받았다. 주 후보와의 팔공산 논쟁, 서울시장 보선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를 겨냥한 ‘야스쿠니 뷰’ 논란 등 현상과 맞닿아 있는 그의 비유에 젊은 층은 한층 더 열광한다. 윗세대에 눌린 자신들의 모습을 이준석에 투사하는지도 모르겠다.

정치 철학은 단단하다. 이른바 ‘공정한 경쟁’이다. 성별, 지역, 연령 등 대부분의 할당제에 반대하는 그는 공정하게 설계된 경쟁을 통해 누구나 능력에 맞게 대우받는 세상을 꿈꾼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비판도 있지만, 평일 낮 시간대에 여의도에 올 수 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할당’의 기회보다는 더 공정할 것이란 게 그의 판단이다.

2030 남성들의 젠더 편향성에 편승, 혐오 정서를 부채질한다는 비판도 있다. 이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모인 청년들의 지지가 건강한 방향으로 표출되지 않으면, 그게 잘못되면 유럽식 극우정당 모델로 가는 거다. 그 힘을 끌어갈 수 있을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고민은 충분해 보인다. 당분간은 그가 일으키고 있는 변화에 더 주목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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