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민주노총 산하 의료연대본부는 “그동안 희생과 헌신만 강요받으며 자리를 지키길 요구받아왔다. 이제는 간호사들이 직접 나서서 병원을 바꿔나가는 투쟁을 진행해 나갈 것이다.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 수를 줄여서 환자도 안전한 좋은 병원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한 간호사는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쓴 호소문을 통해 “이 순간에도 간호사들은 열악한 현실에 한숨과 무기력함으로 현장을 떠난다. 물 먹을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을 참으면서 일해도 결국 환자에게 학교에서 배운 간호를 다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환자 건강에도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은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이어졌다. 한 대학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A씨는 “간호사 1명당 환자 20~40명을 보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이런 불가능한 상황이 계속되니 의료 질은 당연히 하락한다. 쉬는 날이라도 콜을 받으면 근무에 투입되는 일이 생겨 휴일 보장도 안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다른 간호사 B씨는 “병원에 있는 10시간 중 화장실 가는 횟수는 밥 먹으러 갈 때 한 번뿐이다. 30분 내외로 밥 먹고 다시 환자를 보기 시작해도 기본 1시간 정도는 추가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 인원이 없다 보니 일하는 시간도 늘어난다”고 말했다.
열악한 환경과 인력난은 악순환 고리로 연결됐다. 2019년 기준 간호사 면허 등록자 41만4983명 중 활동 간호사는 21만5293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병원 간호 인력 배치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신규 간호사 사직률은 2017년 42.7%, 2018년 45.5%, 2019년 44.5%다.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 지 1년도 안 돼 이직을 선택하는 간호사가 10명 중 4명 이상인 셈이다.
이날 이향춘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가 많다 보니 근무시간 내에 할 수가 없어 근무시간 전후로 너무 많은 업무를 한다. 교대근무, 야간근무, 경직된 조직 문화도 사직의 이유다”고 말했다. 앞서 간호사 B씨 역시 “간호사 인력이 부족한데 충원은 안 되고 근무 강도와 비교해 급여가 적으니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보건복지부는 46년 만에 간호전담부서인 간호정책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간호정책과는 △간호 인력 수급정책의 수립·조정 △간호 인력의 양성·관리 △근무환경·처우 개선 △법령의 제·개정에 관한 사항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운영 △간호사·조산사·간호조무사의 보수교육·면허신고 관련 업무 등을 맡을 예정이다.
또한 정부와 교육계는 간호 인력 양성을 위해 간호학과를 증설하는 등 입학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대한간호협회는 교육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원만 확대할 경우 현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휴 간호사만 양산한다는 이유로 해당 방안에 대해 반대를 표한 바 있다.
이미 시행 중인 ‘간호등급제’(간호관리료 차등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간호등급제란 국민이 질 높은 간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간호 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다. 김유석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간호사를 많이 둘 여력이 되는 대학 병원이나 큰 병원일수록 유리한 제도다. 의료법에 나온 환자 최소 기준이 바뀌지 않고 간호사만 늘어나면 임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영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은 “병상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라도 지을 수 있지만, 경험 많은 간호사는 금방 만들어지지 않는다. 간호사 부족은 이윤 중심의 시장 의료체제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간호 인력 법제화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