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스벨트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모두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공감대를 쌓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헌화한 뒤, 인근에 있는 루스벨트 기념관을 찾았다. 이 일정은 당초 계획에 없었으나 뒤늦게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루스벨트 대통령 손자인 델 루스벨트 미 사우디 비즈니스 협회장이 동행해 문 대통령을 안내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미국을 공식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에 이어 뉴딜 정책으로 미국 대공황을 극복한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루스벨트 조각상 앞에서 설명을 듣고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부흥의 시기로 이끌었다”면서 “코로나19로 당시와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시 진행했던 정책들을 본받아 한국판 뉴딜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으로 국가적 위기를 겪어 분열하기 쉬운 상황에서 통합을 이룬 대통령”이라며 “대선 때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 모델로 제시했었다”고 밝혔다.
이에 델 루스벨트 협회장은 “문 대통령이 인권 변호사로서 인권 증진을 위해 노력해 주신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루스벨트 기념관 방문에 동행하게 돼 영광”이라며 1948년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책자를 기념으로 증정했다.
‘세계인권선언’ 채택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인 엘리너 여사가 유엔인권위원회의 의장 자격으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 전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닮고 싶은 인물과 존경하는 인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꼽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골자로 한 뉴딜 정책을 시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디지털 뉴딜·그린 뉴딜·지역균형 뉴딜을 축으로 하는 한국판 뉴딜을 국정 어젠다로 삼고 추진 중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회복·포용·도약이라는 3대 국정운영 비전을 밝힌 바 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뉴딜정책을 추진하며 내세운 핵심 기조인 회복(recovery)·구호(relief)·개혁(reform)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는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집무실인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 루스벨트 대통령 초상화를 걸고 있다.
경제대공황 시기에 경제 위기를 극복했던 루스벨트 대통령을 롤 모델 삼아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양국 정상은 또 변호사 출신이자 가톨릭 신자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1일 첫 정상회담에서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코로나 백신 문제, 반도체·배터리 등 경제 협력 등의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첫 공식 일정으로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 7분부터 30여분간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취임 후 네 번째로 미국을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제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서 숨진 미국 군인들과 그 가족 약 40만명의 묘소가 있다. 한국전 참전 용사 다수도 안장돼 있어 ‘한·미 혈맹’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방미 공식 일정을 알링턴 국립묘지 방문으로 시작한 것은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미 해병대, 해군, 해안경비대 등으로 구성된 의장대 120명이 무명용사의 묘 앞에 도열해 있다가 예포 21발을 발사했다.
문 대통령은 기수단 앞으로 이동해 태극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존스 관구사령관 안내에 따라 미국 각주 및 속령 깃발을 지나 무명용사의 묘 가장 하단 계단 앞으로 이동했다.
문 대통령은 이후 국립묘지 기념관 전시실로 이동, 무명용사들에 대한 기념패를 기증했다. 기념패에는 ‘무명용사와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며(In Memory of the Unknown Soldiers and their Noble Sacrifices)’라는 문구가 담겨 있다.
또한 문 대통령은 헌화 행사에 참석한 미국 측 인사들도 만났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들에 대해 재차 경의를 표했다.
아울러 “피로 맺어지고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한·미 동맹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더욱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에는 미 의회를 방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 하원 지도부와 간담회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