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석은 ‘톨스토이와 나의 신앙은 비정통으로 이단’이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여러 신학자들과 학생들이 다석 사상으로 학위 논문을 쓰거나 저서를 냈습니다. 참으로 고맙고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최근에 아주경제 곽영길 회장의 유튜브의 금요명상과 이상국 논설실장이 다석의 생애와 사상을 100회나 연재한 것은 한얼님의 깊은 뜻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믿습니다. 새벽 3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감사하였습니다. 다석 사상에 관심이 있는 것은 예수님의 진리사상을 기뻐함이요, 그것은 곧 한얼님을 공경함이 아니겠습니까. 이 사람은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다석은 한 권의 저서도 펴낸 일이 없습니다. 저작으로 남긴 것은 1955년 4월부터 1974년 7월까지의 일기뿐입니다. 김흥호 교수가 <다석일지> 영인본을 출간하였습니다. 그 일기를 읽어보면 일이관지(一以貫之)로 한얼님 사랑입니다. 다석의 한얼님 사랑은 자신의 생명(제나)을 버리고 피붙이의 사랑을 넘어선 거룩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석은 예수님을 언니 예수님이라고 부를 자격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석은 우리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짐승으로 태어나서 짐승 노릇으로 살다가 정신을 차리고 명상 기도 끝에 한얼님으로부터 한얼님의 생명인 얼(성령)을 받아 얼나로 솟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얼나는 한얼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는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마태 23:9)라고 말했습니다.
속죄는 제나에서 얼나로 솟나면 저절로 되는 것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대속을 받는다는 것은 모자란 생각입니다. 다석 사상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예수의 진리 정신을 바울이 미신화한 교의(사도신경)로 가리어 놓은 것을 걷어치우는 것입니다. 미국 성공회의 주교인 존 셀비스퐁은 자신이 사도신경으로 만들어진 세계관으로부터 유배당한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굶어 죽는 일이 있더라도 유배 생활을 하지 말 일이 아니겠는가? 예수는 한얼님으로부터 얼(성령)을 받아 제나로 죽고 얼나로 한얼님 아들이 되라고 가르치고 본을 보였지 않습니까? 어찌하여 자칭 사도인 바울이 미신화한 교의에 걸려 바울의 정신적인 노예 노릇을 한단 말입니까? 바울의 도그마(교의)를 좇는 선봉장이었던 아나타시우스에 의해 예수의 가르침이 이단 사상이 되었습니다. 다석 사상을 공부하는 것은 이 잘못을 바로잡는 바른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다석은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그를 쳐다보는 것은 그의 몸을 보고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내 맘속에 있는 속알 곧 한얼님의 씨(얼나)가 참생명임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므로 먼저 내 맘속에 있는 속알(얼나)을 따라야 한다. 그 속알(얼나)이 예수의 참생명(영생)이요 나의 참나(얼나)다. 몸으로는 예수의 몸도 내 몸과 같이 죽을 껍데기이지 별 수 없다. 예수의 몸이 살아나 돌아다니다가 하늘로 올라간 것을 믿자는 것도 멸망이다.’ (류영모 <다석강의>)
우리 아는 예수
아바 아들 얼김(얼나)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높낮(上下) 잘못(善惡) 살죽(生死) ㅣ(이) 가운데를
ㅣ(얼나) 솟아오를 길 있음을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참을 믿은 이, 말씀을 믿은이
한얼님 뜻 계심 믿은 이
없이 계시는 한얼님 믿은 이
예수는 믿은 이
(류영모 다석일지, 박영호 일부 개필)
다석 사상을 공부하고자 하는 이에게 얼마나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얼마나 철저하게 거짓 나인 제나(ego)를 누르며 한얼님의 뜻을 받들어 얼나로 솟나느냐에 있습니다. 다석 사상을 지식으로 많이 아는 것이 나쁠 것은 없지만 제나(ego)가 살아있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참과 멀기 때문입니다.”
-다석과 함석헌 김흥호 박영호 선생 간에 사상적 변별성이 있습니까? 특히 김흥호 선생과 박영호 선생 계열의 제자들 간에 시각 차이가 있던데요?
“함석헌 선생의 종교사상에 대해서는 별로 말할 것이 없다고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잡지 사상계(思想界)에서 윤형중 신부와의 논쟁은 사상적으로 깊이 있는 토론이 없었습니다.
김흥호 교수는 다석이 기독교 영역 안에 있어 이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내가 느끼고 있었습니다. 정양모 교수가 다석은 기독교 영역을 훨씬 벗어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을 이 사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 교수들이 논문에 나의 저서에서 인용하기를 조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경애하느냐 안 하느냐로 따진다면 김흥호 교수 주장이 옳습니다. 다석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경애한 분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석일지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짧은 글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뉘(누리)를 가장 성언케 건넨 이
두루 먹힐 살 아니곤 벌려놓질 말 일이옵
가리어요 막으어요 따로 따로 성글 멀찍이
빛월을 웬통 살핀인 뚝 떨어진 이 아름답
우리님 예수 모름지기 밑듬 마음속 가득히
(류영모 다석일지 1972.11.21.)
[ 註 ]
-성언: 순결하고 어질게
-건넨 이: 살아간 이
-살: 몸뚱이
-성글: 드믄 드믄
-빛월: 한얼님을 영광되게 함
-밑듬: 한얼님께서 주신 얼 생명(성령)
그 먼저 예수와 기독교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내가 오강남 교수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교수가 저서 <예수는 없다>를 출판사에 넘길 때는 <교회에 예수는 없다>였는데 출판사에서 교회라는 말을 빼자고 해서 <예수는 없다>라는 모호한 제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강남 교수는 교회에는 예수가 없다고 말하는데 다석이 교회 울타리 안에 있다면 예수와 다석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다석이 교회 경계선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를 논의해 본 적이 없습니다. 자신의 위치를 보호하려는 생각으로 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물을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도 미션스쿨에서 교직을 가졌다면 그렇게 처신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김흥호 교수가 지금은 이 세상에 안 계시니까 마음 놓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사에 AD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있었습니다. 로마교황 콘스탄티누스 2세가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개최해 니케아 공의회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기독교가 두 파로 갈라져 있는데 두 교파를 통일시켜 로마 제국의 안전을 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리우스가 대표하는 아리우스파 기독교와 아나타시우스가 대표하는 아나타시우스파 기독교가 그것입니다. 약 350명 주교가 모여 두 대표가 토론을 한 뒤에 찬반을 헤아려보니 아리우스 일파는 아나타시우스파에 의해 여지없이 배척되고 파문을 당하였습니다. 이 공의회에서 사도신경이 성문화해 니케아 신경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해볼 때 아리우스파가 예수의 얼나의 깨달음 신앙이고 아타나시우스파가 바울의 제나(ego)의 속죄신앙입니다. 그동안 예수신앙과 바울신앙이 갈라져 내려왔는데 바울 쪽 속죄신앙이 정통이 되고 예수 쪽 영성신앙이 이단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직제자들에게 사도(예수의 제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였으면서도 뻔뻔스럽게 자칭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라고 한 글을 바울로 고쳐야 합니다. 사도신경은 곧 바울신경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어보면 다른 진짜 예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는 조금 나오고 바울 얘기만 나오는 바울행전입니다. 로마 쪽에는 예수의 영성 신앙인들보다 바울의 대속 신앙인이 많습니다. 바울이 힘들여 전도한 곳이 그 쪽이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더 대주교 아나타시우스가 니케아 공의회 43년 뒤인 AD 367년에 예수의 영성신앙의 경전인 영지문서 소각 명령을 내려 다 불태워 버리게 되었습니다. 바라새인들이 로마 총독의 힘을 빌려 예수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는데 바울은 예수 진리 정신이 담긴 경전을 불태워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파코미우스 수사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도마복음서를 항아리에 넣어 밀봉하여 땅 속에 파묻었습니다. 그 도마복음서가 땅속에 묻힌 지 1600년 지난 1945년에 우연히 햇빛을 보게 되어 우리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오신 듯 반갑고 기쁩니다. 얼이신 예수님은 우리 마음속에 늘 함께 하지만요. 도마복음서는 사도신경의 내용을 뒷받침한 말씀은 한마디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나타시우스가 불태우려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르친 것이 아닌 다른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 저주를 했습니다. 그런 바울신경을 오늘날까지 교회에서 암송을 하고 있으니 이것이 예수님을 위하는 길이 되겠습니까.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조태연 교수의 생각을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기독교 교회 특히 개신교가 그동안 바울의 그 케리그마적(선언적) 복음만을 기독교 신앙의 전부로 생각하였다면 그것은 신학적 편견에 해당한다. 케리그마적 사건에 대한 믿음만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배타적 신앙은 기독교인을 대화할 줄 모르는 독선적 신앙인으로 양산하기에 알맞았다. 특히 교회가 바울의 전통을 잘못 이해하여 관념적 믿음만을 강조하다 보니 실천은 없고 자기 주장만 강한 기독교인들을 길러내었다.
하나의 새로운 가능성이 기독교 기원 곧 예수운동의 탐구를 통하여 현실화할 수 있다. 신약성서를 보면 바울은 예수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버린 체(고후 5:16) 오직 예수의 생사만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복음서의 예수는 한얼님 나라의 비전을 보인다. 바울의 편지들이 교회 이야기라면 복음서(예수전승)는 전적으로 예수의 이야기이다. 바울이 50년대 초반부터 이의 문서 활동에 들어갔음에 비하여 첫 복음으로 알려진 마가복음은 그로부터 20여 년 늦은 AD 70년경에 나온 책이다. AD 30년경의 역사적 예수는 바울보다도 그렇게 늦게서야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일까? 신약성서와 그 기간의 초기 기독교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무어라 대답하는가?
1) 시간적으로 역사적 예수와 마가복음 사이의 그 잊혀진 40년 동안 그러니까 바울과 동시대 또는 그 이전에도 예수의 목소리를 되뇌이며 그의 행적을 재연하던 신앙 공동체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주 최근의 신약학 동향을 따라 전자는 헬레니즘 세계에서 자리를 잡은 바울의 기독교와는 무관하게 그러나 대략 그와 동시대에 예수의 육성과 행위를 직접적으로 계승한 바로 그 공동체들을 가리켜 “예수운동”이라 부른다.
2) 그들은 지리적으로 갈릴리와 팔레스타인 지역에 존재하였던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원류(源流)다.
3) 그들은 무엇보다도 예수에 대한 역사적 관심을 버린 헬레니즘적 기독교와과 달리 예수 이후 마가복음이 출현하기까지 예수 전승을 간직하였던 공동체들이다. (일부 줄임) 물론 예수운동의 탐구와 기독교 기원의 규명이 기독교인들에게는 큰 충격과 당혹의 경험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할 때(갈라디아 1:6~10) 예수운동은 현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신앙의 전부로 치부해오던 그 케리그마적 복음(사도신경)과 전혀 다른 복음(도마복음서 등)을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부로 치부해오던 그 케리그마적 사건에 대하여 예수운동은 하나같이 절대적으로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일부 줄임) 단지 바울의 복음과 다르다는 이유로 예수운동의 탐구는 그만두어야 할까? 신약의 복음서들이 가장 귀한 자료로 사용한 바로 그 예수의 전승들과 그 배후의 예수운동을 기독교인들이 정죄할 수 있을까?’ (조태연 ‘기독교의 배타성을 넘어서’)
다석은 바울신앙의 교의(敎義·Dogma)인 사도신경을 깨끗이 부정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사도신경을 졸졸 외우는데 그것을 외운다고 우리의 정신생명이 자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사도신경을 외우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예수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것을 믿으면 속죄를 받아 이 몸도 영생한다고 하는 것은 나와 상관이 없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자는 것도 멸망이다. (류영모, <다석어록>)
다음에는 샤머니즘과 기독교와의 관계를 따져보겠습니다. 안양교회 목사로 시무한 설삼용 목사의 생각을 참고하고자 합니다. 솔직한 판단과 말씀이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옛 사람들의 중요한 종교행위로는 복(福)을 받고 화(禍)를 피하기 위하여 천지신명을 비롯해 여러 우상신에게 비는 것이었다. 이러한 샤머니즘적인 신앙은 사람의 도덕정신을 억압하고 인격적 성품을 저하시켜 공포심을 일으킨다. 러시아의 벤자로프는 시베리아와 몽골 등지의 샤머니즘에서 샤먼(무당)의 기능은 제사를 올리고 질병을 고치고 복점으로 예언을 하는 것이라 하였다. 한국의 샤먼들은 이 세 가지에 노래와 춤이 곁들어진다. 공교롭게도 이 4가지 기능은 기독교와 일치한다. 이 일차성 때문에 기독교는 쉽게 낯선 이 땅에서도 쉽게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를 샤머니즘적인 기독교라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샤머니즘적인 스타일을 모방하는 교회는 크게 부흥한다. 한국인은 질병, 사고 등 재난을 만나면 이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기도를 한다. 그런데 그 기도가 다분히 샤머니즘적이다. 가정심방이나 안수기도하는 교직자들이 샤먼 역할을 해주기를 신도들로부터 요청을 받는다. 한국 기독청년들 여론조사에서 목사들의 목회하는 식이 기독교가 아니라 샤머니즘에 속한다고 확인하였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샤머니즘 정신이 수천 년 동안 뿌리를 내려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외래종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샤머니즘의 옷을 갈아입고 살아왔다. 이와 같은 우리 민족성을 재빨리 알아차린 목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샤먼이 되어버렸다. 여기저기로 돌아다니며 안수기도를 하고 신령한 듯한 언어를 지껄인다. 이 나라에서는 목사가 샤먼(무당)이 된 것을 성령 충만으로 오해를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성령 충만한 이와 열광적인 샤먼을 혼동한다. 목사들은 성경을 거의 쓰지 않고 축복의 조건으로 거액의 금품을 요구한다. 더 열광적인 샤먼 교무자들에게 더 많은 교인들의 노래와 댄스판이 벌어져 그야말로 구경거리 굿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설삼용 <샤머니즘>)
옛날 시골 마을에서는 이러한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식을 여럿 길러낸 어머니는 반의사가 되든지 반무당이 된다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독교를 두고 다석이 바울의 기독교 안에 계시느니 밖에 계시느냐 논의를 벌이는 것이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다석이 분명하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요새 부끄러워서 예수 믿는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단이라고 해서 안 믿는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좋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믿는다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믿는다면 무슨 외래(外來)의 무당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몇 십년 전에는 예수를 믿었고 교회에도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요새 사람들이 나를 보고 ‘당신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래서 나도 보통 이 세상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믿는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다. 그러면 요새 여러분들이 내 말을 듣고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무슨 기독교 신자일까 라고 하면서 참 답답해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나는 예수를 안 믿는다, 무종교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가볍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류영모 <다석어록>)
다석은 제나로 죽고 얼나로 솟나 그 얼나의 뜻에 따라 삶을 결정하는 자율적인 신앙인이십니다. 이 땅의 누구의 말을 믿고 좇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정통신앙이라한다고 좋아하신 이도 아니고 이단신앙이라고 한다고 싫어하실 이도 아닙니다. ‘톨스토이나 나는 이단(異端)신앙’이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다석은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는 태도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대접과 공경은 서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대접이란 고이는 것이고 공경이란 높이는 것인데 고이면 높아지고 높아지면 고여야 한다. 공경이 없는 대접은 쓸데없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맘으로 고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하면 고인다. 그것은 이용이지 공경이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실정은 먹을 것을 많이 갖다 놓는 것이 공경인 줄 아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많이 먹여 배탈 나게 하는 것은 공경도 대립도 아니다. 가축으로 대접하는 것밖에 안 된다. 참으로 공경하고 대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계시는 한얼님 아들인 얼나를 알아주는 것이며 또한 내 맘 속에 모신 한얼님 아들이 얼나를 드러내는 것이다.’ (류영모 <다석강의>)”
-다석의 언어는 독창적인 조어가 많아서 무척 어렵습니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학자들의 연구에도 장애물이 되는데요. 학계에서도 박영호 선생이 만드는 다석 낱말사전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잘 진척되고 있는지요?
“사람 사이의 생각을 소통케 하는 것이 말과 글인데 말과 글로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전체요 절대인 빔, 얼이 그것입니다. 빔, 얼은 사람의 생각조차 초월해 있는 한얼님이십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방>이니 <할>이니 하면서 상대방을 치고 고함을 치기도 한답니다. 아무리 궁여지책이라 하지만 쓸데없는 짓이라 하겠습니다. 어떤 이는 사고로 가까운 한 집안이 몰살하는 것을 보고는 정신이 깨어났다고 합니다. 다석이 어려운 글자를 만들고 어려운 말을 쓰고 죽는 예정일을 잡고 불의에 낙상을 하여 여러 날 의식불명이 된 것도 답답한 중생씨알을 깨우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다석 사상 연구에 바쳤다 할 이 사람도 어떤 말은 도무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해 헤맵니다. 지금 반 정도는 하였습니다. 한 해는 걸릴 것 같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꼭 다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석이 전북 완주군 용흥사 절터(임야 4만여평, 대지 300여평)를 사서 동광원에 기증했습니다. 사리사욕이 없고 언행이 일치하는 분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 한두 가지 아닙니다. 기증받은 김준호님이 천주교에 넘겨 류영모 기념실이 남아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람의 한 살이는 경주와 같습니다. 응애 하고 기 통하는 울음과 함께 시작된 삶은 숨이 깔딱 끊어지는 것으로 끝이 나는 일생입니다. 삶의 경주는 쉬나 일하나 자나 깨나 멈춤 없이 달립니다. 저 죽음의 골인 지점을 향하여 달립니다. 다석은 1890년 3월 13일에 태어나 1981년 2월 3일 돌아가셨습니다. 다석은 어떤 생각으로 한 살이라는 경주를 하시었는지 그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은 좋다고 하는데 이 세상을 그만두고 가는 것은 싫다고 한다. 나온 것은 좋다(吉)하고 돌아가는 것은 나쁘다(흉)고 한다. 마칠 것을 마치고 돌아가자는 것이(知終終之) 대학의 정신이다. 이 세상에서 바로 살 줄 알고 한얼님의 말씀을 아는 사람은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그리고 기쁜 것인지 슬픈 것인지 잘 모르고 산다. 죽는 것이야 말로 축하할 일인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산다. 나는 모름지기 이 세상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흔(70)살에 가깝다. 일흔이라는 말뜻은 인생을 잊는(忘)다는 뜻으로 본다. 그래서 내게는 이 세상에 좀더 살았으면 하는 생각은 없다. 죽음이란 줄 것을 다 주고 꼭 마감을 하고 끝내는 것이다. 줄 것을 다 주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죽음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모은 돈을 주고 아는 것이 있는 사람은 아는 지식을 주고 그래서 줄 것을 다 주면 끝을 꽉 맺는다.’ (류영모 <다석강의>)
맏아들(류의상)이 미국 이민을 갈 때 다석은 소유한 부동산을 팔아서 주었습니다. 아들은 집에서 쓰라고 일부를 떼어놓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동광원 김준호님이 전북 완주군에 용흥사 절터와 임야 매물이 나왔으니 사주면 동광원 수녀들을 데리고 가서 자활봉사를 할 수 있겠습니다 하고 간청을 하자 동광원 공동체를 좋게 본 다석이 그 땅을 사준 것입니다. 김준호 님이 그 곳에 가서 수녀들이 지내는 것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장애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을 짓고 운영하는데 자금이 더 필요하게 되니 평소에 피정도 하고 가까이 지내던 가톨릭 전북교구에 귀속시켰습니다. 지금도 가톨릭 전북교구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자 광주 동광원에서 동광원 분원이 가톨릭 전북교구로 넘어간 것은 김준호 분원장이 다석의 뜻을 거스르고 동광원을 배신한 것이라고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동광원 사람들이 다석의 유족들에게 전주교구에 넘어간 부동산을 도로 찾아달라고 조르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은 아버님께서 하신 일이라 자신들은 모른다고 하면서 다석사상연구회에 이야기해보라고 하였나 봅니다. 그래서 나에게 동광원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나는 ‘다석이 자신의 생명까지도 한얼님의 것이라고 생각한 분인데 자기 소유 땅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으리니 그곳에서 수녀들이 장애인을 돌보고 있다니 좋게 생각하실 것이 분명하므로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지 맙시다’라고 타일러서 좋게 끝나게 된 것입니다. 다석 기념실은 헛간에 간판만 걸어놓고 책 몇 권 비치해 놓은 것입니다.”
-이승만 정권이 말로로 치달을 때 다석은 “정치는 아파하는 민중을 위해서 의사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요즘 정치인들도 새겨들어야 할 말 같은데요?
“예수님 때 유대 나라는 로마 총독이 다스리는 식민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말 조심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입에서 나오는 나라는 한얼님의 나라(Kingdom)였습니다. 다석은 땅의 나라에서 유토피아가 이루어지는 일은 바라지 말라고 하면서도 땅의 나라에 민주국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것이 이웃사랑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국가(國家)라는 말은 틀렸다. 국가라 하면 으레 집가(家)자가 붙어다닌다. 우리나라가 망한 것은 가족주의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제 집안만 생각하고 나라까지는 가지도 못한 것이 아닌가? 나는 집가(家)자 대신에 차라리 사방천하(四方天下)라는 모방(方)자를 써서 나라를 국방(國方)이라고 했으면 한다. 일본 나라가 쓰던 국가라는 말을 우리가 따라 쓸 필요는 없다. 이 나라의 학생들은 국방의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 큰 돌은 큰 대로 작은 돌은 작은 대로 무슨 돌이나 다 쓴다. 이 나라의 젊은이들에게 국방초석의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남을 지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겠다는 정신을 가르쳐야 한다. 국가라는 말이 좋지 않듯이 민족이란 말도 틀렸다. 민체(民體)라는 말이 좋겠다. 체는 커다란 유기체 또는 공동체라는 뜻이다. 민체는 피가 깨끗해야 한다. 민체혈청(民體血淸)을 배워야 한다. 교육은 국방초석과 민체혈청을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말하였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한얼님께서 드리워주시는 얼로 솟나지 못하면 한얼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몸이 어버이에게만 몸나는 멸망한 몸나요 한얼님께서 드리워주시는 얼로 솟나지 못하면 한얼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어버이에게서 난 몸나는 멸망할 몸나요 얼이신 한얼님으로부터 난 얼나는 죽지 않으니 내가 네게 얼나로 솟나야 한다는 말을 이상하게 듣지마라.’(요한 3:5~7) '우리나라 지도자 가운데 몇 사람이나 얼나로 솟났는지 모르겠다. 나라에 얼나로 솟난 이가 없으면 안 된다. 얼나로 솟나 한얼님과 얼로 이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몸나의 수성(獸性)의 욕망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엄청난 욕심만 가졌기 때문에 이 나라가 아직도 이렇다.’(류영모 <다석어록>)
공(公)이란 글자는 厶(私)를 皮(破)했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공무를 맡을 자격이 있는 이는 사를 온전히 깨트릴(破私) 이라야 합니다. 학교 졸업장만 가지고 공무원 자격을 주는 것은 잘못입니다. 제나(ego)를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은 한얼님이 주신 얼나 뿐입니다. 다석 사상과 같은 귀중한 사상을 이 나라에 두고도 젊은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게으른 탓인지 무지한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석을 왜 위대한 종교사상가라고 생각하는지요?
“이렇게 대답하면 황호택 선생(인터뷰어)를 곤혹스럽게 하는 말이 될 것 같아 저어합니다만 나는 다석을 위대한 종교사상가로 생각하지도 않고 말한 바도 없습니다. 다만 다석을 사람 노릇한 참 사람으로 스승 자격을 가지신 이로 모시고 지내왔습니다. 문화일보 이규행 회장이 나에게 다석의 동상을 세우자고 제안하였을 때 부디 그러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어느 위대한 이는 2만 개도 넘는 동상을 세웠다지만 우리 다석은 그러한 위대한 인물이 결코 아닙니다. 늙어 힘든 일을 못하게 되었을 때 다석님은 집 안팎을 빗자루질 걸레질하며 청소를 하였습니다. 다석이 지향한 것은 아가페(agape) 사랑이었습니다.
‘영원한 한얼님 아버지를 드러내는데 대표할만한 한얼님 아들인 예수도 참으로 홀로 산 사람이다. 예수님은 대자연처럼 아무 말없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었다. 혼인하지 않고 혼자 살아 온전한 사람 노릇을 했다. 공자의 인(仁)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독신성인(獨身成仁)이것이다. 그리스어로 사랑을 아가페라고 하는데 아가폐(我可蔽)이다. 제나(ego)를 버려야 참사랑이 나온다.’ (류영모 <다석어록>)”
-다석의 언어를 박 선생 나름으로 달리 표현하여 확정시킨 개념이 있는지요?
“생각나지 않습니다. 아마 없을 것입니다. 다석은 한얼님께 이름을 붙이는 일은 아주 불경스런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상대적 존재는 수가 많아 어쩔 수 없이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지만 한얼님은 한 분 밖에 안 계시기 때문에 상대적 존재처럼 이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황공스럽게 상대적 존재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닌데 있는 것으로 가정하게 되니 한얼님은 상대적 존재가 아닌 것을 가리기 위해서 이름이 필요하게 됩니다.
한얼님께서 이 우주에 한 존재뿐이어서 하나님이라고 불려왔습니다. 하나는 상대세계의 하나도 있어 그 때문에 마음에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땅에서는 가장 높고 큰 푸른 하늘의 하느님을 쓰기도 합니다. 다석은 15살부터 교회를 다녀서 하나님을 썼습니다. 자율적인 신앙인이 되어서는 교회 다니는 신도들과는 다르게 하고 싶어 한아님 한울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도 스승님을 좇아서 한아님(ᄒᆞᆫᄋᆞ님) 한웋님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한얼님이라 쓰기로 했습니다. 한얼님은 우주 허공에 충만한 한얼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맘속에 얼나는 한얼님으로 보내진 한긋의 긋얼이라는 뜻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아직도 다석에 관해 더 쓰고 싶은 책이 있는지요?
”혼자서 너무 많이 썼지요. 아주경제 이상국 실장의 100회 연재를 읽어보고는 마음을 놓았습니다. 한얼님께서 길러놓으신 인재들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인재라고는 없던 곳에 다석 스승도 태어나시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이 한 10년만 젊다면 다석일지에 실려있는 일천삼백여 수의 한시 풀이를 한두 권만 더 하고 싶습니다. 김흥호 교수가 애써서 한 벌 해놓은 것이 있습니다. 아쉬운 대로 참고할 수 있습니다만 주마간산(走馬看山)의 아쉬움이 있는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고전과 함께하면서 풀이하는 본인의 영적인 체감도 반영하여 한얼님의 말없는 말을 돌려드릴 수 있다면 글 쓰는 이도 글 읽는 이도 기쁨이 넘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문에 박식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다석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는 작은 체구에 약골로 태어나 사춘기 후반에 늑막염을 앓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아흔 살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랍니다. 지금도 이 정도로 글도 쓰고 있습니다. 물론 젊을 때보다는 오자 탈자가 많습니다. 스스로도 내가 많이 늙은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건강비결은 다석 스승님의 가르침을 좇았습니다. 1일 1식은 못하여도 절대 과식하지 않고 걸어 다니고 구릉인 낮은 산에 산책을 날마다 합니다. 그리고 어떤 모욕이나 비난에도 분노하지 않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기로 애씁니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한얼님의 얼을 품고 기쁨으로 지냅니다. 아멘.”<인터뷰어=황호택 논설고문·정리=이주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