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L 명과 암]② '차이나머니'로 몸살…위기의 K콘텐츠

2021-04-02 06:00
  • 글자크기 설정

과도한 중국 기업 PPL로 뭇매 맞은 드라마 '여신강림' '빈센조' [사진=CJ ENM 제공]

최근 우리는 드라마 속 배경이나 명칭, 로고, 물건 등을 이용한 간접광고(Product Placement, PPL)를 심심찮게 마주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광고라는 생각에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되는 직접 광고와 달리, PPL은 별다른 거부감 없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해당 회사나 제품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까지 단숨에 끌어올린다. PPL의 대상이 나날이 확대되는 것도 어쩌면 그 이유일 것이다. 각종 소비재를 넘어 특정 기업의 브랜드, 더 나아가서는 특정 지역까지······. 장르도 확장됐다. PPL은 드라마를 넘어 연극과 뮤지컬, 심지어 웹툰까지 진출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이 시대 최고의 문화 권력은 PPL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큰 관심은 때론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최근 중국 자본이 투입된 몇몇 드라마에 중국 제품이 PPL로 등장하자, '친(親) 중국' '역사 왜곡' 논란이 야기되며 몸살을 앓았다. PPL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2021년, PPL의 긍정적인 부분과 더불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무얼까. PPL의 명과 암에 대해 2회에 걸쳐 조명해보기로 한다. <편집자 주>

문화의 힘은 세다.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킹덤', 그룹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적 인기를 얻고 영향력을 떨치는 것을 지켜보며 새삼 문화의 힘을 실감한다. 창작자와 제작자가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근 한국 방송계도 '차이나 머니(중국자본)'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드라마 속에서 중국 대중 음식인 마라탕이 소개되거나 중국 기업 제품이 등장하곤 한다. 문제는 제품 소개로 시작해 조금씩 중국 문화를 국내 콘텐츠에 스며들게 한다는 점이었다. 중국이 한복, 김치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등 신 동북공정을 시도하고 있어서 대중들의 반감은 커지고 있다.

앞서 한국 방송가에 중국 기업 PPL이 등장한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지난 2014년 SBS 드라마 '쓰리데이즈' '닥터 이방인' 등에서 타오바오 앱이 소개됐고 2018년 방송된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의 포스터가 노골적으로 등장했다. 2019년 드라마 tvN '사랑의 불시착' 역시 해당 업체의 포스터가 등장했다.

한국 대중에게 중국 기업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PPL은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지난해 방송된 드라마 '여신강림'에서는 버스 정류장 광고판에 걸린 중국 기업 홍보 포스터나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먹은 인스턴트 마라탕 등이 국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데다가 노골적이기까지 하다며 반감을 샀다.

지난달 방송된 tvN 인기 드라마 '빈센조'도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바벨 기업과 재판을 준비 중인 홍차영(전여빈 분)과 빈센조(송중기 분)가 비빔밥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이 문제가 됐다. 비빔밥 도시락이 중국 음식처럼 비쳤기 때문.
 

논란이 된 중국 비빔밥. [사진=드라마 '빈센조' 방송 캡처]

홍차영과 빈센조가 먹은 이 비빔밥 도시락 제품은 중국 유명 즉석식품 브랜드 '즈하이궈'가 만든 중국 내수용 비빔밥으로 한국에선 접할 수 없는 제품이다. 특히 해당 기업은 이를 '한국식 김치 돌솥비빔밥'이라고 소개했고 중국어로 '한국식 파오차이'라고 표기한 점이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특히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스트리밍되는 인기 드라마 '빈센조'에서 비빔밥을 중국 음식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동북공정을 시도 중인 중국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도 해당 장면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드라마 제작비 충당을 위해 선택한 상황이겠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정말로 안타까운 결정"이라며 "최근 중국은 김치, 한복, 판소리 등을 '자국의 문화'라고 어이없는 주장을 계속해서 펼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건, 중국어로 적힌 일회용 용기에 담긴 비빔밥이 자칫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중국 음식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청자들의 지적에 '빈센조' 측은 문제가 된 장면을 삭제 및 재편집해 VOD에 반영했다. 국내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에서도 삭제된다. 넷플릭스와 티빙 등에서는 이미 삭제되었고 해외 OTT 반영은 2~3일 정도 더 걸릴 예정이라고 한다.

앞선 드라마로 누적된 분노는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에서 터졌다. PPL은 아니었지만, 역사 왜곡과 중국풍 소품 등으로 시청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양녕대군(박성훈 분)이 중국무술 수련용 대도로 보이는 칼을 사용하거나 엄연히 조선 땅에 있는 기생집에서 중국풍 월병과 피단(새알을 삭혀 먹는 중국 음식), 중국식 만두 등의 음식이 나왔고 드라마 OST 일부는 중국 전통 현악기 고쟁, 고금 연주곡들이 등장했다.

연변 말투를 쓰는 놀이패가 농악무를 연주하는 장면도 "농악이 중국 문화라는 오해를 야기하게끔 한다"며 시청자들에게 지적받았다. 지난 2009년 중국은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한국보다 먼저 유네스코 지정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전적이 있다.
 

논란이 된 중국 소품들 [사진=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방송 캡처]

한 방송 관계자는 국내 드라마가 중국의 투자를 받지 않았는데도 중국풍의 소품 등이 등장하는 것에 관해 "직접적인 투자를 받지 않았더라도 중국 수출 등을 고려해 기호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구마사'의 논란이 거세지는 가운데 서경덕 교수도 "드라마의 역사 왜곡 논란 파장이 매우 크다. 이미 중국 네티즌들은 웨이보를 통해 '당시 한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드라마 장면을 옹호하기 시작했다"라고 지적했다.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는 중국에 빌미를 제공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여신강림' '빈센조'의 PPL 논란과 SBS '조선구마사' 폐지로 드라마 업계도 큰 충격을 받은 분위기. "중국 PPL, 역사 왜곡 등 문제를 겪고 경각심을 느끼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자본'이 스며든 한국 콘텐츠에 관해 "현실적으로 PPL 없이 제작비를 충당할 수 없다"며 "드라마는 광고와 판권으로 수익을 발생한다. 드라마 제작비는 점점 더 커지고 있고 국내 PPL만으로는 제작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PPL을 가려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한편 몇 년 사이 중국은 한국 콘텐츠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 텐센트는 JTBC 스튜디오에 1000억원을 투자해 본격적인 한국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기도 했다.

중국은 막대한 자본력과 소비 인구로 엔터계 무시할 수 없는 '큰 손'이 됐다. 할리우드 영화인 '트랜스포머4', '콩: 스컬 아일랜드', '퍼시픽 림: 업라이징' 등에서도 중국의 입김이 작용했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뮬란'은 그들의 '입맛'대로 재편돼 논란이 됐다. 캐릭터들도 각색되었고 엔딩 크레딧에는 신장 자치구 투루판시 공안 당국과 중국 공산당 신장 선전부 등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논란을 빚었다.

콘텐츠의 힘과 문화적 영향력이 거세지는 상황 속, '차이나 머니'의 위험성에 관해 창작자·제작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