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의 검토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북한에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이 또다시 접촉을 거절했다. 북한의 접촉 거절은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기존 주장을 재차 강조한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이 외교적 관여에 나서기 전까지는 지켜볼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며 맞서고 있다. 최종 대북정책 공개를 앞두고 양측이 한 치의 양보 없는 기싸움을 벌이면서 북·미 관계가 난관에 봉착했다.
◆버티는 北·서두르지 않겠다는 美
북한은 바이든 정부의 재검토된 대북정책 역시 '대북적대시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앞서 바이든 정부의 첫 접촉이 있었던 지난 3월,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이 철회되지 않는 한 그 어떤 접촉이나 대화도 이루어질 수 없다"며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러한 미국의 접촉 시도를 무시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이어 지난 2일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 검토 완료 사실을 공개하자 북한은 권정근 북한 외무성 북미담당국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미국이 "큰 실수를 했다"며 ‘대북 적대시정책 철회’를 재차 촉구하기도 했다. 이번 접촉 거절 역시 같은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미국 측도 북한에 "기회를 잡으라"며 공을 넘긴 상황이다. 양측의 기싸움이 당분간 불가피해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일 "수일, 수개월 동안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겠다"며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대북특별대표 자리는 당장 충원할 계획이 없지만, 공석인 대북인권특사 자리는 조만간 지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게 민감한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북한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4~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이틀간 진행된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G7 참가국의 지지를 얻은 미국은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도 북한 관련 내용의 절반을 인권 문제에 할애했다. 북한에 대한 '외교의 문'을 열어두면서도 대북정책에서 인권 문제를 중시하는 바이든 정부의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또한 지난 5일 런던에서 진행된 한·미·일 외교장관회의를 통해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최종적인 동의도 끌어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에서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설명했다면서 "한·일 양국은 대북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말했다. 당국자는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측면이 크다"며 "외교를 중심으로 현실적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목적이라는 점을 표명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 '전략적 인내' 복귀하나...北무력도발 우려
양측이 최종 대북정책 발표를 앞두고 기싸움을 벌이면서 북한이 북·미관계의 돌파구를 무력도발에서 찾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월 8차 노동당대회에서 '강대강, 선대선'의 원칙으로 미국을 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양측 다 앞서 밝힌 원칙대로 한 치의 양보 없이 서로에게 공을 던지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결국 바이든 정부 초기부터 이 같은 대치 상황이 지속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에서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전략적 인내’로 복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경우 북한이 최악의 카드로 무력 도발을 꺼내들 수도 있다.
일각에선 이에 대비해 한미연합훈련을 서둘러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특전사령관을 지낸 전인범 한국자유총연맹 부총재는 이날 글로벌국방연구포럼 세미나를 통해 "북한이 미·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벼랑끝 전술'을 선택하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이 연합연습의 재개"라며 추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