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에즈 사고 후폭풍] '엉망진창'된 세계 공급망…"혼란 계속된다"

2021-03-30 15:45
  • 글자크기 설정

수백척의 대기 선박, 유럽·아시아 항구로 몰릴 우려

"수에즈 운하 재개로 해결될 일 아냐" 낙관론 경계

이집트·선주·해운사·보험사 등 배상 문제 난항 예고

이집트 수에즈 운하의 물길이 일주일 만에 열었지만, 해운사 등 공급업계의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발이 묶였던 선박들이 모두 운하를 통과하기까지 수일이 걸려 물류 일정이 예상했던 기간보다 더 미뤄질 거란 이유에서다.

또 수에즈 운하 사태 수습이 당초 수 주간 걸릴 것으로 보고, 8~9일가량이 더 걸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우회 항로를 선택한 해운사가 다수인 것도 문제다.

이와 더불어 이번 사태로 발생한 손해 배상금 청구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계인 ‘사고 책임 확인’을 두고 이집트 당국과 에버기븐(Ever Given)호 관련자 간의 책임 공방이 벌어질 거란 우려도 존재한다.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수에즈 운하서 이동 중인 에버기븐호. [사진=AP·연합뉴스]

 
◆“수에즈 운하發, 유럽·아시아 항구 병목현상 온다”

29일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 등 주요 외신들은 수에즈 운하 통항 재개 소식을 전하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수에즈 운하 마비 사태가 수 주간 이어질 거란 예상을 깨고 일주일 만에 운하 통항이 재개됐지만, 아직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에버기븐호가 완전 부양에 성공하고, 수에즈 운하 한가운데 있는 호수 그레이트비터호(Great Bitter Lake)로 이동하면서 운하의 양방향 통항이 재개됐다. 하지만 사고 이전 상태로 완벽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다. 수에즈 운하 통항이 중단되는 동안 운하 양쪽에서 대기하던 선박의 수가 수백 척에 달하기 때문이다.

오사마 라비 수에즈운하관리청(SCA) 청장은 운하 통항 재개 전 운하 일대에서 대기하는 선박의 수가 422척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운하 양쪽에서 발이 묶인 선박이 453척에 달한다고 집계됐다.

SCA 측은 운하 일대에 대기하던 선박이 모두 통과하려면 3.5일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수에즈 운하 수로 내에 여전히 떠 있는 에버기븐호의 크기가 문제다.

전문가들은 에버기븐호가 컨테이너 2만 개가량을 실은 초대형 메가급 컨테이너 화물선으로, 한꺼번에 많은 선박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일주일이나 지연된 항해 일정을 하루라도 줄이고자 선박들이 서둘러 움직일 것인데, 크기가 거대한 에버기븐호가 아직 운하 내 수로에 있는 만큼 운하 내 정체 현상 발생이 불가피하단 얘기다.

SCA 측의 예상대로 대기 선박들이 3일 만에 운하를 통과해도 숙제는 남아있다. 수에즈 운하에서 대기했던 선박들이 순서대로 항해 일정을 조정해 본격적인 운항에 나선다고 해도 일정은 이미 운하 통항 중단 기간(일주일)만큼 지연됐다.

이 때문에 선박들이 1시간이라도 먼저 도착하려고 할 것이고, 이는 컨테이너 화물선, 유조선 등 덩치가 큰 선박들이 유럽, 아시아 등 도착 항구에 한꺼번에 몰리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문제는 도착 항구에서 이를 소화해 낼 수 있을지다.

세계 2위 해운사인 스위스 MSC의 캐롤라인 베카르트(Caroline Becquart) 부사장은 “운하 일대에 대기하는 선박이 엄청나게 많다”면서 “뱃길이 열려 각 항구에 도착하는 선박들이 평소보다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9일(현지시간) 이집트 수에즈 운하에서 예인선에 끌려 이동 중인 에버기븐호(가운데). [사진=수에즈운하관리청(SCA) 제공]

 
◆“공급망 타격 회복, 최소 두 달 걸린다”

에버기븐호 부양 소식에 국제유가는 장중 한때 하락세를 나타냈다. 그동안 막혔던 원유 공급이 풀릴 거란 전망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에즈 운하 사태에 타격을 받았던 글로벌 공급망이 사태 발생 이전으로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해운사 머스크는 “이번 수에즈 운하 경색 사태가 글로벌 해운 여력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매우 크다”면서 “물류망이 완전히 정리되기까지는 여러 달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스티브 플린 미국 스노이스턴대 교수는 “주요 해상 길목이 약 일주일이나 막혔다”며 “이로 인한 연쇄적 영향이 커 글로벌 물류망이 최소한 60일은 있어야 타격을 회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수에즈 운하 일대에서 대기하던 선박도 문제이지만, 앞서 수에즈 운하 통과 대신 남아공 희망봉 우회 항로를 선택한 선박들도 문제다.

해운 정보 서비스 제공업체인 시인텔리전스 컨설팅의 라르스 옌슨 최고경영자(CEO)는 “도미노는 이미 넘어갔다. 이미 적체된 물류가 파급효과를 낼 것”이라며 “우회 항로를 택한 선박의 일정까지 따지면 타격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HMM을 비롯해 독일 해운업체 하팍 로이트 등은 앞서 수에즈 운하 사태가 장기화할 것을 우려해 남아공 희망봉 우회를 선택했다.

희망봉 우회 항로를 수에즈 운하 통과 때보다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더 소요돼 연료비, 운임비 상승이 연쇄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더글러스 켄트 공급망관리협회(ASCM) 부회장은 “수에즈운하 항행이 재개됐지만, 사태가 끝난 게 아니다”라며 “이젠 항구와 물류 메커니즘이 밀리면서 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론을 경계했다.
 

29일(현지시간) 오전 이집트 수에즈 운하 위에 떠있는 에버기븐호. 위성통신업체 막사 테크놀로지 촬영. [사진=로이터통신]

 
◆최대 난제 ‘배상금 청구’···사고원인 규명부터 ‘삐걱’

공급망 정상화 이외 해결해야 할 과제는 또 있다. 최대 난제인 사고 원인 규명, 배상금 청구 문제다.

앞서 이집트 당국은 수에즈 운하 통항 재개 소식을 전하며 이번 사태의 책임이 에버기븐호 선장에게 있다고 규정하며 선주에 손해 배상금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하브 마미시 이집트 대통령 항만개발 및 수에즈 운하 담당 보좌관은 “운하는 완벽하게 안전하다.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면서 “선박 좌초로 인한 결과에 대한 보상과 예인선 사용료 등 모든 비용을 선주에게 청구할 것”이라고 했다.

에버기븐호 선주인 일본 쇼에이기센(Shoei Kisen) 혹은 선박 운영사인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 측에 배상금을 청구하겠다는 얘기다.

해운업계는 이번 사태 여파로 쇼에이기센과 에버그린(EverGreen)이 책임져야 할 배상금이 최소 2400만 달러(약 271억8000만원)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라비 청장은 앞서 이번 사고로 이집트 측의 하루 손실액이 1500만 달러(약 169억8900만원)에 달했다고 했다.

배상금 청구 대상을 결정하기 위해선 사고 원인 규명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에버기븐호 좌초의 원인은 40노트(74.08km/h) 강풍 때문으로 알려졌다.

에버기븐호의 기술적 관리 담당 선사인 독일 베른하르트슐테는 “좌초 원인에 대한 초기 조사에서 어떤 기계적 또는 엔진 결함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초 사고보고서에는 사고 당시 ‘정전’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SCA 측은 인적·기술적 오류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이집트 당국과 쇼에이기센·에버그린 등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또 현재 업계가 추정하는 배상금이 쇼에이기센과 에버그린이 가입한 보험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거란 전망도 나온다.

이집트 정부 측이 청구한 배상금에 에버기븐호에 실린 컨테이너에 대한 보상액까지 추가되면 두 회사가 감당해야 할 배상금은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나게 된다. 이 경우 이들이 가입한 보험 정책상 배상금 전체를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는 뜻이다.

아울러 해상에서의 손실 비용에 대해 소유주와 보험업자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공동해손(general average loss)’이 선언되면 보험금 지급 절차 등이 복잡해져 배상금 문제 해결까지 최악의 경우 수년의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9일(현지시간) 2만개의 컨테이너가 실린 에버기븐호의 모습. [사진=신화·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