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자연이 숲과 대지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철이지만, 인간에게도 각별한 '디자인'시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4월은 iF디자인어워드의 계절이다. 이 상은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권위있는 공모전 중의 하나다. 유난히 많은 금년 iF 국내수상작(아래 참조) 중에서 필자가 주목한 작품 하나가 있다. 삼각산 도선사에 세워진 '소울림(消鬱林, 소울포레스트)'이다. 이 종교 건축물은 작년 10월 세계건축상을 이미 받은 바 있어서 이번 수상은 한 건축 작품이 세계적 어워드에 연속수상하는 영예를 누린 것이다. 이 작품을 설계 건축한 윤경식((주)한국건축KACI 회장)은 작년 세계건축상에서 최진석교수의 '호접몽가(蝴蝶夢家)' 설계로 대상과 2관왕을 거머쥐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건축물엔, 살아있는 인간 그 이상의 존재가 함께 산다
소울포레스트는 영혼의 숲이란 뜻이다. 消鬱林(소울림)이란 한자어를 쓰고 있다. 꺼짐(消)은 인생의 한 관문인 '죽음'을 의미하지만 또다른 피어남을 향한 과정이기도 하다. 이 건축물은 업장(業障, 전생과 세상에 지은 허물)을 소멸하며 울창한 숲으로 솟는 승화(昇華)를 담고자 한다. 많은 건축가들이 삶의 집을 지어왔다. '죽음의 집'을 짓는 일은 사실 낯설 수 밖에 없다. 죽음은 '인류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로 종교라는 영적 영역의 활동을 낳았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세계의 종교와 신앙은 가장 추상적인 문제를 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구상적(具象的)인 건축과 조형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믿음의 실체와 장엄은 교회와 성당, 혹은 사찰같은 건축물들로 구체화되었다. 건축은 살아있는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죽은 인간을 비롯해 신앙의 대상인 신과 영적 존재가 함께 머물러 있다고 믿는 생각이 인류 고대 이래 꾸준한 신념으로 작동해왔다. 위대한 건축물이 모두 종교 건축인 까닭은, 건물에 거주한 존재가 '인간 그 이상'이라고 믿는 신념이 이룩해놓은 것이다.
9층탑은 하늘 아래 가장 높은 곳
소울포레스트의 디자인과 설계와 시공은 윤경식이 맡았고, 부처상은 신호윤이 제작했다. 이 건축물에는 아미타부처가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고, 그 양편에 유리탑이 4개동씩 배치됐다. 8개동에는 8보살(문수, 보현, 관음,대세지,금강장,제장애,미륵,지장)이 앉아있다. 측면에서 보면 유리탑은 위패(죽은 사람의 혼을 대신하는 상징물)들로 9층탑을 이뤘다. 9층은 가장 높은 곳이며, 그만큼 하늘에 가까운 곳이다.
아홉개의 부처보살상은 모두 불빛이 관통하고 있다. 여기에는 불교의 '여래(如來)' 개념이 숨어있다. 여래는 부처의 다른 이름이다. 금강경에 등장하는 여래는 '여실(뚜렷)히 오는 자'이자 또한 '여실히 가는 자'이다. 부처는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 오고있는 자이며 또한 가고 있는 자이다. 그대 마음 안에 관통하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이 건축물은 빛이라는 경전(經典)에 담은 셈이다.
불교를 포함한 많은 종교는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浄土)'를 말한다. 이 더러운 땅을 진저리치듯 떠나서, 새롭게 가야할 깨끗한 땅을 기쁨으로 구한다. 그런데 여기 더러운 땅과 저기 깨끗한 땅 사이에는 십만억이라는 세계가 놓여있다고 한다. 과연 그 먼 곳으로 갈 수가 있겠는가. 그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마음 속에 있는 부처를 불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 부처 속에 자신의 본성이 있으니, 자신의 본성을 찾아 이르면 그것이 그 먼 정토와 같다. 결국 예토와 정토는 바로 여기다. 여기 오신 분, 그것이 여래다.
영혼의 숲, 색즉시공의 빛을 입다
그 여기가 어딘가. 소울포레스트 좌우로 펼쳐져 있는 저 빛들이 관통하는 마음숲에 있다. 부처보살의 빛을 불러, 삶과 죽음의 서원(誓願)으로 삼도록, 빛의 탑을 세웠다. 1000개의 조명이 대적광(大寂光)으로 비친다. 진리는 말과 모습을 떠나있기에 고요하고 또 고요하다. 그 침묵 속에서 찬란한 빛을 발해 세상을 향해 진리를 발언하는 것이 바로 대적광이다. 큰 침묵의 빛 속에 8500기의 위패를 모시는 공간이 구성되어 있다.
위패탑의 겉면은 에칭유리로 되어 있는데, 모래가루를 고압으로 분사해 유리를 깎아낸 것이다. 에칭유리에 빛이 비치면 유리표면에서 반사작용이 일어나 스스로 빛을 내는 효과가 생긴다. 유리가 새로운 질감을 지니게 되면서 신비한 입체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윤경식은 이 유리표면이 발하는 '빛의 노래'를 통해,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있는 불교의 핵심 사유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다. 색(色)이란 단순히 색채가 아니라, 사물의 존재양상 전체를 뜻한다. 상대세계에서 물질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지금 잠시 서로 얽히여 모여있는 것일 뿐 시간과 인연을 풀어놓고 전체로 보면 아무 것도 없는 것과 다름 없다는 인식이다. 빛이 드러낸 것은, 사실상 신기루이다. 과학적인 상상력과 기술이, 종교의 사유를 세심하게 드러내고 있는 '건축적 반야심경'을 목격한다. 그게 소울포레스트의 철학적 내면이다.
부처 앞에 엎드릴 때, 뒤에는 마음거울이 비친다
정면의 부처상 앞쪽에는 연못이 있다. 업경지(業鏡池, 행업의 거울못)라는 이름을 지녔다. 윤경식은 "고인을 추모하러온 가족이나 지인이 연못 앞에서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도록 연못을 설계했다"고 말한다. 부처 앞에 엎드릴 때, 그 사람의 뒤에는 자신을 비추는 연못이 출렁이고 있다. 어디 섣부른 말이나 허튼 잠깐의 생각으로 이기적인 무엇인가를 빌 수 있겠는가. 반성과 성찰의 내면을 돌이키는 심연(心淵)이 바로 등 뒤에 있는 것을.
건축의 공간이 바로 마음자리를 말하는 것임을 이보다 더 실감나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탁월한 예술적 감관만이 빚어낼 수 있는 성취다. 한국적인 공간이 세계적이라는 슬로건이, 소울포레스트에선 참으로 실감난다. 죽음은 삶이며 삶은 죽음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21세기의 영적(靈的) 성찰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세계의 건축전문가들이 놀람 속에서 거듭 갈채를 보낸 이유가 있었다.
▶ iF디자인어워드는 어떤 상인가 = 이 상은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권위있는 공모전 중의 하나다. 3대 디자인상 중에서 둘은 독일, 하나는 미국의 단체에서 주관한다. 독일에서 주관하는 iF와 레드닷이고, 미국의 상은 IDEA다. iF는 1953년 출범한 하노버전시센터가 주관해 이듬해인 1954년 제정되었다. 레드닷은 노르트하임 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해 1955년부터 시상을 시작했다. IDEA는 미국산업디자인협회가 주관하는 공모전으로 독일어워드보다 훨씬 늦은 1980년에 시작했다. iF는 영향력 있는 디자인상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2021년엔 세계에서 인정받는 98여명의 디자인 전문가들이 공동 심사를 했다. 52개국에서 9,509건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사흘간의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을 골랐다. 올 시상식에서는 한국의 디자인작품들이 세계적인 주목도를 크게 높였다. 한국의 디자인 수준이 높아지기도 했고, 한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이 달라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4일12일(한국시간) 올해의 국내 기업과 개인작가들의 수상작들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소개되면서 눈길을 모았다.
▶ 한국의 iF디자인어워드 수상작 = 우선 삼성이 역대 최다로 71개부문에서 수상했고, LG도 28개부문을 휩쓸었다. SK매직도 9개부문을 차지했다. 또 KT가 굿즈디자인인 피크닉 UV차저에서 2개, 투썸플레이스도 패키지 부문에서 2개를 차지했다. 현직 군인이 개발한 공군픽토그램도 수상해 화제를 모았고 BTS의 노랫말그림책도 영광을 누렸다. 두산밥캣 콤팩트 휠로더, 롯데월드어드벤처 매직캐슬 3D맵핑쇼, 기아 신형 쏘렌토, 금호타이어, 무신사 온라인패션플랫폼인 홍대지역 무신사테라스도 이 상을 받았다. 보청기인 포낙 비르토블랙, 티티아이 욕실수전, 루헨스 세면디 필터, 비건뷰티 제폼인 슬로소피, 텐마인즈의 건강베개 모션 필로우, 스웨거의 그루밍 오일, 꿈비의 올스타원목가구, 웅진씽크빅의 매쓰피드UX, 퀴즈톡의 양방향퀴즈앱 등의 수상이 눈에 띈다. 거기에 화성시의 건축물인 궁평 오솔 아트파빌리온이 상을 받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소울포레스트' 건축가 윤경식은 누구인가 = (주)한국건축 KACI회장. 철학과 인문학과 미학과 건축을 동일한 내면을 지닌 대상으로 생각하는 건축가다. 가장 한국적인 것과 가장 세계적인 것, 그리고 가장 새로운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이 어디에서 만나는지 고민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는 '건축사상가'이기도 하다. 종이기둥으로 미술관, 명상원과 교회를 지었다. 3차원 목구조로 내화구조를 인정받기도 했다. 작품 '헤슬리나인브릿지'는 최근 영국 BBC에서 고른 '현존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장 10곳'에 뽑혔고 뉴욕타임스의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곳으로도 꼽혔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