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새벽 단잠을 깨운 생명

2021-04-21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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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위원]



40여일 전 일이다. 새벽 3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여서 무시했는데 다시 걸려왔다. 다급한 목소리는 차량 이동을 부탁했다. 아내가 산통이 심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순간 잠이 달아났다. 다음날 오후, 전화를 걸어 출산은 잘했는지 물었다. 이후 출퇴근 때마다 아이와 산모는 건강한지, 아이 아빠는 어떤지 궁금했다. 보름여 산후조리를 끝내고 돌아온 그날, 부부는 메모와 함께 작은 선물을 보내왔다.

“딸 요엘이 잘 태어날 수 있게 배려해줘 감사합니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첫째, 1년여를 살면서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몰랐다는 미안함. 둘째, 바른 품성을 지닌 젊은 부부를 만났다는 흐뭇함. 셋째, 아이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이때 생명 탄생을 지켜봤다는 기쁨. 드디어 지난주 아이 얼굴을 봤고, 부부와 대화도 나눴다. 저출산 시대를 뚫고 태어난 생명이 경이로웠고 젊은 부부 또한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저출산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통계가 아니라도 신생아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산술적으로 두 사람이 만나 2명을 낳아야 현재 인구 구조가 유지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3년 연속 1 미만이다. 1 미만은 지구상에 한국이 유일하다. 2018년 0.98명, 2019년 0.94명, 2020년 0.84명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신생아는 100만명을 넘었다. 지난해는 27만2000명으로 주저앉았다. 50년 만에 5분의1로 줄었으니 위기다.

2021년 세계인구보고서 현황도 다르지 않다. 세계 평균 합계 출산율은 2.4명, 우리나라는 1.1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다. 198개국 중 198위로 2년 연속 꼴찌다. 특히 0~14세 비중은 12.3%(세계 평균 25.3%)로 일본과 공동 최하위다. 반면 65세 이상은 16.6%로 세계 평균(9.6%)에 비해 두 배 수준이다. 이 때문에 통계 작성 이후 지난해 처음 주민등록인구가 줄었다. 인구 감소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신호다.

정부는 2019년 미래 인구를 예측했다. 2028년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8년이나 앞당겨졌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인구문제로 소멸할 최초 국가로 한국을 지목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미래는 어둡다. 당장 겪는 부작용도 간단치 않다. 2055년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바닥난다. 또 세입 감소와 세출 증가로 인한 재정 파탄을 피하기 어렵다.

지방 소멸도 현실이 된 지 오래다.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105곳은 30년 이내에 사라진다. 문 닫는 초·중학교와 대학도 늘고 있다. 올해 대학 입학정원은 49만2000명인데 응시자는 42만6000명으로 7만명 모자랐다. 정원을 못 채운 사립대와 지방 국립대학이 속출했다. 20년 이내에 절반 이상 폐교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이 같은 출산율 기조가 계속될 경우 20년 뒤 국내 인구는 285만명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해 첫 아이를 출산한 여성 평균 나이는 32.3세였다. OECD 평균보다 3.2세 많다. 결혼도 기피한다. 2018년 사회조사 결과 13~18세 결혼 의향은 30%를 밑돌았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문제다. 맞벌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양육도 큰 부담이다. 불안한 미래 때문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거나 늦추는 것이다. 일자리와 주거안정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출산 정책은 실효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는 매년 수십조원을 출산 정책에 쏟아붓고 있다. 하지만 정책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저출산은 정책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나와 있는 정책만 제대로 집행해도 충분하다. 새로운 정책을 만드느라 머리를 싸맬 게 아니다. 기존 정책을 리폼하는 게 낫다. 예를 들어 조부모에게 양육비를 지원하는 사업은 실효적임에도 겉돌고 있다. 이 정책은 양육비 부담을 덜어주고 믿고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어르신들에게도 좋은 일자리다.

결국 실질적인 정책 효과가 나타나려면 지원 체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청년세대에게 미래를 보여줘야 한다. 좋은 일자리와 주거 안정은 핵심이다. 지금처럼 기업 활동을 옥죄고 부동산 폭등을 방치한다면 백약이 무효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2030세대가 집권여당에 등을 돌린 원인 가운데 일부도 이 때문이다. 도무지 헤어날 길 없는 암울한 현실과 불공정에 분노한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 부부가 두 명에서 그쳤던 이유도 경제적 문제였다. 이러니 취업난과 주거난이 한층 심각해진 요즘 세대는 더할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 있다. 다양한 정책 지원과 함께 사회적 인식도 중요하다. 지난 주말 선물을 사러 모처럼 유아복 판매점에 들렀다. 요엘이 태어난 지 43일째. 요엘이 살아갈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나아져야 하며, 그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임병식 필자 주요 이력

▷국회의장실 부대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한양대학교 갈등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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