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후쿠시마(福島) 오염수 해양 방출을 결정하면서 정부가 국제사회 여론전에서 패배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까지 검토하며 반대하고 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미국 정부는 오히려 일본의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최근 4년간 540억원 규모의 분담금을 IAEA에 지급하고도 국제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19일 외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우리 정부는 IAEA에 의무분담금 115억원, 기술협력기금 26억원 등 총 141억원의 분담금을 지급했다. 분담금 규모는 2018년 120억원, 2019년 120억원, 2020년 160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정분담금 이외에도 정부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특별기여금(30만 달러·3억3549만원)을 지급했고, 동물원성 감염병 대응 통합대응 사업(조디악)에 100만 달러(약 11억원)를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일본이 지난 2년간 IAEA에 공을 들인 결과다. 일본은 분담금 규모만 3위를 차지할 뿐 아니라 매년 IAEA 총회에서 수차례 부대행사를 개최해 원전 사고 수습 계획을 소개하는 등 행동으로도 총력전을 벌였다. 지난해 2월에는 그로시 사무총장을 원전 사고 현장으로 초청했고, 결국 '오염수 해양방류는 실현 가능하다'는 평가를 끌어냈다. 중국과 한국 등 주변국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은 일본이지만 IAEA와는 적극 소통한 셈이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도 지난해 9월 IAEA 연례총회에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했다. 다만 총회에서 정부의 입장에 힘을 실어준 나라는 없었다. 또한 정부는 지난 17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에게도 협조를 요청했지만, "IAEA가 엄격한 절차를 마련했을 것"이라는 답을 받았다. 사실상 미국은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외교전 참패'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최근 일본은 '대중(對中) 견제'를 기조로 미국과 밀착외교를 강화 중이다. 미국을 포섭할 경우, 오염수 방출 문제가 국제사회에 확대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외교력을 확대해 전방위 로비를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IAEA에서 '코로나19-K방역'을 홍보하느라 오염수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커지고 있다. 장마리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오염수의 최대 피해국이 될 수 있는 상황인데, 지난 IAEA 총회에서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부스를 설치하고 홍보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한·일 간의 갈등 양상으로 끝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오염수 해양 방류 반대를 지지할 국가를 포섭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