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에 따라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양만큼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실질적 배출량을 ‘0(zero)’으로 만들자는 이른바‘넷-제로(Net-Zero)’ 시책인 ‘2050년 탄소중립(Carbon Neutral)’ 선언에 이어 환경(Environment)과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이른바 ‘ESG 경경’이 시대정신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에 가장 유망한 신재생에너지로 수소를 꼽았다.
석유 등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화석 연료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에서 벗어나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이른바 수소경제(Hydrogen economy)가 현실화한 것이다. 수소는 에너지 캐리어로 불린다. 태워도 물만 생성되므로 자연 순환을 교란하지 않고, 바람이나 일조량 같은 외부 환경의 제약 없이 수송이나 저장이 가능한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자 대표적인 청정에너지로 여유 에너지를 수소로 바꿔 저장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열과 전기로 또다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부의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는 한국가스공사를 중심으로 수소 생산기지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수소차와 수소충전소를 늘리고 수소연료전지를 확산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결과 한국은 수소차 보급률 세계 1위 국가가 되었다. 지극히 다행스럽고 소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야말로 미래 성장 동력인 첨단산업의 삼두마차라고 일컫는 바이오(Bio), 배터리(Battery), 반도체(Chip)의 이른바‘BBC 산업’의 하나로 2021년 한미정상회의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정도로 비중이 커지고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수소차가 가장 많이 달리고 있는 국가이지만 정작 충전 인프라는 뒤에서 두 번째인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지난 4월 28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소차를 보급한 국가이지만 충전 여건 미흡으로 수소차산업의 발전 속도가 지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1년 3월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주행 중인 수소차는 약 3만7,400대다. 이 중 33%인 1만2,439대가 한국에 있다. 미국은 27%인 1만68대, 중국은 19%인 7,227대, 일본은 14%인 5,185대, 독일은 2%인 738대에 불과해 단연 수소차 보급률 세계 1위 국가다. 하지만 국내에서 수소차에 꼭 필요한 수소충전소는 69기(연구목적용 제외)에 그쳤다. 전 세계 수소충전소 533기 중 13%에 불과한 초라한 보유로 수소충전소 1기당 수소차 대수는 180대로 일본(137기 / 기당 38대)·중국(128기 / 기당 24대)·독일(83기 / 기당 9대) 등에 뒤졌고, 이는 조사대상국 중 미국(45기 / 기당 224대)에 이어 두 번째로 충전 인프라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발표한 지난 5년간(2016∼2020년) 국내 연료별 자동차 연평균 증가율은 내연기관차 2%, 하이브리드차 30%, 전기차 88%, 수소차 235%로 수소차가 전기차 등 다른 차에 비교해 급격히 증가하는 데 반해 국내 수소충전기 1기당 수소차 증가 추이는 2017년 28대, 2019년 169대, 2021년 3월 현재 180대로 충전소 구축(국내 충전소 연평균 증가율 116%)이 차량 보급 속도(국내 수소차 연평균 증가율 235%)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충전 인프라 여건이 더욱 악화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전기차는 147,686대로 전기충전기는 66,885기로 전기충전기 1기당 전기차량 보급 대수는 2.1대로 전기차 전체 보급 차량이 동시에 충전할 시 16.2시간 소요되는 데 반하여, 우리나라 수소차는 12,439대로 수소충전기는 69기로 수소충전기 1기당 180대로 수소차 전체 보급 차량이 동시에 충전할 시 30시간이나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 지역별 편차도 심하여 서울의 수소차는 1,697대에 수소충전소는 4기에 불과한 데 반하여 울산의 수소차는 1,985대에 수소충전소는 14기로 충전소 설치의 지역별 편차 해소도 시급하다. 특히, 지자체 본청과 충전소 간 거리가 100km 이상인 지역은 충전을 위해서만 200km 이상 이동해야 하므로 차량 운행자의 실 주행거리는 200km대로 줄어들어 충전소 구축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이처럼 수소충전소의 수와 운영시간, 접근성 등 충전 여건이 좋은 지역일수록 수소차 보급률도 높게 나타났고, 충전소 설치의 지역별 편차 해소도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가 준비하고 있는 ‘제2차(2021~2040년) 국가기간교통망계획안’에는 첨단 모빌리티 기술의 역량을 강화해 2027년엔 완전자율주행이라 할 수 있는 레벨4의 자율주행차를, 그다음 해엔 드론 택시를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한국교통연구원 주관으로 지난 5월 21일 개최한 ‘제2차 국가기간교통망계획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전기차·수소차 성능 고도화를 위한 기술·산업 지원과 보조금 지원 등 수요 확대를 위한 다양한 정책 발굴·시행이 필요하다”라며 “2040년까지 전기충전기 100만기, 수소충전소 1,200기를 구축하고 수소교통복합기지, 친환경 주차장 등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수소충전소 설치는 수소경제를 추구하는 현 정부의 핵심 사업이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은 주거지역에 충전소가 들어서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어 향후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수소충전소 인․허가권은 당초 지방자치단체가 가지고 있었으나 ‘내 집 앞은 안 된다.’라는 이른바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현상’이 만연하고 지역이기주의의 팽배로 수소충전소 설치계획이 지지부진하던 차에 환경부장관이 전국의 수소충전소 배치현황, 수소전기자동차의 수요, 교통량 등을 고려하여 수소충전소 배치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사업자는 수소충전소 설치계획을 마련하여 환경부장관에게 승인을 받도록 하며, 이러한 경우 수소차충전소 설치와 관련한 각종 인허가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의제 제도를 도입하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하여 오는 7월 14일부터 시행하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일본에서는 이미 3년 전에 복층형 충전소까지 설치했는데 우리나라는 「고압가스 안전관리법」의 규제에 막혀 지난 2월 26일에야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개정(별표 5 제1호가목)하여 수소자동차 충전소의 구축 비용과 부지 확보 부담을 경감하고, 충전설비의 상부에 냉동설비ㆍ제어설비ㆍ전기설비ㆍ소화설비를 설치하는 경우 건축사 등으로부터 구조의 안전도에 관한 확인을 받도록 하여 오는 8월 27일부 시행한다. 인프라 확대를 막는 규제를 푸는 데만 무려 2년을 허비해버린 셈으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마련했던 애초 의지마저 무색하게 했지만 뒤늦게라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수소차나 수소충전소에 대하여 폭발 위험이 큰 것 아닌가 하는 막연한 편견 또한 시급한 과제다. 이러한 지역주민의 우려 때문에 충전소를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곳도 많다. 그러나 수소는 휘발유, 디젤 등 다른 연료(4류 위험물)에 비해 안전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수소의 자연발화온도는 휘발유와 경유에 비해 높을 뿐만 아니라 공기보다 14배나 가벼워 대기 중으로 빠르게 날아가기 때문에 누출 사고 때도 화재나 폭발 위험이 낮다. 또한 수소탱크는 일반 연료탱크와 달리 철보다 강도가 10배 높은 탄소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될 뿐만 아니라 큰 충격을 받더라도 폭발 없이 찢어지고, 수소는 공중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독일 베를린 시내 한복판과 일본 도쿄 타워, 한국 국회 등 인구 밀집 지역에 수소충전소가 설치된 사례는 그만큼 안전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일반적으로 수소경제는 ① 생산을 시작으로 ② 저장·운송, ③ 충전, ④ 연료전지, ⑤ 모빌리티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을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이 사슬 중 생산 부문이 가장 취약하여 2018년 192만3,42t, 2019년 196만2,27t, 2020년 197만8,632t의 생산에 그쳐 사실상 3년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사실 국내 정유사는 수소 생산설비는 이미 갖추고 있지만, 발전용 천연가스 세금(㎏당 12원)을 적용하지 않고, 250%나 더 비싼 수준의 공업용 천연가스 세율(㎏당 42원)을 적용하는 등 징세 제도에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수소경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분야를 고르게 육성하는 게 필요하다 일사불란하게 이어져야 할 가치 사슬 중 어느 하나라도 끊어지면 수소경제로 나갈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하고 통찰하여 수소경제 진흥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차제에 ‘청정수소’에 관한 정의부터 명확히 정립하여야 한다. 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 그레이(grey)수소, 이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저장하면 블루(blue)수소로 분류된다. 그린(green)수소는 생산과정에서 신재생이나 원전 등을 활용해 아예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청정수소 국제적 동향을 감안, 재생에너지를 활용하여 생산한 ‘그린수소’와 탄소포집·활용·저장(CCUS)기술로 생산한 ‘블루수소’ 중 탄소 배출량이 일정 기준 이하로 현저하게 낮은 수소를 포괄하는 개념의 ‘청정수소’에 관한 정의를 명확히 정립하여야 한다.
또한 ‘청정수소’에 관한 인센티브(Incentive) 및 의무부여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청정수소 인증제’를 도입하고, 나아가 기존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도(RPS ; Renewable Energy Portfolio Standard)에서 수소발전을 분리, 재생에너지와 수소발전 각각의 특성에 부합하는 지원체계를 마련하고, 수소발전에서 청정수소의 사용을 촉진하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 ; Clean Hydrogen Energy Portfolio Standards)' 도입 등 수소경제 이행을 유인하고 강제하기 위한 입법적 지원을 위해 「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수소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더불어 「수소경제 기본계획」에 청정수소 확대 방안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공적 인증 청정수소 판매·사용을 의무화하며,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를 통해 전기사업자에게 청정수소 발전량 및 수소 발전량 구매 의무를 부과하는 등 청정수소 활성화를 강력히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